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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약국 손자', 문화축전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다
'의령약국 손자', 문화축전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3.21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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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화제_ 한 문화인류학자의 올림픽에 말걸기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75세)는 영락없이 문화인류학자다. 지난 2월 출간된 『배움의 길, 기록을 따라가다-강신표 기증 사진집』, 『세계와 함께 나눈 한국문화-山公 강신표 올림픽 문화학술운동』(국립민속박물관 간, 2011.2) 에는 문화인류학자의 면모가 가득 스며들어 있다.

그는 오래 전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에 자신의 성장 모습, 주변 사람들과 환경 등을 담은 사진과 필름자료 1천 188점을 기증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 가운데 209점과 유물사진 10점을 선정해 지난달 『배움의 길, 기록을 따라가다』를 펴냈다.

사실 이건 강신표 교수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민속학자들이 찍은 현장 사진을 통해 근현대 한국인들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재현하고자 기증사진자료집을 발간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장주근 전 경기대 교수의 기증 사진자료집에 이어 2008년에는 임동권 전 중앙대 교수가 기증한 2만 여장의 사진을 정리해 『月山 사진으로 민속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자료집을 발간한 바 있다.

강 교수 역시 “사진집은 별다른 내용이 없고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개인의 모습에 근현대사가 압축돼 있다는 설정인데, 누군가는 증언할 내용이라고 생각해요”고 말하면서 “한의원을 하셨던 부친께서 처방내리고 기록하시는 걸 중시 여겼는데, 그런 가풍에서 키우진 버릇인지 나도 자료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에 익숙했어요. 『배움의 길, 기록을 따라가다』에 실린 사진 자료들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들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책 속에 수록된 사진들에는 강신표 교수 부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세기 교육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다양한 사회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 일견 사적인 기록인 듯 보이지만, 그 삶 속에는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사실들이 투영돼 있다”고 신광섭 관장은 발간사에서 밝혔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의 학교 문화, 전쟁으로 피폐해진 서울과 피난지 부산의 모습, 일제강점기 전통 혼례와 1950년대 기독교식 결혼식과 장례식, 1970년대 격동의 사북 탄광 지역 사진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한 장면을 그대로 복기해내고 있다. 

『세계와 함께 나눈 한국문화』는 강 교수의 ‘올림픽 문화학술운동 연구보고서’로서, 구술자료와 학술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장은 강신표 올림픽 문화학술운동에 대한 구술사, 2장은 올림픽 관련 논문, 3장은 영문논문으로 구성돼 있다.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강 교수는 “사실 개인 사진 기록집보다 중요한 것은 올림픽을 학술문화적으로 조명한 후자의 책”이라고 강조했다. 일명 ‘88 서울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 이벤트에 관해 학자들은 거의 입을 닫고 있었다. 정치성에 희석된 올림픽이라는 진단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이 올림픽만큼 큰 사건은 없다는 게 강 교수의 판단이다. “작년에 북경에서 열린 중요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는데, 주제가 동경-서울-북경 올림픽 비교 분석이었죠. 그런데 서울 올림픽에 대해 아무도 나서서 분석하지 않더군요. 사실, 올림픽 개폐회식 기념식은 한 국가, 한 민족의 모든 문화적 역량이 응축돼 있는 부분이라 굉장히 중요합니다.”

책의 1장은 88년 서울올림픽과 관련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경남 통영시 태평동 ‘의령약국의 손자’였던 강 교수에게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기획을 권유한 이는, 그 ‘의령약국’ 앞집 ‘유약국’의 손자였던 당시 유덕형 서울예술전문대학장이었다. 한국전통문화와 문화인류학을 동시에 섭렵한 전문가였던 강 교수는 ‘올림픽이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는 점에서 문화축전 준비직을 수락했던 것이다.

그가 착안한 것은 단순한 문화행사 뿐만이 아니다. 아시안게임이 개최되던 1986년 존 맥칼룬 시카고대 교수와 브라질의 로베르토 다마타 교수, 스텐턴 휠러 예일대 교수 등과 1987년 서울에서 개최할 서울올림픽국제학술대회를 기획하는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비록 올림픽의 이면에는 한국의 불안정한 정치적 문제가 깔려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한국의 안정 이미지와 전통문화를 심어줄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결과였다.

물론 이 부분은 학계의 엄밀한 평가와 비판이 뒤따를 수 있지만,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마스터플랜 기획에서부터 올림픽이 열리는 전 과정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의 공은 평가될 필요가 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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