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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32. ] 마흔 즈음에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32. ] 마흔 즈음에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10.05.1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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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게 된 이후로 누군가가 나이를 물어오면 항상 미국 나이로 대답한다.
그래서 아직은 30대라고 자랑스레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두어달 후면 돌아올 생일에는 미국 나이로도 덮을 수 없는 40대가 된다. 서른을 넘으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았지만, 서른이 넘어서야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경험했기에 뭐, 새삼스럽게 감상에 젖고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 가는 30대를 간혹 반추해보고는 한다.


서른 하나에 유학을 나와서 9년이라는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그 기간은 공부하고 가르치고 하느라 좌우를 돌아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다.


그리고, 작년에 그 세월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던 일 중의 하나가 있었다. 한국에서 함께 일했던 신문사 입사 동기가 일 년간 연수 차 미국에 왔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몇 시간을 달려서 그 친구네를 방문했더니 연수가 끝나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갈 작정으로 한국 차를 한 대 샀다고 했다. 그런데 차를 보니 제법 중대형급의 차였다. 차가 너무 크지 않냐고 물었고 한국에서 우리 정도의 나이면 이 정도는 다들 탄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지금 나 역시도 한국차를 타고 있지만 그건 미국 오기 몇 년 전인 20대에 사서 몰던 것이랑 똑같은 소형차다. 한국에서 타던 차의 후속 모델이니 이름만 바뀌었을 뿐 결국, 15여년간을 같은 급의 차를 계속 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한 날 한 시, 같은 직장에 발을 디뎠던 동기가 ‘나이에 걸맞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견의 위치로 자연스럽게 발전할 동안 나는 공부한답시고 혹시나 제자리 걸음을 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제자리 걸음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한국에 계신 어머님이 사시는 본가가 내가 어릴 적부터 살던 동네이니 어머니는 요새도 오가면서 친구들을 자주 본다고 하셨다. 7년 공부하는 동안, 전화 통화도 했고 사진도 보내드렸지만 아들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셨던 어머니는 점점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 완연해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들도 저런 모습이겠지, 가늠해 보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졸업식 참석차 미국에 오셔서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젊어보인다면서 즐거워하셨다. 아마도, 학교에서 학생으로 세월을 보내다 보니 그나마, 나름대로 ‘젊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30대의 10년 세월을 남들만큼 ‘나이에 걸맞는’ 큰 발전은 못 이루었지만, 반대로 가는 세월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었으니 그리 손해 본 장사는 아닌 듯 하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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