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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총장 직선제=나쁜 제도’ 검증된 사실인가
원로칼럼_ ‘총장 직선제=나쁜 제도’ 검증된 사실인가
  • 안삼환 서울대 명예교수ㆍ독문학
  • 승인 2011.10.2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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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삼환 서울대 명예교수·독문학
“장재는 자신의 마음을 엄한 스승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사마광은 내 평생 행한 것 중에서 남에게 고백 못할 것은 없다고 장담하셨다 들었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선현들의 이 말에 유념해 주시옵소서! 한 가지의 정치적 일을 처리하시고자 할 때에 한 마디 명령을 내리시기까지 부디 모든 것을 일단 폐하 자신의 마음에다 물어보시기 바라옵니다.”

조선시대의 선비 沙溪 김장생이 인조에게 간하는 이 말은 주위 신하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말고 우선 자신의 마음에 먼저 물어보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 있으므로 우선 가만히 자기 자신의 마음에 물어보면, 대개는 선악이 금방 판단된다는 것이다.

사계의 이 간언을 오늘 새삼 떠올리게 됨은 작금에 교육과학기술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대학구조 개혁에서 한 가지 아전인수적 논리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교과부가 대학 구조개혁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에는 국립대 법인화, 성과급적 연봉제 적용, 대학운영 성과목표제 도입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으나, 최근에는 이 같은 핵심내용을 일단 뒷전으로 밀어둔 채 마치 ‘총장 직선제'가 대학개혁의 최선행 과제인 양 국립대들로 하여금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도록 종용 내지는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대학의 총장을 대학의 구성원들이 직선제로 선출할 것인가 또는 임명제나 공모제로 선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각기 크고 작은 장단점들이 있어서 오랜 세월 대학에 몸담았던 필자 같은 사람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난문들 중의 하나다. 그런데 갑자기 교과부가 ‘국립대 선진화’라는 이름아래 마치 총장 직선제가 한시바삐 폐지돼야 할 제도라도 되는 것처럼 국립대들에 그 폐지를 종용하고 있다. 국립대 법인화와 성과급연봉제 등을 추진하고 있는 교과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더라도, 총장 직선제가 모든 개혁의 걸림돌인 것처럼 이렇게 이 제도의 폐지를 서두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총장 직선제가 그 동안 몇몇 대학의 총장 선출 과정에서 교수로서 국민들에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낯 뜨거운 폐해를 노정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이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도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임명제나 공모제가 지니고 있는 비민주적 문제점 또한 만만찮다는 것도 지난날의 우리 대학사가 방증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두 제도는 운영의 묘에 따라 그 결과와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아직도 검증과정에 있는 제도들로서, 그 선악을 섣불리 논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 아닐까 싶다. 

총장 직선제가 완전히 구시대의 폐습이고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최우선적 혁파 대상이라는 결론이 우리 대학사회에 이미 공인이라도 됐단 말인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아직 이런 논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고, 이런 학설을 주장하고 나선 학자의 성명을 모른다. 그렇다면 교과부 내에서 이런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주체가 누군지 자신의 이름을 떳떳이 걸고 나서서 명쾌한 주장과 설득 논변을 펴 줬으면 한다.

대학은 자고로 연구와 가르침을 본연의 의무로 하는 독립 기관이며, 국가권력으로부터 그 자주성과 자율성을 보호받으면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다. 교과부는 재정지원 및 학생정원 감축 등을 수단으로 대학을 다스릴 생각을 하지 말고 대학이 스스로 자기 혁신을 해나가도록 표 나지 않게 도울 일이다. 교과부 장관과 관료들은 부디 조선의 선비 김장생의 가르침을 본받아, 한 가지의 정치적 일을 처리하고자 할 때에 한 가지 지시를 내리기까지 모든 것을 일단 자신들의 마음에다 엄히 물어 봤으면 한다. 혹시 이것이 장차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라서 이참에 아주 몰아붙이려는 것은 아닐까. 또는, 이것이 바로 대학을 관에서 다스리겠다는 그 유명한 교육관치적 발상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안삼환 서울대 명예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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