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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가 불러온 ‘삶의 파괴’ 증언
민영화가 불러온 ‘삶의 파괴’ 증언
  •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HK교수
  • 승인 2009.11.23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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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형의 『대홍수』(그린비, 2009), 무얼 다뤘나

여덟 번째 책을 내지만 기획을 해서 내는 적은 거의 없다. 어떤 때는 여행 다니다가 쓴 글들이 모이기도 하고, 신문사의 주문 생산에 응해서 책이 나온 경우도 있다. 걷다가 보면 뒤에 보이는 것들이 길이 되고, 책이 된 것이다. 이 책도 그때그때 밀려 쓴 글들의 집합이다. 편집자의 까다로운 주문 때문에 최근 변화를 집어넣다 보니 원래 분량보다 오십 페이지 정도 늘어났다. 어쨌든 두꺼운 만큼 읽지 않을 테니, 그 두께 뒤에 숨기로 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론적 논의나 찬반양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라틴아메리카가 신자유주의의 최대 실험실이었고, 그 실험 과정의 생생한 보고서를 쓰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이 실험실의 전가보도와 같은 매뉴얼이었다. 각 나라는 이 매뉴얼에 따라서 개혁과 개방의 속도, 범위, 내용을 조절했다.

이 매뉴얼을 축자적으로 해석하고 과격하게 적용한 나라들이 멕시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는 외환위기를 한번 더 당했고, 볼리비아는 장기간 격렬한 사회정치적 위기를 수반했다. 브라질도 비슷한 강도의 개방과 개혁을 단행했지만 다른 나라보다 늦게 추진했고, 또 임기응변을 발휘하면서 피해간 부분도 많았다. 이 책에서 본격적인 비교연구를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을 어떻게 추진했느냐(how?)란 질문이 중요하다는 점을 내내 인식했다.

어떤 기자가 질문을 했다. 책을 읽어보니, 10년 전에 쓴 『신자유주의의 빛과 그림자』보다 훨씬 순화된 입장으로 바뀐 것 같은데, 어떠냐고 질문을 했다. 10년이란 세월 속에 모든 것이 바뀌는데,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시각, 글의 톤이나 분석내용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다만 신자유주의 현상을 바라볼 때 이분법적 잣대를 피하고자 신경을 쓴 것은 틀림없다.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는 분명히 발전모델로 실패작에 가깝다. 하지만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이야기이다. 1990년대 안정화 정책을 통해 일단 인플레이션을 잡았고, 균형재정 기조를 안착시켜 이후의 경제운영에 도움이 된 요소가 있다.  이런 기조가 유지됐기에 2000년대 아시아(중국)발 1차산품 붐에서 모두 덕을 보았고, 또 현단계 경제위기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빠른 속도로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발전모델로서 실패작이라 평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일단 상품 사슬(commodity chain)에서 저부가가치 상품에 특화하는 구조로 안착됐다. 19세기형 1차산품 특화형(reprimarization)이 강화된 것이다. 둘째, 대부분 전략산업과 공공서비스 산업이 다국적기업에 넘어갔다. 자본의 국적이 무슨 문제냐고 질문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국적은 묻지 말자. 다만 외국계 기업이 투자하는 돈이 금융부문에서 나온다는 점을 명시하자. 문제는 단기적 비전에 움직이는 돈이 전략산업이나 공공서비스 산업에 투자가 되면 장기적 플랜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단기로 움직이는 자본이 왜 장기적인 사업구상에 돈을 대겠는가. 이들이 발전소를 증설하고, 가스전 탐사에 돈을 투자하겠다는 CEO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들은 예상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으면 절대로 추가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전, 블랙아웃, 가스공급 제한, 물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벌어졌다. 아르헨티나의 가스대란, 칠레와 브라질의 전력대란, 볼리비아의 물전쟁 등은 모두 심각한 정치적, 외교적 파란까지 몰고 왔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기업들의 전략적 행동을 간과한다. 기업들은 공급량을 제한함으로써 가격상승으로 이윤을 더 낼 수 있다. 정부가 규제를 한다고 해도, 규제기구 자체가 ‘포획’(captured)돼 있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 손을 대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부, 기업, 소비자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 상황이 연출된다. 진정 홉스적 상황이 도래한다. 그래서 망산업, 전력산업, 가스산업, 물산업의 민영화는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수직적으로 통합된 망을 분할해 쪼갠다고 해서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예화는 구미나 라틴아메리카에서 수없이 찾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은 곧 국민들의 거부투표로 연결돼 중도좌파 붐을 일으켰다. 중도좌파라고 하지만 그렇게 좌파적이진 않다. 라틴아메리카 정치지형 속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섹터일 뿐이다. 이들도 경제정책에 큰 변화를 가하지 않는다. 큰 나라는 금융시장의 눈치를 봐야 하므로 움직일 여지가 거의 없다.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이 시장근본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이미 신자유주의 혁명을 거친 나라에서 번복의 경우 치러야할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룰라 인기가 80%나 되는 것은 여기에 비밀이 있다.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음으로써 기득권층(금융, 미디어 등)의 지지를 끌어냈고, 중국 특수에 번 돈으로 가족기금을 풀어 빈민층의 지지를 얻어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중하층 이하는 룰라가 무얼 하든 지지할 수밖에 없는 포획된 지지층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현상은 카라카소(카라카스 폭동)에서 출발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안드레스 페레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5천명의 인구가 살상된 폭동으로 연결됐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기득권층이 자행한 완벽한 배신의 순간을 잊지 않는다. 차베스에 대한 선풍적인 인기는 기득권층의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차베스 프로젝트에도 많은 문제점이 내재돼 있다. 일단 석유산업 의존형이란 지대국가 체질이 있다. ‘21세기 사회주의’란 거창한 담론보다 지대국가를 발전국가로 바꾸는 재주가 더 필요한 시점인데, 그런 것은 전혀 토론하지 않는다. 권력 집중과 개인의 의사결정도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관찰할 때 말, 언어, 슬로건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처럼 퉁퉁 불어있다. 그러니 거품을 빼고 현실, 곧 해골을 직시해야만 한다. 슬로건으로 새 사회가 온다면, 반란과 혁명으로 신 새벽으로 도래한다면, 그렇게 피를 많이 흘렸던 20세기에 이미 도래했을 것이다.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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