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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이해를 넘어 응용으로
[나의 강의시간] 이해를 넘어 응용으로
  • 송치만 건국대·커뮤니케이션학과
  • 승인 2010.11.22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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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나는 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기호학을 강의하고 있다. 기호학이란 기호를 연구하는 학문일 테이고 더 나아가 기호들이 모여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일 것이다. 우리가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기호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이 커뮤니케이션학이란 집에서 기호학이 방 한 칸을 차지할 수 있는 이유인 듯하다.

기호학을 가르치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인문학에 입문하는 신입생의 대다수는 고등학교에서 전공 관련 지식을 맛보고 오지만 기호학은 사정이 다르다. 온갖 낯선 용어와 개념들이 한 학기 내내 쏟아져 나온다. 이 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교수님, 저는 기호학하고 잘 안 맞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곤 한다.

좀 더 많은 학생들과 함께 즐겁고 유익한 강의를 만들어 보려는 나의 도전은 이런 벽에 부딪히면서 시작됐다. 이해를 넘어 응용기호학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도전장을 감히 내민 것이다. 인문학이 응용을 얘기하면 손가락질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어려운 개념을 이해시키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마치 늘 나를 따라 다니는 그림자와 같다.

나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있듯이 온갖 정보가 널려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 공간이다. 기호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나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를 찾으려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웹 서핑을 했다. 사진, 도표, 광고, 그림, 음악, 건축물 등 눈에 띄는 기호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TV를 보다가 흥미로운 광고가 나오면 메모해 뒀고 심지어 오락 프로그램도 나의 수업 자료가 됐다. 지금 내 수업에서 ‘개그콘서트’는 빼 놓을 수 없는 단골손님이 됐다.

이해와 응용을 강조하는 나의 강의 방식은 발표와 시험에도 적용된다. 학기 종료 전 2~3주 동안 조별 발표를 진행하고 시험은 두 번 모두 치른다.

발표 주제의 선택은 언제나 자유롭게 주어진다. 학생들은 영화, 드라마, 광고, 전시회, 축제, 스포츠 이벤트, 심지어 결혼식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기호학적 시각으로 분석해낸다. 발표 자료는 전날 저녁에 강의 게시판에 업로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나도 최선을 다해 꼼꼼하게 읽고 논평 준비를 한다.

발표를 하지 않는 학생들도 자료를 미리 읽고 토론을 준비한다. 토론 참여도 역시 평가의 대상이기 때문에 꽤 활발한 논의가 진행된다. 토론과 교수의 논평을 통해 발표자들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피드백은 분석과 응용 과정의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한다. 인터넷에 돌고 있는 다른 사람의 발표 자료를 적당하게 활용하려는 학생들은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리는 일이 벌어진다.

내가 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시험이다. 시험은 평가와 정리라는 이중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과목의 시험 문제를 만드는데 적어도 5~6시간이상을 투자한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최대한 활용해서 풀 수 있는 문제를 준비한다. 단순하게 ‘개념을 설명하라’, ‘논해봐라’는 식의 문제를 탈피해서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답안을 요구한다. 학생들이 종종 공부를 해도 풀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강의 자료를 달달 외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수님 강의는 한 학기에 한 과목만 들어야 해요” 이렇게 푸념하는 학생들이 많다. 과제를 많이 내주는 것도 아니고 강의 준비를 특별히 해야 하는 것도 없지만 학생들은 늘 부담을 갖는다. 그러나 이제 나의 학생들도 어떤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것을 응용할 수 있을 때 진정 의미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내일도 이해를 넘어 응용에 이르는 즐거운 씨름 세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송치만 건국대·커뮤니케이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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