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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금융화는 파국 초래 … 좌파든 우파든 ‘생산’ 주목할 때
과잉금융화는 파국 초래 … 좌파든 우파든 ‘생산’ 주목할 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12.15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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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_ 신자유주의 이후의 경제, 어떻게 전개될까

2007년 금융자본주의는 결국 자기모순으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된다고 예측했던 조원희 국민대 교수(경제학)가 세계자본주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한국의 진로를 제언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진보평론>42호(2009 겨울)에 발표한 논문 「신자유주의 이후의 경제」에 그의 고민과 주문이 담겨 있다.

결론부터 보자. 그의 상황 인식은 이렇게 정리된다. “지금의 세계경제위기는 그 본질에서 전대미문의 위기이며, 금융시장은 경색의 위기에 노출돼 있다. 이 금융시장에 꼬여들어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농후한 소비수요를 살리는 방법은 지금까지 경제학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다. 한국경제가 거품을 다시 일으켜 마구 질주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는 “‘복지개발 5개년 계획’같은 것을 수립해 시행할 것”을 주문한다. 이 전략이 “생산과 내수를 살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바람직한 방안”이란 주장이다. 또한 “세금 감면이 아니라 증세로 재정지출을 늘리고, 현 위기 돌파를 계기삼아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의 초석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정도 논의라면 2007년의 예측과 같은 폭발력은 찾아볼 수 없다. 금융위기 이후 진보학자들의 유사한 진단과 지적, 대안 제시가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진단과 제언이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금융자본주의를 종식시키기보다는 그것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주가하락과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으려는 은밀한 욕망들이 그 생명을 연장시키려 하고 있다”는 視線의 힘 때문이다. 조 교수는 바로 이와 같은 ‘은밀한 욕망’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론적 틀 안에서 분석해내고, 이에 기반해 논리적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 발전은 약 50년을 주기로 해 ‘일반법칙’과 ‘특수법칙’이 교체하면서 성장을 이끄는 특수한 패턴을 내포하고 있다.” ‘일반법칙’은 마르크스가 잘 정식화한 것으로 가치/잉여가치 생산을 중심으로 한 축적체제의 작동양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정 기간 동안 일반법칙의 작동은 “자본주의 국가 간 또는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국가 간 불균등성장을 필연적으로 야기하고 그 결과 일반법칙은 가치/잉여가치의 이전을 지배적인 이윤획득의 수단으로 하는 ‘특수법칙’으로” 교체된다. 문제는 이것이 “강자의 지배라는 적나라한 힘의 논리, 문명화에 대립되는 야만의 경향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조 교수는 일단의 경제학자들과 관점을 달리 한다. 폴라니에게서 영감을 받은 일부 학자들은 ‘시장’과 ‘사회’의 이중운동을 가지고 자본주의 역사를 전망하지만, 조 교수는 이들과 견해를 달리한다. “폴라니 추종자들이 종종 주장하듯 시장을 사회적 맥락에서 강제로 뽑아냄으로써 마침내 스스로 침몰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금융적 원리를 더욱 사회적 그물망으로 깊이 착근시킴으로써 축적을 지속했고, 또 그 확장의 프론티어에 도달하자 붕괴했다”는 진단이다.

폴라니·케인즈주의와의 시각 차이
조 교수는 국가 역할 규정에서도 케인즈주의와도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는 국가가 1980년대 이후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왔다고 보면서 “국가가 경제로부터 철수했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이며 다만 그 개입의 내용이 변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그의 立論은 이렇다. “80년대 이후를 평가함에 있어 오로지 시장의 탈착근이나 국가의 후퇴를 부각시키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신자유주의의 자기독백에 포획당할 위험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밀물과 썰물, 진보와 퇴행이다. 우리가 지난 30년간의 자본주의 성장의 역사를 특수법칙의 작동으로 볼 때 좀 더 정확한 현실 이해와 미래 전망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1980년대 이후의 세계화시대를 어떻게 규정할까. 그는 이 시기는 ‘자본주의 2차 확장국면’이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브레너(Brenner) 같은 일부 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특히 미국자본주의와 선진국 경제가 침체기였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맥낼리(MacNally)의 말을 따라서 이 시기가 자본이윤율의 회복에 기초한 실제적인 확장국면이었다고 진단한다. 이 회복세를 지탱해 준 것이 바로 이들 국가에서 추진된 신자유의 정책, 이에 편승한 자본의 세계화 전략이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의 3단계 발전을 추동했는데 이 경로를 도식화하면, ‘수정자본주의 부정→주주 자본주의→과잉금융화 경제 또는 카지노자본주의’로 정리할 수 있다.

