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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숨결 넘실거리는 '우주의 섭리를 가득 안은 자궁'
생명의 숨결 넘실거리는 '우주의 섭리를 가득 안은 자궁'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11.03.09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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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6> 흙

비목에 수액이 흐르고 석불에 피가 흐른다는 새봄이 왔구려! 이맘때쯤이면 “봄물에 방개 기어나듯 한다”고 뭇 벌레들이 잠을 깨고 스멀거리며 나오고 있을 터다. 그렇다.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임도 못 알아본다”고, 겨우내 여려진 살갗에 센 봄 햇살(자외선)을 받는 날에는 얼굴이 반들반들 새까매지면서 나른하게 봄을 탄다. 과유불급이 따로 없다. 자외선은 칼의 양날이라 병균을 죽이고 비타민 D를 만들어 뼈를 단단하게 하지만 너무 오래 받는 날에는 무서운 피부암이 생긴다. 그래서 피가 마르고 뼈가 녹는 된 들일(野業) 나갈 적에는 언제나 얼굴에다 자외선차단로션을 듬뿍 바를 일이다. 애석하게도 농부가 죽으면 어깨부터 썩는다고 하지!

무릇 흙이란 지구의 바위껍데기가 긴긴 세월 풍화작용으로 잘되 잔 가루로 부스러진 것. 흙은 땅이요 토양이요 대지라 했다! 이 흙에다 우리의 먹잇감인 食物을 주는 植物이 뿌리를 내린다. 뭐니 해도 흙에는 여러 생물들이 아우르며 살고 있어서 그들끼리 먹이사슬(food chain), 그것이 서로 설키고 얽힌 먹이그물(food web)을 이룬다. 그것들을 통틀어 ‘토양생태계’라 부르며, 정녕 거목 하나가 짙고 깊은 숲을 이룰 수 없는 법. 토양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에는 단세포생물인 세균, 곰팡이와 원생동물과 같은 토양미생물과 더 고등한 선형동물(선충류), 땅강아지나 개미 따위의 소형절지동물에다 환형동물인 지렁이, 두더지 같은 포유동물들이 뒤섞여있다. 군말할 필요 없이 그들의 서식처(삶터)가 흙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깃들여 사는 자리는 보통 10~15cm의 겉흙 즉, 표토(topsoil)로 곡식이 뿌리를 내리는 곳이며, 실은 거기가 바로 곧 흙의 속살인 셈이다. 밭 흙을 갈아 뒤엎어놓고 한 발짝 살짝 뒤로 물러나 물끄러미 쳐다보라. 일견하여, 촉촉하게 물기 밴 보들보들한 소녀의 살갗 같은 흙색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허나, 애석하게도 그 느낌을 필설로 다 못한다.

누가 뭐라 해도 흙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생명의 숨결이 넘실거리는 곳이다. 토양은 결코 무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적인 것. 씨알이나 새알이나 다 오롯이 둥글다! “땅에 씨앗을 심는 것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성적행동과 유사하다”고 어떤 이는 말했다. 맞는 말이다. 자궁에 씨를 심는 것과 흙에 씨앗을 뿌리는 것이 분명 닮았다! 우주의 섭리를 가득 안은 자궁이 곧 흙이다.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는 흙과 식물이 모두 다 우리의 어머니렷다. 그리고 식물(plant)은 양분을 만드는/광합성 하는 공장(plant)이다.

모름지기 살아있는 모든 것은?흙에서 태어나고 흙으로 되돌아간다. 내가 落地한 곳이 흙이요 죽어 묻힐 곳 또한 살가운 흙이 아닌가. ?笑入地란 말이 있으니 미소를 머금으며 땅으로 듦을 뜻하고, 臨死(죽음이 가까워옴)하면 흙내가 된통 고수해 진다하던데….고소한 땅내를 흠씬 맡고 잔뜩 허허 웃으며 죽으리라. 내가 왜 이러지?

그런데 기름진 흙에선 향긋한 土香이 풍긴다. 사실 흙 냄은 흙이 내는 것이 아니고 흙속의 세균(주로 방선균)들이 거름(유기물)을 분해하면서 뿜어내는 것으로, 그 풋풋한 냉이/인삼냄새 따위를 지오스민(geosmin)이라 한다. 한 줄기 소낙비가 내린 뒤에 나는 비릿한 땅 냄새도 지오스민이고. 그리고 농사를 누워 떡 먹기로 생각하다간 큰코다친다. 농사는 과학이요 예술이라 했다. 게다가 養樹得養人術이라고, 나무를 키워봐야 사람 가르치는 법을 터득한다. 곡식 키우기도 딱히 다르지 않으니 키움과 가르침은 마냥 기다리는 것이요, 절대로 드잡이하고 닦달한다고 되지 않는다. 어린새싹의 목을 조급히 잡아 늘인다고 크지 못 한다. 하여, 기다림은 꿈이요 바람이며 참기 힘든 갈망인 것.

옳거니, 젊어 흘리지 않은 기름땀은 늙어 피눈물이 되고, 春不耕種秋後悔라고 봄에 씨 뿌림하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하는 것. 맞다, 밭일은 대지와 접촉하는 본능적인 것이요, 야산 밭뙈기는 흙냄새 실컷 맡고 흙살 뒤집어쓰는 멋진 나의 수도장이다. 하여튼 하루에 열 가지가 넘게 자연의 소리/냄새를 듣고/맡으라고 한다. 헌데, 정녕 찬란한 세기의 이 봄을 몇 번이나 맞고 죽을지 알 수 없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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