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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통한 콘텐츠 확충 사업은 인문학 차원의 ‘건국운동’이다”
“번역 통한 콘텐츠 확충 사업은 인문학 차원의 ‘건국운동’이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11.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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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학회 창립기념 학술대회 ‘고전번역학 정립을 위한 이론적 모색’

고전번역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한국고전번역학회(회장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과 함께 지난 27일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학회 창립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기치는 ‘고전번역학 정립을 위한 이론적 모색’이었다.

고전적의 번역은 체계화하고, 번역 인력을 양성하는 데 학회의 역할이 기대된다. 사진은 서울대 장서각 서가 풍경.


이날 송재소 회장은 기조강연 「한국고전번역의 과제」를 통해 고전번역학회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이런 과제는 3가지 주제와 함께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제1주제는 「한국고전번역의 역사적 고찰」(이동철 용인대), 제2주제는 「번역과 역사변혁」(박상익 우석대), 제3 주제 「일기류 자료의 국역 현황과 과제」(황위주 경북대)였다. 각 주제별로 정채철(단국대), 하원수(성균관대), 김현영(국사편찬위원회)등이 토론을 맡았다.
이날 학술대회의 문제의식을 공유한 송재소 회장의 글과 박상익 우석대 교수의 글을 발췌한다.

송재소 한국고전번역학회장(성균관대 명예교수)
무릇 번역의 대전제는 충실한 번역과 정확한 번역이다. 이 문제의 중심에 놓인 것이 직역과 의역의 문제이다. 한국고전의 번역에서 직역과 의역의 문제는 더욱 첨예하게 다가온다. 직역은 원문의 언어구조, 당시의 문화와 관습 등에 최대한 근접하게 번역하는 것인데 자연히 많은 주석이 요구되는 번역이다. 이러한 직역의 대표적인 예가 經書諺解이다.

보다 바람직한 번역은 문자 추종적인 충실성이 아니라 의미의 충실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즉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살리는 동시에 원문으로부터의 간섭을 덜 받으며 비교적 자유롭게 번역하는 것이다. 이러한 번역을 의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어느 선까지 의역해야 하는가. 이 문제가 먼저 대두된다. 한자, 한문은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 왔기 때문에 타외국어와는 다른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 친연성이 오히려 번역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經濟’ 등의 낱말을 옮길 때가 그러하다. 또 오랜 시간 쓰여 오던 용어를 살려야 할지 풀어야 할지도 과제로 남는다.

문학작품의 번역은 더욱 어렵다. 모든 번역이 그렇겠지만 특히 문학작품의 번역은 재생적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원문이 지니고 있는 文體, 修辭法, 語調 등을 염두에 두고 번역해야 되지 내용전달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이렇게 볼 때 漢文讀解能力만으로는 좋은 번역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한문독해능력이 중요하지만 여기에 한국어 구사능력, 문화적 교양, 예술적 심미안 등을 두루 갖출 필요가 있다.

번역학이란, 보다 나은 번역을 하기 위한 방법이나 원리를 모색하는 학문이다. 번역의 일반이론에 관해서는, 서구에서 이루어 놓은 번역이론들을 광범위하게 섭취하는 한편으로 ‘한문고전의 번역’이라는 특수성에 입각해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이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제적 성격을 가진 번역학의 특성을 고려하여 언어학, 문화학, 미학 등 인접학문과의 상호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번역이론의 개발과 함께 중요한 것은 다양한 번역기법의 개발이다.

“기존 번역서 평가하는 시스템 필요”
더 나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 번역서들에 대한 평가 작업도 수행해야 한다. 기존 번역서 평가는 앞으로의 번역의 질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여러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양질의 번역서를 제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엄밀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기 위해 평가의 방법과 과정 그리고 결과의 활용 등 평가의 제반 시스템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한국고전번역학의 과제로 남는다.

