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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사색과 방황의 공간 … 자율성 확보 위한 구체적 방안 찾았다”
“대학은 사색과 방황의 공간 … 자율성 확보 위한 구체적 방안 찾았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05.31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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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 3년차 접어든 김윤수 전남대 총장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1천만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살아있는 화석’, ‘나무의 고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실 인간에게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지, 메타세쿼이아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단풍물이 들었다 진 자리에 꽃이 피듯, 자연은 응당 그러니까.
전남대 정문을 들어서면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만날 수 있다. 1백 미터 남짓이나 될까. 그 길 위에 1천만년이 겹친다. 잡히지 않는 상념에 빠져든다. 메타세쿼이아가 꽃을 틔우는 5월에 김윤수 전남대 총장을 만났다.

“어떻게 느끼십니까? 괴테의 말처럼 캠퍼스는 ‘창조를 위한 고독한 공간’이어야 하는데, 요즘은 땅값도 비싸고 건물이라도 많이 지어야 ‘좋은 총장’으로 대접 받는 세상이니, 좀 방황도 하면서 사색하며 거닐고 싶은 캠퍼스를 만들고 싶은데… (총장으로서) 반성할 게 많습니다.” 정문이 인상적이라며 가볍게 건넨 인사말에 김 총장의 교육관이 불쑥 튀어나온다. 거점국립대 총장으로, 취임 초부터 ‘대학 교육 전도사’를 자임해 온 김윤수 총장 특유의 교육관은 자신의 전공인 임학에 뿌리내리고 있다. 취임 후 2년 내내 ‘토대’와 ‘기다림’을 강조한 배경이다. 독특하다.

‘김윤수식 교육 드라이브’가 3년째로 접어들었다. 올해는 법인화·성과연봉제·연합대학 등 지역거점국립대로서 풀어내야 할 현실과제가 만만찮다. 어떤 복안을 갖고 있을까. 김 총장은 “우선 순위는 여전히 교육”이라고 말했다.

 

● 일시:  2010년 5월 24일(월) 오후 2시
● 장소: 전남대 총장실
● 대담: 최익현 편집국장
● 사진·정리 :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김윤수 총장은 사소한 일에도 신중을 기하고 고민을 많이 한다. 요즘 그는 하이데거의 『숲길(Holzweg)』에서 사색한다. “숲이라는 게 사실 길이 없죠. 숲에는 길이 없다, 사람이 지나고 나면 길이 되는데…” 김 총장은 인터뷰도 잊은 듯 상념에 빠져들었다. “개인의 내면을 숲에 비유하자면, 자기 앞에는 길이 없는 것이죠.” 김 총장은 임기 2년을 남겨두고 있다. 김 총장이 낸 길은 학문탐구로 울창한 숲길이 될 수 있을까. 창조를 위한 고독한 숲, 그것은 김 총장이 그리는 대학의 본질과 가장 맞닿아 있다.
△1949년 전남 광주 출생 △전남대 농과대 졸업(197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농학박사(1983) △전남대 교수(1984) △전남대 대학원장(2005) △18대 전남대 총장(2008)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현재) △저서 『임산화학실험서』(1998), 『목재보존과학』(2007)

사진 = 최성욱 기자

△ 오늘날 국립대의 기능과 책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기에 총장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어려운 질문이다. 상식적 기준으로 논의를 좁혀보자. 교육은 효율과 공익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요즘 대학가는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공익이 어느 정도 뒤로 물러나는 상황아닌가. 국립대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효율성 탓에 소멸되는 학문분야를 보호·유지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예컨대 인문·기초과학을 지켜내는 일은 점점 사립대가 맡기 힘들어질 것이다. 국립대의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CEO형 총장은 반대다. 국립대 총장은 조정자(코디네이터)로서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대학의 거버넌스적인 측면을 고민하게 되더라. 대체 ‘어느 선까지 민주주의를 적용시킬 것인가’ 같은 것 말이다. 대학은 진리탐구의 場인데, 진리탐구가 반드시 ‘과반수의 민주주의’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비롯해) 대학 구성원들이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 국립대 법인화 전환의 파고 앞에서 대학의 자율성은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교육은 효율성 못지않게 공공성도 중요하다. 재정자립도가 낮고 산업구조가 취약한 비수도권 국립대는 경제논리나 시장가치로 접근하는 것에 특히 더 신중해야 한다. 실제로 경쟁력이 약한 비수도권대학이 과연 자생력을 갖춰나갈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큰 게 사실이다.

