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4:20 (일)
[대학정론] 大入제도, 진화하고 있는가
[대학정론] 大入제도, 진화하고 있는가
  • 남송우 논설위원 / 부경대·국문학
  • 승인 2010.10.18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대학의 역사는 대학입시의 역사라 할만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입시 정책은 바뀌어져 왔다. 이 땅에 완벽한 대학입시 전형 방법이 존재할리 없다. 때문에 더 나은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방안을 찾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는 입학사정관제도라는 새로운 입시전형이 대학입시의 시험대에 올려져 있다. 이 제도에 의해 모든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생각보다는 빠른 속도로 대학들이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부의 당근정책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소위 이 제도를 선도할 대학을 선정해서 지원함으로써 입학사정관제도를 빠른 시간 안에 정착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효과 때문인지 2011학년도 입시에는 입학사정관 제도를 실시하는 대학이 전국에 118개 대학이나 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내놓은 방안에 의하면, 2012년을 입학사정관제 정착의 해로 삼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한국대학 입시제도의 근간은 입학사정관제가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의 현실은 이 제도를 뒷받침해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게 된 이유가 많지만,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사교육에 짓눌려 있는 공교육의 위상을 회복하고, 성적 위주의 학생 선발에서 벗어나 학생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으로의 전환이라는, 현재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를 근원적으로 넘어서 보고자함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공교육의 정상화 없이는 입학사정관 제도는 모래 위에 집짓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이 제도를 시행하는 대학에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의 교과과정과 학생활동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교육개혁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학생들이 초중고등학교 생활 속에서 학과성적이 전부가 아니고, 자기적성에 맞추어 자기 잠재력을 키워가고 있는 교육을 받고 있다고 스스로 인식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 초중고등학교 현장 교육을 지금과는 다른 차원으로 바꾸는 작업부터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대학에 제출할 자기소개서 정도는 자기 스스로 작성할 수 있는 표현력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설계도를 어느 정도는 그릴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시행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도는 이러한 바탕이 마련된 상황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도를 밑받침할 수 있는 바탕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시행될 때 언제나 많은 문제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수시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현실적으로 만나고 있다. 입학사정관들이 검토해야 할 서류 중 자기소개서를 학생 스스로 작성해서 제출하고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이 한 가지 서류만 두고 보더라도 대필을 확인해야 하는 작업에 더 신경을 써야 하고, 많은 경우 학생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써준 자기소개서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학생선발을 위한 자료로 검토해야 하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입학사정관제도가 생명으로 삼아야 할 공정성과 신뢰성을 찾을 수가 없다.

대입용 자기소개서 대필업이 공공연하게 우후죽순처럼 성업을 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현실을 모든 제도시행의 초기에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상황을 충분히 예상하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언제나 한국 대학입시 제도의 변화는 오랜 동안의 연구검토나 보완책 마련 후에 시행되기보다는 졸속적인 경우가 많았다. 졸속도 변화이지만, 진화는 아니다. 진화를 위해서는 조건과 환경이란 바탕이 전제돼야 한다.

입학사정관제도의 장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좋은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입학사정관제도는 입시를 위한 또 하나의 사교육 시장만 키워낼 뿐이다.

남송우 논설위원 / 부경대·국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