조 교수가 신자유주의 마지막 단계를 ‘금융자본의 자립화와 과잉 금융화’로 이해하는 것은 이와 같은 논의틀 위에서 가능하다. 그가 구 수정자본주의체제를 부정하고 해체하는 전략이라고 보았던 신자유주의 1단계는 곧 이어 신자유주의 2단계(주주자본주의)로 확장되는데, 이 2단계의 완성은 완성과 동시에 모든 기업, 모든 가계의 불안정화, 불확실성의 극대화를 의미하는 ‘금융자본의 자립화와 과잉 금융화’로 치닫는다. “사회적, 또는 복지국가를 통한 안정장치가 제거된 가운데 기업과 가계는 어떤 안정장치, 자구책을 구하게 될까.” 조 교수는 역설적이지만 보험, 파생상품 등 시장을 통한 자구책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이것을 ‘과잉 금융화(hyper-financialisation)’라고 규정한다.

일상의 삶에서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은 ‘시장 내 사회주의’로서 보험과 파생상품을 욕망하게 된다. 그의 말대로 “서서히 금융은 자립화한다. 기업과 가계의 실물적인 위험, 실물상품의 가격의 위험 위에서 대규모로 출현하고 번창하게 된 금융은 이제 상상 가능한 모든 위험을 상품화하는 데로 나아가고 산업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먹고 사는 기반을 마련한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이다. 불안과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의 가련한 상황을 이용해 권력자로 군림하게 된 금융은 권좌를 찬탈하는 그 순간 “권좌를 받치는 다리를 스스로 잘라버림으로써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게” 되는 파국을 노출했다.

조 교수는 신자유주의 파국의 징후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로 미국 저소득층이 맞게 된 금융위기와 신흥국 가운데 가장 가난한 중국이 최대 채권국이 된 사실을 적시했다. 그가 보기에 미국과 중국의 상황변화란 금융자본주의의 금융팽창, 버블과 동전의 양면인데, 이와 같은 세계적 실물불균형이 세계경제를 대불황의 위험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여기서 그의 입론, “모든 자본주의 ‘특수법칙’이 작동하는 모든 경우가 지속불가능하다는 일반론”이 힘을 얻게 된다.

중소기업에 국가복지시스템 혜택 가야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까. 그는 금융시장적 해결책과 사회연대·보편적 복지 해결책을 비교한 뒤, 이렇게 결론을 던진다. “21세기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갈등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면서 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역동적 복지체제, 보편주의 복지체제가 필요하다. 이 체제에서 금융은 생산의 충실한 하인이 된다. 좌파이건 우파이건 이것이 최소 공통분모가 돼야 한다.” 그러나 미래는 비관적이다. “‘외부 경제의 투기적 수요에 기대서 성장하지 않고 경제내부에서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는 체제, 다시 말해 보다 고도한 ‘보편법칙’이 지배하는 체제를 염원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정치세력화로 나타나야” 하지만, 지금 어디에도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의 역사는 향후 10~20년에 걸쳐 특수법칙의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불안정과 갈등으로 요동치게 된다.

이런 비관론 속에서 한국경제의 진로를 소망한다면, 그것은 ‘금융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멈추어야 한다’로 압축될 것이다. 한국경제의 기조를 지난 10여 년 동안의 ‘금융중심’에서 ‘생산중심’으로 바꿔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본시장이 과잉팽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은행에서도 주주자본주의 논리가 억제되도록 경영환경을 바꿔야 한다. 그가 말하는 ‘생산’이란 중소기업이 활력을 찾고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특단의 대책으로서 그가 국가복지 시스템과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사고를 전개하는 데는 이런 분석이 작용한다. 국가복지 시스템의 혜택이 먼저 중소기업 부문 종사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 때 한국경제의 성장과 고용창출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가 ‘복지개발 5개년 계획’을 주문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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