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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교류사 연구의 최고 고전 ‘완역’했다
동아시아 교류사 연구의 최고 고전 ‘완역’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11.09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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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최치원 지음, 『계원필경집 1』·『고운집』(이상현 옮김, 한국고전번역원, 2009)

동아시아 교류사 연구의 최고 고전으로 불리는 최치원의 『桂苑筆耕集』(전체 20권)이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됐다. 번역자는 한국고전번역원의 이상현 수석연구위원이다. 원본은 20권의 분량이지만, 이번 완역 형태는 두 권 분량으로 정리됐으며, 『계원필경집1』이 먼저 선보이고 2권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함께 선보인 『고운집』은 최치원이 당에서 귀국한 뒤에 저술한 것을 후손들이 모아 간행한 책으로, ‘사산비명’ 등이 수록돼 그동안 고대사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계원필경집』은 고운 최치운이 중국 당나라에서 고변의 휘하 막료로 활동할 때 지은 시문 중에서 시 50수, 문 320편을 직접 골라 20권으로 엮어 헌강왕에게 바친 시문집이다. 그러나 이 제목에 관해서는 해석이 다르다. 번역본에 해제를 실은 장일규 국민대 교수(국사학과)는 “제목 중 ‘桂苑’은 문장가들이 모인 곳을 말하며, ‘筆耕’은 군막에 거주하며 문필로 먹고 살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보았지만, 번역을 수행한 이상현 수석연구위원은 “문장가들이 모인 곳이라는 보통명사로 보기보다는, 당시 최치원이 실제 거주했던 회남지역 강소성 양주에 있는 ‘계원’이란 지명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체 구성은, 1권~14권까지는 879년 10월 이후 885년 3월 이전까지, 회남절도사 고변의 휘하에서 황소, 천능을 비롯한 각 지역의 반란세력과의 대치 상황에서 발생한 여러 정치·군사적 사안을 다룬 것이고, 15권부터 20권까지는 도교, 불교와 관련한 글이다. 그 중에서도 17권 이후부터는 주로 자신과 관련한 글을 수록한 것이 특징이다.

『계원필경집』에는 당시 고변 휘하에서 목격한 중국 내 변란의 상황과 대응 과정, 신라인들의 정치적 위상과 대중국관, 남만 등과의 교빙 관계 등 중국사 및 동아시아 국제 교류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내용들이 수록돼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당인핑남경사범대 교수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련자료를 참고해 2007년에 『桂苑筆耕集校注(上·下)』(中華書局)를 발간한 바 있다. 일본에서도 하마다 고사쿠 큐수대 교수가 교육연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03년에 계원필경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조명받고 있다.

그동안 최치원과 관련해서는 『국역고운선생문집(상,하)』(최준옥, 1972~1973), 『한글번역 고운최치원선생문집』(경주최씨대동보편찬위원회, 1982)등이 있으나, 『국역 동문선』이나 『韓中詩史』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거나 인용 전고에 대한 주석 작업도 상세하지 않은 등 본격적인 역주서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번에 간행된 『계원필경집』 번역본은 한국고전번역원의 전문성과 역량을 바탕으로 내부 전문연구위원에 의한 충실한 번역과 상세한 전고 주석이 특징으로, 향후 최치원 연구를 한 단계 심화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관련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번역 작업의 수고를 짊어진 이상현 수석연구위원은 그간 『목은집』, 『택당집』,『도은집』 등의 문집 번역서를 내놓은 바 있다. 3년 동안 이번 번역에 매달려 온 이 연구위원은 “최치원은 當代의 학술적 성과를 한 몸에 소화한 인물이며, 동양사상의 정수랄 수 있는 유불선 사상을 회통한 장본인이라 번역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고 말했다. “고운의 학문성, 그리고 그의 독특한 사유 방식과 문체 때문에 한 구절을 번역하는 데도 며칠씩 걸리기도 했다. 사륙변려문안에 2백자 원고지 20~30매 분량의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고 번역의 고충을 밝혔다.

내년 6월 정년을 맞는 이상현 수석연구위원은 정년 이전에 『계원필경집 2』를 마칠 계획이다. 이번 번역서가 학술적으로 두루 활용되길 기대하는 그는 “민족문화로부터 급격한 단절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색맹이 됐다. 한글번역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은 시급한 문제다. 학계에서도 고전번역원의 성과를 ‘인용’할 경우,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줬으면 좋겠다. 번역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흔쾌하게 지적, 충고해주면서 상호 교류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장일규 교수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동아시아 교류사의 시각에서 『계원필경집』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계원필경집』에 대한 상세한 번역이 매우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번역본은 국내에서 최치원 연구는 물론 동아시아 문예 교류 과정을 확인하고 활성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이전의 번역본과 달리 한 사람의 번역자가 전체를 완역하면서 전고에 대한 각주를 붙여 상세히 설명한 점도 높게 샀다. 번역자의 소망대로 학계가 이 책을 토대로 연구를 더 심화하길 기대한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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