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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을수록 덧나는 의혹 … 어두운 시대의 징표 걷어내야
덮을수록 덧나는 의혹 … 어두운 시대의 징표 걷어내야
  • 이승환 고려대 교수
  • 승인 2010.12.18 11: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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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올해의 사자성어 풀이_ 장두노미(藏頭露尾)

감출 장(藏), 머리 두(頭), 드러낼 노(露), 꼬리 미(尾).

‘장두노미’란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모습”을 가리키며, ‘노미장두’라고도 한다. 머리가 썩 좋지 않은 타조는 위협자에게 쫓기면 머리를 덤불 속에 처박고서 꼬리는 미처 다 숨기지 못한 채 쩔쩔맨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이 말은 중국 원대의 문인 張可久가 지은 『점강진·번귀거래사』(點絳唇·歸去來辭), 그리고 같은 시기의 王曄이 지은 『도화녀』라는 문학작품에 나오는 성어다. 진실을 밝히지 않고 꽁꽁 숨겨두려 하지만 그 실마리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속으로 감추는 바가 많아서 행여 들통 날까봐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비슷한 성어로 ‘장형닉영’(藏形匿影)이 있다. 이는 “몸통을 감추고 그림자마저 숨긴다.”라는 뜻으로, 철저하게 진실을 감추려드는 태도를 가리킨다. 반대되는 성어로는 직절료당(直截了當) 또는 개문견산(開門見山)이 있다. ‘직절료당’이란 속으로 감춰두지 않고 명명백백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일을 뜻하고, ‘개문견산’이란 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산이 보이는 것처럼 정정당당하게 진실을 밝히는 일을 말한다. 

올해에는 천안함 침몰, 민간인 불법사찰, 영포 게이트, 한미 FTA 졸속 협상,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 수많은 사건이 터졌다. 일이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진실을 공개하고 의혹을 해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진실을 덮고 감추기에 급급해했다.

행여 드러난 꼬리를 붙들고서 몸통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있으면 곧 국가가 나서서 국민을 기소하거나 검찰이 나서서 공안사범으로 몰아버리는 행태가 일상화됐다. 국가를 감시해야할 주권자가 오히려 국가로부터 감시를 받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0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17세기 갈릴레이의 시대로 후퇴했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발명하여 천체를 관측한 끝에 지동설을 내놓았지만, 교회권력은 그를 이단으로 몰아 종교재판에 회부하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암흑의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자는 이단으로 처단받고,  오직 거짓과 음모 그리고 감시와 처벌만이 성행하게 된다. 온갖 의혹과 관련된 허위보고, 증거인멸, 몸통감추기, 깃털자르기, 진실을 원하는 사람 겁주고 사찰하기 등의 행태는 암흑시대의 전형적인 징표들이다. 하지만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던 것처럼, 진실은 영원히 덮어둘 수 없다. 

교수사회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장두노미’를 채택한 것은 우리사회가 하루 빨리 어두운 시대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승환 고려대·철학

필자는 미국 하와이주립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 『유가사상의 사회철학적 재조명』, 『유교 담론의 지형학』등이 있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한계를 유교사상을 통해 보완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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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 2010-12-22 10:00:41
불행하게 숨진 막스 아브라함과 전자의 기본전하량은 존재하지 않으며 분수전하가 존재한다는 실험을 했었던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물리학교수 펠릭스 에렌하프트를 기리며~~~

현대물리학의 선구자
임경순 지음, 다산출판사(2001)
등등에 밀리컨과 에렌하프트의 전자의 전하량 측정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제가 연구한 이론과 법칙을 아브라함과 에렌하프트에게 헌정합니다. (__)

빌립 2010-12-22 09:57:36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특수상대론)이 확립되어 가는 동안에도 이를 마지막까지 반대하면서 비극적인 인생을 마친 사람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이 지니는 가설적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기 때문에 오히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자신의 고전 전자기적 이론을 마지막까지 고수했던 막스 아브라함이 바로 그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막스 아브라함은 1897년 22세의 나이로 당시 베를린 대학의 거물급 물리학자인 막스 플랑크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1900년부터 괴팅겐 대학의 사강사로 있었는데 이때 그는 아인슈타인보다 3년 먼저 속도 증가에 따르는 전자의 질량 증가 현상을 고전 전자기학을 이용해 설명했었다.(1902년)

또한 그는 20대에 이미 고전 전자기학의 권위자로 인정받아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까지 집필했을 정도로 처음에는 잘 나가던 과학자였다.

그러나 고전 전자기학에 정통했던 이 젊은 천재 물리학자는 누구에게나 날카로운 비판을 내놓곤 했는데 당시 독일 과학의 대부격이었던 빈과 특수상대론을 옹호하던 플랑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순수했지만 어리석었던 거물급에 대한 그의 비판은 그의 교수임용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8년 동안괴팅겐에서 사강사로 있었지만 독일의 어느 대학도 그를 교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08년 그는 할 수 없이 독일이 아닌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교수로 갔다. 그러나 그는 당시로는 낙후되었던 미국 과학의 분위기에 만족할 수 없었고 불과 6개월만에 독일로 돌아왔다.

1909년 그는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학 교수가 됐다. 그러나 전쟁으로 이탈리아와 독일이 적대국이 되어 그 자리마저 잃게 됐다. 독일에서 산업체를 전전한 그는 마침내 1921년 꿈에도 그리던 독일 대학 교수, 즉 아헨 공대 교수가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헨을 가던 중 뇌종양으로 쓰러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누구보다도 에테르와 고전 전자기학을 사랑했던 그는 자신의 이론만큼이나 비극적인 삶을 마쳤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이 막스 플랑크의 적극적 지지 속에 성장하는 동안 고전 전자기론을 바탕으로 이에 철저히 반대했던 한 천재 물리학자는 자신의 이론과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