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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프로젝트와 인종편견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미술사 프로젝트와 인종편견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 교수신문
  • 승인 2010.11.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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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바인드먼 하버드대 교수가 말하는 ‘서양미술과 흑인 이미지’

데이비드 바인드먼 교수
서양미술에 나타난 흑인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박종원, 이하 한예종)는 지난 25일부터 이틀간 서양미술사학자 데이비드 바인드먼(David Bindman) 하버드대 교수를 초청, ‘서양미술에 나타난 흑인 이미지’를 주제로 특별강연회 및 워크숍을 개최했다.
데이비드 바인드먼 교수는 곰브리치나 비트코버와 같은 최고 영예의 서양미술사 연구자들에게 수여되는 더닝 로렌스 석좌교수직을 역임한 서양미술사학자로 인종과 미술이 만나서 이뤄내는 새로운 미술사 연구영역을 국내에 소개했다.
한예종 미술원(원장 곽남신)의 ‘국제 석학 초청 강연회’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강연회에서 바인드먼 교수는 고대부터 초현대까지 서양 미술의 긴 역사 속에서 흑인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회적으로 활용됐는지를 들려줬다.
특히 서양 근대 문화의 인종적 편견과 극복과정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논의하는 자리로 서양미술사학계가 지난 반세기 동안 진행해 온 미술사 프로젝트 『흑인 이미지 연구총론』(10권)에 대한 바인드먼 교수의 솔직한 증언도 유용했다. 26일 진행된 데이비드 바인드먼 교수의 워크숍 강의를 발췌, 요약했다.

나는 앞서 『서양미술에 나타난 흑인 이미지』시리즈와 고대부터 20세기 초까지 흑인의 재현을 다룬 책을 출판한다는 프로젝트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진행상황에 대해 강연했다. 프로젝트의 미래는 당초 계획에 없었던 제 5권 『20세기』 편과 『아프리카 미술에 나타난 흑인 이미지』라는 자매편을 2014~2015년 사이에 추가로 출판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나는 이 책의 연대기순인 내러티브를 살펴보고 싶다.

테크닉과 미디어의 변화 외에도 20세기와 그 이후 흑인 혈통의 인물들을 재현하는데 가이드라인이 되는 큰 주제들이 있다. 벨기에를 포함해서 유럽열강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제국주의적 야망을 품으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이 증가했고 아프리카 예술을 유럽과 미국으로 수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변화는 흑인의 재현을 흑인 예술가들 자신이 맡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흑인 이미지는 자화상의 문제가 되고 있다.

흑인의 재현을 흑인 예술가들이 맡다

큐비즘이 아프리카 가면이나 조각의 발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아프리카 예술과 실제 흑인에 대한 관심은 1900년대 모든 나라에서 아방가르드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전반부의 작품을 정리하면서 나는 할렘 숌버그센터의 「흑인생활의 면모」라는 아론 더글라스의 4점의 탁월한 연작에서 어떤 지침을 발견했다. 첫 번째 작품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흑인」은 1900년에서 1920년까지 흑인의 재현을 주도했던 대부분의 회화, 조각, 일러스트레이션을 바라보는 일정한 틀을 제공하는 것 같다. 파리를 주요 거점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프리카 양식에 가장 골몰한 키르히너, 놀데, 슈미트 로트루프 같이 베를린과 드레스덴에서 활동한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이 중심축이었다. 브란쿠시, 엡슈타인 같은 조각가들은 특히 아프리카 양식과 전형(stereotype)에 영향을 받았고 그것을 서구적 주제에 적용하려고 했으며 그 뒤로 최근에는 엘리자베스 캐틀릿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이 흑인모델보다는 앞서 예를 든 아프리카 양식에 더 영향을 받았다.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시카고와 할렘의 도시풍경으로 이동하면서 도시적 요소가 5권의 주요 단층선을 그리며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도시적 요소는 역설적이게도 미지의 아프리카에서 풍기는 원시성을 환기해낸다. 바로 이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유럽의 현대성이라는 맥락에서 도시풍경을 묘사하는 문제와 씨름하는 흑인예술가들을 보게 된다. 이런 노력이 아치볼드 모틀리와 팔머 헤이든의 걸작 시리즈와 제임스 반더지의 독특한 사진을 탄생시켰다.

백인 작가 위주에서 흑인 작가 위주로 넘어오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 식민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더 심한 개념적 단절이 생겼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정체성과 아프리카에 대한 뿌리의식에 사로잡혀 20세기 내내 작품을 창작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작품군으로 특히 남미에서의 크레올화와 흑인인구를 둘러싼 상이한 조건이라는 문제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다. 반면 흑인주제를 다룬 것으로 파악된 작품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른 지배국가 아래 발전된 식민주의와 흑인 이미지가 갖는 관계, 그 이미지와 아프리카, 유럽과의 관계, 모더니즘과의 관계라는 문제에 풍부함과 복잡성을 더해준다.

시카고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중인  극작가 보니 그리어를 담은 마우드 술터의 사진을 하인드번 교수는 빼어난 ‘흑인 이미지’로 평가한다.
5권의 이쯤에서 아론 더글라스의 회화를 기준으로 한 틀이 무너진다. 1960년대와 일부 그 이전의 작품들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흑인 정체성이 의식적으로 주창되면서 저항미술이 주조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기법을 이용해서 흑인 열망의 페이소스와 품격을 보여주는 찰스 화이트 같은 작가를 발견한다. 흥미로운 점은 흑인예술가들이 분노를 표현하는 통로가 다르다는 점이다. 엘리자베스 캐틀릿 같이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밥 톰슨과 로버트 코울스콧 같이 좀 더 미묘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종종 이전 작품이나 팝 이미지를 이용해서 풍자적인 그림을 그렸다. 

1980년대로 시작하는 마지막 장은 복잡하다. 흑인 디아스포라의 성격이 변했고 세계화로 인해 국적이라는 암묵적 범주가 해체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아프로캐리비안 아티스트들이 뉴욕에 정착할 수도 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가 유럽에 가고, 아프리카인이 어디든 갈 수 있다. 또한 예술작품의 형식은 극도로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그로 인해 정체성의 문제가 훨씬 절박한 화제로 대두할 수 있다. 소냐 보이스의 혼합매체 작품인 「타잔에서 람보까지(1987)」같이 정체성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인상적인 작품들이 등장한다.

‘시리즈’의 유럽중심적 경향 완화 방안

마지막으로 남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5권이 어디서 끝날 것인가. 2000년경 또는 2014년? 나는 5권이 최대한 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선정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대한 현재에서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른 문제는 제목의 ‘서양’이라는 말과 관련된다. 비록 ‘유럽에서 교육받은 예술가들’로부터 아프리카에서 교육 받았을지 모르지만, 자신을 아프리카 예술가로만 생각하려는 미국으로 건너온 많은 아프리카 예술가들은 어떤가. 또한 아프리카의 정체성이 매우 중요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문제도 있다.  내가 제안해서 받아들여진 해결책은 『아프리카 미술에 나타난 흑인 이미지』라는 시리즈의 자매편이다. 인도, 중국, 일본 같은 다른 문화에 종종 인상적인 흑인이미지가 소수 있으며 나는 이것을 자매편 부록에 실을 것을 제안했다. 이 자매편이 이제까지 나온 시리즈 전체의 유럽중심적인 경향을 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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