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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이해조, 전통의 중력과 근대의 압력에 낀 소설가의 운명
[역사 속의 인물] 이해조, 전통의 중력과 근대의 압력에 낀 소설가의 운명
  • 정선태 국민대·국문학
  • 승인 2010.05.10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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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을유문화사에서 ‘신문학 60년’을 기념해 간행한 열 권짜리 ‘한국신소설전집’은 한때 신소설 연구자들의 필독서였다. 전광용, 송민호, 백순재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이 전집은 텍스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신소설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이 전집은 ‘신소설 작가 3인방’이라 이를 만한 이인직, 이해조, 최찬식을 비롯해 안국선, 김교제, 조일제 등의 주요 작품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작자 미상인 작품이 유난히 많은 가운데 열 권 중 두 권 이상이 이해조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이해조의 작품이 양적인 측면에서 다른 작가들을 압도하는 모양새다.

널리 알려져 있듯 동농(東濃) 이해조(1869~1927)는 대표적인 신소설 작가다. 그럼에도 문학사에서는 이인직(1862~1916)에 가려 ‘넘버 투’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지금도 한국의 근대소설사 맨 앞을 장식하는 것은 이인직의 『혈의루』이다. ‘일청전쟁 총소리’가 몰고 온 역사적 충격만큼이나 『혈의루』가 근대소설사에 끼친 영향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넘버 투’를 ‘넘버 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 마는, 그래도 이인직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그보다 오랫동안 훨씬 많은 소설을 쓴 이해조에 대한 평가가 정당한지 여부는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인직이 한국 신문학의 대표주자로 꼽은 사람은 한국 근대문학이 낳은 걸출한 비평가 임화다. 임화는 『개설 신문학사』(1939)에서 이인직을 “단지 가장 우수한 신소설 작가일 뿐만 아니라 실로 신소설이란 양식을 창조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인직은 순수한 현대작가요, 이해조는 전통적 작가요, 최찬식은 대중작가”라는 임화의 평가는 그 후 신소설 연구자들에게도 별다른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이는 이인직에서 이광수를 거쳐 카프 문학에 이르는 한국 근대소설의 계보를 그리고자 했던 임화의 ‘근대주의적’ 발상에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했다는 것을 뜻한다. 상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임화의 근대주의적 발상법에 소설의 역사를 발전론의 관점에서 포착하려는 그의 (무)의식적 욕망이 투사돼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기도 포천에서 왕족의 후예로 태어나 거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설 창작에 매진한 이해조는 비교적 한미(寒微)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치 세계의 한복판으로 나아간 이인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개인적 이력이 소설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삶과 창작이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도 없다. 풍부한 한학적 교양의 소유자였던 이해조는 이인직에 비해 몸이 무거웠다. 전통의 중력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이해조는 당대의 삶과 습속에 깊은 관심을 갖고, 뛰어난 서울말을 구사해 소설을 써나갔다. 그런 만큼 그의 소설에는 계몽성=이념성과 통속성이라는 개념으로 간단하게 재단할 수 없는 풍부한 일상적 삶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다. 이해조의 소설이 ‘지금―여기’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해조는 양기탁, 주시경, 이준 등과 함께 광무사를 조직해 철도권 회수를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대표적인 학술지 중 하나인 <기호학회월보> 편집에 관여하기도 했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 그의 왕성한 활동은 그러나 1910년 8월 조선이 식민지로 편입되면서 현저하게 위축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너무나 통속적인 소설들을 연재하면서 울분을 달래는 것밖에 없었다. 『자유종』에서 여성해방과 국권회복을 통한 국민국가의 건설을 꿈꾸고, 『월하가인』에서 멕시코에 이민 간 조선인의 참상을 그리기도 했던 이해조는 제국주의 권력의 전방위적 감시 아래서 통속성으로 도피한다.

그의 ‘변절’이랄까 ‘전향’을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전통의 중력과 근대의 압력 사이에서 힘겨운 길을 걸어간 ‘왕족의 후예’ 이해조의 운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전통과 근대, 문명과 야만, 선과 악, 이념성과 통속성이라는 이분법적 명령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운명이 어쩌면 신소설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며, 그 운명의 행로에서 과정적 진정성을 읽어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인지도 모른다. 문학사의 발전론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당대의 삶을 담고 있는 언어의 저장고로 신소설을 다시 발견하고자 할 때 이해조의 소설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선태 국민대·국문학

관심 분야는 근대계몽기 문학과 사상, 번역론, 동아시아 식민지 비교문학 등이다.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개화기 신문 논설의 서사 수용 양상』,『한국 근대문학의 수렴과 발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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