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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책의 물질성, 과거의 향기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책의 물질성, 과거의 향기
  • 권보드래 고려대·국문학
  • 승인 2010.10.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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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몇 십 년 전 책들을 무더기로 찾아냈다. 김동환의 『국경의 밤』, 양주동의 『조선의 맥박』, 조선문학가동맹 詩부에서 펴낸 『3·1 기념시집』, 유치환의 『생명의 서』, 여상현의 『칠면조』, 그리고도 또 몇 권. 『생명의 서』나 『칠면조』는 물자도 기술도 부족하던 해방기의 산물이라 그런지 넘기기 조심스러울 만큼 낱장이 떨어져 나오고, 반면 『국경의 밤』이나 『조선의 맥박』은 상기 멀쩡하다. 색은 바랬으리라 짐작되지만 천으로 곱게 제본한 표지도 거의 온전한 것이, 그 시절의 기술과 성의를 새삼 찬탄케 만든다.

책들은 새삼스럽다. 1932년 문예공론사에서 나온 『조선의 맥박』이 이렇듯 호화로운 장정일 줄은 몰랐던 일이고, 1925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출판된 『국경의 밤』이 가로 10cm 세로 15cm 남짓의 자그마한 판형이었을 줄은 예상 밖이다. 판권지를 들여다보면서 흠, 이 시절 양주동이 평양 신양리 44번지에 살았나 보다, 문예공론사는 직접 차린 출판사였나?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고, 김억과 한성도서주식회사의 관계는 무언가 궁금해 하기도 한다. ‘책의 裝幀史’를 주제로 글 쓰는 누군가가 나와도 좋겠다는 데 공상이 미칠 무렵, 이런 공상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멋쩍어진다. 결혼 전에는 식민지시절 딱지본을 구경한 것이 고작이었지만, 근 10여 년래는 옛날 책 구경을 실컷 해온 편이다. 문헌학을 전공하신 시아버지께서는 틈틈이 『삼강행실도』며 『두시언해』 같은 책을 구경시켜 주셨고, 서안에 펼쳐놓고 읽는 크기부터 도포자락 안에 휴대하는 크기까지 다양한 판형의 모양새를 알려 주셨으며, 목판활자를 손에 쥐어 주시기도 하고 魚尾의 시대별 변천도 일러 주셨다.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관련된 책자 1백여 종을 물려주신 것도 下世 1년 전쯤-벌써 여러 해 전이다.

서재에 『음빙실문집』이며 『공법회통』이 굴러다니고, <개벽>과 <신여성>과 <신동아>가 꽂히고, 『영랑시집』이며 『청록집』 같은 책이 익숙해진 것은 그 후부터다. 숱한 고서들을 ‘대충’ 보관하고 ‘대충’ 다루시고, 그게 책과 사는 법이라고 말씀하신 시아버지의 영향인지, 대강 꽂아놓고 대강 잊어버린 채 살지만, 종종 그 책들과 마주칠 때면 만남은 늘 새삼스럽다. 수십 년을, 일백 여 년을 묵은 책의 향기란 언제나 두근거리고, 사람의 일생에 맞먹는 그 역사는 언제라도 기적 같다. 멋대로 원본을 벗어난 새 편집본의 문제-예컨대 『무정』에서 ‘패성학교’가 ‘대성학교’가 되고 ‘가멸게’가 ‘가볍게’가 된 내력이라거나 가까이는 「관촌수필」에서 이문구 특유의 유장한 문장이 토막 나고 끊어진 그런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원본의 물질성을 벗어나 ‘나름의 진실’, ‘나름의 해석’을 추구한다는 게 가능키나 한가 여겨지기도 한다. 원본에는 별 관심 없이 영인본을 뒤지는 데만 골몰한 스스로의 연구 행태가 씁쓸하게 여겨지는 것도 그런 때다.

책의 물질성이 그럴진대 사람은 어떠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는 것과 보고 발언한다는 것과, 구술과 인터뷰와…… 비약이 번져가다가, 하긴 모든 것이 ‘눈[眼]’과 사람됨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만난 작가란, 그것도 동년배 작가가 아닌 전 세대의 작가란 두엇에 불과한데, 그때마다 내가 얼마나 아둔하게 굴었는지를 떠올리면 그렇다. 갓 대학원에 입학했을 무렵 이문구 선생을 뵐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내 눈에 그네는 ‘좌도 우도 아닌 어중간한 인사’에 불과했고, 이듬해인가 박두진 옹을 먼발치에서 보았지만 가냘픈 몸피를 겨우 지탱하고 있던 그분 역시 ‘왕년의 순수 시인이었던 딱한 노친네’처럼 보였을 뿐이다. 자유실천문인협회를 주도하는 한편 은사 김동리에 대한 충정 또한 놓지 않았던, 이념을 가로지를 수 있는 견결성을 갈망했고 실천했던 이문구라는 사람을 헤아리기엔 시야가 너무 좁았고, 1950~60년대 <사상계>와 박두진·조지훈의 관계를 짐작하기엔 깜냥이 미치지 못했던 탓이다.

지금 시선과 지금의 지식은 또 바뀌겠지만, 스스로 바라건대 ‘미래에 대한 예의’와 더불어 ‘과거에 대한 예의’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진 않았으면 한다. ‘미래에 대한 예의’가 윤리적 원칙으로선 더 우선시돼야 하겠으나, 책을 다루고 책의 물질성을 냄새 맡는 직업처럼 ‘과거에 대한 예의’에 어울리는 자리가 또 어디 있으랴. 물론 가치중립적인 듯 보이는 이 시간의 방향에는 그때그때 강한 입장이 깃들어, 지금 ‘과거에 대한 예의’라 한다 해도 그 의미가 일의적이지 않고, 지금과 10년 후, 20년 후를 나란히 비교한다 치면 더욱 그렇겠지만 말이다. 입장을 갖고 입장들을 헤쳐 나가는 것은 또 다른 몫이고, 즉물적 물질성에 현혹되지 않는 五感을 단련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시간에 대한 감각은 필요할 것이다. 다가올 시간과 지나간 시간-둘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복이 있기를 바라지만, 혹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것이 ‘지나간 시간’ 쪽이라면, 그건 이문구나 박두진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맛보게 되는 후회의 씁쓸한 맛 때문일 수도 있겠다.

□ 이 글은 <근대서지>제1호(2010.3)에 수록된 필자의 글에서 발췌, 재수록한 것입니다.

권보드래 고려대·국문학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아프레걸 사상계를 묻다』등의 저서와 「문학 범주의 형성 과정」등의 논문이 있다. 내일을 여는 젊은 작가상(비평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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