국유 재산의 무상양도와 수익사업도 일정부분 가능해짐에 따라 대학간 빈부격차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혜성 조건을 안고 전환하는 서울대만큼 비수도권 국립대에도 지원이 될지 미지수다.

현재 비수도권 거점국립대들과 하나의 공동체라고 인식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광주·전남지역 국립대의 대학원 과정을 통합 운영하는 안도 열어놓고 있다. 경쟁력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공동연구하고 교육체계를 다져간다면 발전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성과연봉제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양날의 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밑에 사람 잘라서 윗사람 주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못하는 사람에게 한푼도 안주는 페널티성 성과급이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지 의문이다. 성과연봉제를 먼저 시행한 대기업도 기본급은 보장해주는 대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지 않나. 할 수 있는 터는 만들어 놓고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할 수 있게끔 제도를 정비해야한다고 본다.”

△ 지난해에는 교육성과 평가의 일환으로 학과평가를 도입했는데.

“기본적으로 대학본부 중심의 교수업적평가는 한계가 있다. 단과대학 중심 평가에서 학과평가로 전환했다. 평가는 교육부문에 한정하고 결과를 교수의 성과급에 반영했다. 지난해 12개 학과를 우수학과로 선정해 인센티브 500만원을 지급했다.

전체 교수들의 경우 3개 등급으로 나누어 교원성과급을 차등지급한 것도 변화다. 이 외에도 연구업적이 우수한 교수에게 최대 2년 범위 내에서 조기승진이나 정년보장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신규채용된 교원의 경우 최초 재계약시 동료평가제를 도입하고 정년보장심사에서 국내외 학자들의 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 취임 초부터 강조해온 ‘알찬교육’은 잘 지켜지고 있나.

“대학교육을 바꾸려면 ‘까닭 없는 좌절감’에 사로잡힌 비수도권대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비판적 성찰의 길, 즉 학문에 전념하게 만들지가 관건이다. 초년생 교육프로그램에 공력을 많이 쏟았다. 입학 전후를 나누고 연결시켰다. 예비 신입생들에게는 외국어집중교육 캠프, 기초공학 캠프 등을, 입학 이후에는 ‘아하 학습공동체’, 재학생 멘토링, 저명인사 특강을 제공한다.

지난해 기초교육원을 출범시키면서 교양과목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학생이 배우고 싶은 과목이 아니라 ‘학생이 반드시 공부해야 할 과목’이 중점이다. 文史哲 위주의 핵심교양을 강화해 ‘대학은 열심히 공부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목표다. 덧붙여 성공적인 교육개혁을 뒷받침하려면 평가체계가 교육자원 투입 위주에서 ‘교육성과’로 전환돼야한다고 생각한다.”

△ 결국에는 돈이 문제다.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방안은 무엇인가.

“국립대의 경우 정부가 재정지원사업의 대부분을 목적경비로 지원하고, 그 성과를 토대로 지원여부와 지원액수를 결정한다. 정부에 대한 재정의존율이 큰 비수도권 국립대가 자율성을 침해받는 근본적인 구조가 있다. 대학 자체적으로 자율과 책임경영의 풍토를 마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취임 직후인 2008년 9월, 전남대는 국립대 최초로 ‘재정관리본부’를 설치했다. 교내외의 모든 사업을 평가하고 일몰제를 적용했다.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과감하게 중단하자는 것이다. 사업효율성을 중심으로 중복투자부터 걷어냈다. 대학본부에 집중된 재정을 대폭 줄이고 단과대 책임제로 전환했다. 단과대학 지원교부금을 7%에서 12%로 올렸다. 취임 후 2년째 등록금이 동결됐지만 별 무리없이 운영되고 있다. 언어교육원, 평생교육원, 기숙사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합하면 수백억대다. 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도 전남대는 납입금 대비 교육투자비가 전국 8위다. 약 2.8배를 교육에 투자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발전기금 모금운동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오는 2012년 개교 60주년을 앞두고 ‘용봉인재육성 발전기금’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1인당 6천원 이상을 매달 계좌이체하는 방식으로 60주년의 상징성을 부여했다. 2012년까지 60억원이 목표인데 4개월 만에 6억원이 모였다. 우수학생을 위한 장학금과 기숙사 지원 등 글로벌인재를 키우는 데 쓸 것이다. 의과대학 교수와 동문들이 1인당 100만원씩 릴레이 기부도 벌이고 있다. 의과대학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83명이 참여해 모금액이 총 8천200만원에 달한다. 이 발전기금은 ‘총장명예학생’이라는 인재육성 프로그램에서 전액 장학금으로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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