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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과제 그리고 +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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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신 부산대 교수
  • 승인 2011.03.27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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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한국 대학 위기와 극복방안

“대학은 스스로 메타언어를 개발하고
학문간 소통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인과 관료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11~12세기에 처음 도입된 대학이 역사적으로 다양한 변동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 스스로가 자신이 처해 있던 시대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 요구에 잘 부응하면서, 또한 시대와 거리를 두면서 비판하고 시대를 이끄는 사상들을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현대의 대학은 대학 내부의 장기적 정책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대사회 속에서 대학의 존재 자체가 이미 정치ㆍ경제적 성격을 띠게 되고, 그로 인해 독립성을 훼손하게 됐다. 그리고 과거 리버럴 유니버시티 이념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전공들이 대학에 들어오기를 요구할 때 대학은 이에 대한 이념적ㆍ독자적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재정적 이유로 쉽게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현대의 대학은 대학사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대학으로 변화하게 됐고, 다양한 전공을 갖게 됐다. 양적인 면에서는 큰 성장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총체성과 독립성을 잃고 분과화 돼 소통이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공동체성을 상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적으로 공통된 언어를 상실했기 때문에 공동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분과화 되면서 학문과 학과 경계를 넘는 메타언어가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이 자율적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대학은 그 속에서 학과간, 학문간 이기주의로 내부적 소모적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학문 간의 유기성이 파괴된 분과화 된 상황에서 전문가로서의 교수의 위상은 바로 독일어 ‘Fach-Idiot(전문가 백치)’와 같게 될 수 있다.

현대의 한국대학은 이 메타언어를 스스로 개발하지 못해 대학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실패했고 그 공백을 외부 세력, 곧 지식관료에게 넘겨주게 됐다. 이것이 한국 종합대학의 위기다. 국립대 법인화와 성과연봉제는 모두 메타언어를 외부세력에 내준 결과다. 이러한 메타언어를 상실한 공백기에 외부세력, 곧 지식관료, 기업과 언론에 의해 개발된 관료언어, 기업언어, 소위 시장언어의 틀로써 평가받고 그들의 언어에 의해 재단되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식 대학’과 ‘특성화’, ‘교육중심대학’, ‘연구중심대학’ 등은 대학을 재단하기 위한 메타언어의 주요 사례들이다. 이것은 왕권과 교권과 더불어 제3의 힘이 되고자 했던 대학의 위상이 메타언어의 상실과 함께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대학은 스스로 메타언어를 개발하고 분과화 된 학문 간의 소통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은 기업인과 관료들에 의해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둘째, 학문간 학과간의 유기성을 형성해야 한다. 종합대학의 개별 전공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가지며 전체를 고려하면서 존재할 때, 대학은 공동체로서의 대학이 된다. 유기성을 고려하지 않은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반대한다.

셋째, 연구와 교육의 균형이다. 연구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Scholarship과 목적성 Project를 연구하는 Research의 상호존중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학에서는 교육이 무시되고, 주로 Research만이 강조됐다. 이제 교육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교육에 생명력을 주기 위한 자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도 대학 교육에 생명력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교육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논문과 연구비 액수를 기준으로 교수를 평가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넷째, 교양교육을 위시한 기초교육의 강화이다. 이것을 통해 학생들은 전공의 깊이는 물론, 성찰능력 그리고 사회에 대한 전체적 시야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리더에게는 대학의 역사적ㆍ철학적 의미를 알고 대학이 상실한 제3의 힘을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토대 위에서만 올바른 종합대학의 거버넌스 시스템의 구성, 운영, 평가 방식을 개혁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교수들의 만성화된 무관심으로는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다. 시카고대학은 2000년부터 ‘대학의 이념’을 주제로 교수 세미나를 지속해오고 있는데, 대학의 위기에 대한 교수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역시 대학의 교육, 아카데미 본질의 문제, 캠퍼스, 재정, 대학의 발전 방향 등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김유신 부산대ㆍ전자전기공학부
코넬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과학철학회장과 한국통신학회 정보사회연구회장을 지냈다. 부산대 새벽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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