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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업무는 “형님 먼저” … 항상 “제자들아, 이건 어때?”
행정업무는 “형님 먼저” … 항상 “제자들아, 이건 어때?”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10.25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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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공대 소프트웨어공학과의 독특한 학과문화

“잘 가르치려고 해도 학생들이 동의해줘야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금오공대 소프트웨어공학과는 독특하다. 학과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가 독특하다. 이 학과는 지난 2월, 전공이수학점과 졸업이수학점을 대폭 늘린 공학교육혁신 방안을 확정했다. 전공이수학점은 65학점에서 90학점으로, 졸업이수학점은 140학점에서 150학점으로 늘렸다. 학과 교수들이 6개월을 연구했다. 공청회를 열었다. 재학생 참석율이 70%다. 결과는 1명을 제외한 전원 찬성. 이 때만해도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지난 19일, 금오공대 소프트웨어공학과는 또 다시 학생총회를 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학생총회를 소집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에는 ‘학기 중 수업결손 제로화 대책’을 통과시켰다. 재학생 214명 중 175명이 참석해 87%의 지지를 얻었다. 수업결손대책은 학생자치활동으로 인해 학기 중 발생하는 수업결손을 최소화하려고 개강 직전 2박 3일간 합숙프로그램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가 모두 참여해야 한다. 이곳은 교육에서 만큼은 최종 결재라인이 학생들이다.

사진제공: 금오공대 소프트웨어공학과

2년마다 돌아오는 교과과정 개편 논의에도 학생들은 초안부터 참여한다. 학년별 학생대표들이 초안에 투입되고, 수정과정은 전체 학생들에게 맡긴다. 묻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예컨대 3학점 안에서 소화하기 어려웠던 과목은 둘로 쪼개 6학점으로 개설하는 식이다. 어려운 과목은 나누고 쉬운 과목은 합치기도 한다.

사실 교수와 학생 간의 의사결정 문화는 ‘조금 더’ 독특한 학과 교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금오공대 소프트웨어공학과는 교수가 총 9명이다. 정교수 4명, 부교수 2명, 조교수 3명이다. 고참급 교수들의 비율이 높다. 그런데 이곳의 학과 운영방식은 시쳇말로 ‘짬순’이 아니다. 오히려 역순이다. 학과 행정업무가 떨어지면 일단 고참급 교수부터 배정된다. 이번 학기만 해도 독서인증제 지도교수 추천(3명)을 받았는데 윗선부터 3명이 ‘차출’됐다.

행정업무 부담이 많은 학과장도 고참급 정교수 4명이 2년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올해부터 임기를 시작한 김병만 학과장은 정교수 4명 중에서 가장 ‘막내’다. 김 교수의 후임 학과장은 최고참 교수의 몫이다.

새 학기 교과목 개설 분담도 공평하게 1과목 씩, 순번선택제다. 모든 교수가 공평하게 1과목 씩 선택하면 1차 시기가 끝난다. 2차와 3차 시기도 모두 공평하게 1과목 씩 선택권이 주어진다. 먼저 선택하는 건 선배 교수들이지만 ‘세 바퀴’를 돌아야 하는 건 모두 같다. 이렇게 하면 젊은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과목부담이 준다.
금오공대 소프트웨어공학과는 민주적 의사결정구조 때문에 늘 과정이 많다. 기획하고, 묻고, 수정하고, 또 묻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지만 예전보단 더 큰 걸음을 뗄 수 있다.

임은기 금오공대 교수(소프트웨어공학과)는 “구성원들의 의중을 묻고 학과의 중요한 일을 함께 결정하는 의사결정구조는 10여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난 학과문화”라며 “이 같은 실천적 프로젝트들을 생활 속에서 익히면 ‘지방대’라는 지역적 불리함도 쉽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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