이 밖에도 국가적 차원의 번역 지원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큰 틀의 방향을 제시하고, 고전번역의 활성화를 위해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의 사업도 한국고전번역학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한문고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지만 이 작업은 한문고전을 서구어로 번역하는 일과도 맞물려 있다. 이 경우 번역 담당자는 서구어 전공자들일 터인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들이 한문고전을 직접 번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에게 믿을만한 결정적인 번역 텍스트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박상익 우석대 교수(서양사)
시인 김수영은 신세대 문학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한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까닭에 세계문학의 흐름으로부터 차단돼 있는 그들에게 가장 결핍돼 있는 것은 ‘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들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글 콘텐츠를 일본어 못지않게 늘리는 일이야말로 國運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수영의 시대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을까.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 정부 내에 ‘번역국’을 따로 두고 집약적으로 수만 종의 서양 고전들을 번역했지만, 그들이 19세기말에 번역한 고전들 가운데 아직도 많은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 많은 대학에서 번역을 연구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는 일부 인문학자들은 번역의 필요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마저 없는 실정이다.

2008년 7월 28일부터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거행된 제18차 세계언어학자대회는 소수민족 언어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과 보존 계획 수립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고, 인간은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21세기에 독창적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번역을 통한 한글 콘텐츠의 확충은 결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다음은 우리 고전의 번역이다. 우리는 올해로 제64주년 광복절을 맞이했다. 우리 인문학은 어떨까. ‘광복’을 기해 우리 인문학도 ‘빛’을 되찾았을까.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 이전에 ‘우리 인문학’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개화기 역사를 다룬 黃玹,(1855∼1910)의 『梅泉野錄』은 원전이 한문이라서 요즘은 대학 졸업자도 읽을 수 없다. 영어권 독자들은 500년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지금도 읽을 수 있지만, 우리는 100년 전 ‘우리 것’도 읽을 수 없다. 단군 이래 100년 전까지 우리 선조가 작성한 거의 모든 문헌이 ‘번역’이란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에겐 ‘딴 나라’ 책이다. 우리는 언어적으로 우리 자신의 과거로부터 상당 부분 단절돼 있다. 이런 형편이니 1세기 전의 ‘우리 인문학’을 거론조차 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1945년까지 일본어를 국어로 常用하다가 한글을 본격적으로 쓴 지가 이제 겨우 60년이다. 그러므로 ‘모국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이란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갓 태어난 아프리카 신생국과 다를 바 없다. 자존심 상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 현실이다. ‘빛을 다시 찾은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에서는 광복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인문학은 60년 전 ‘탄생’했다.

“40~50대 활용해 번역 사업 매진해야”
얼마전부터 인문학 위기란 말이 유행처럼 나돌고 있다. 하지만 지난 60년 동안 과연 우리 인문학이 잘 나갔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모국어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의 역사가 이제 겨우 60년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한다면 반만년 역사 운운하며 느긋한 허위의식에 안주할 수 없다. 신생국 처지임을 자각하고 새로 시작하는 결연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먼저 끊어진 역사를 연결시켜야 한다. 아직 20%도 해내지 못한, 우리 선조들이 남긴 국가기록물과 개인문집에 대한 번역작업을 빠른 시일 내에 완료해야 한다. 이 작업이 완결돼야 비로소 반만년 우리 역사가 온전히 ‘우리 것’ 즉 한글 콘텐츠로 편입될 수 있다.

인문학 위기론이 팽배한 현시점에서 그나마 인문학 연구 인력이 가장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세대는 40대와 50대로 보인다. 그 아래는 학문후속세대의 단절이 우려될 정도로 ‘실용’에만 몰두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이들 연구 인력이 더 늙기 전에 한글 콘텐츠 확충을 위한 번역 사업에 대대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칫 시기를 놓친다면 뒤늦게 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마땅한 인력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번역을 통한 한글 콘텐츠 확충 사업은 인문학 차원의 ‘건국 운동’이다. 모국어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권독립 국가의 국민일 수 없다.

정리 최익현 기자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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