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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편의주의와 빈곤한 상상력 … 유연한 경계 아쉽다
경직된 편의주의와 빈곤한 상상력 … 유연한 경계 아쉽다
  • 교수신문
  • 승인 2009.11.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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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과 미술, 또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역할 읽기

1985년에 우리말로 번역된 『주거형태와 문화』에서 건축가 아모스 라포포트는 건축의 이론과 역사가 전통적으로 기념비적인 것에 치우쳐 왔다고 비판한다. 즉 건축사와 건축담론이 지배층의 기념비, 천재적 건축가나 전문 디자이너의 작품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어느 주어진 시기의 건축 활동 중에서 그러한 작품들은 극히 조그마한, 때로는 무의미한 부분을 대변해왔다. 예컨대 오늘날에도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은 세계적으로 5%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물리적인 환경, 또는 인공환경은 설계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것은 토속(vernacular) 또는 민속(folk) 건축의 결과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전경. 1972년에 건립된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함에 따라 개축돼 1993년 국립민속박물관 건물로 정착했다. 이 건물의 역사는 그 자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의 관계를 나타내는 지표다.

그래서 그는 건축사가나 건축이론가들이 토속이나 민속 건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고급, 기념비 건축 또한 토속 건축의 맥락 속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문화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라포포트의 견해는 미술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미술사에서도 다수의 문화, 실제로 다수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문화는 폄훼되거나 배제됐다. 예컨대 우리 미술사에서 ‘민화’로 지칭된 장르는 오랜 기간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거나 한 구석으로 내몰려 있었다. 또는 분청사기의 경우처럼 그것을 생활의 문맥으로부터 떼어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향유하려는 시도도 있다. 이를 지탱하는 것이 (순수)미술/(민속)문화, 또는 미술사(고고학)/민속학의 이분법이다. 현장에서 이러한 이분법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 위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길은 없을까. 

이분법, 긍정의 힘과 한계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 근대민속학의 선구자 송석하 선생과 일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소장품을 합해 1945년 개관한 국립민족박물관을 모태로 한다. 1950년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국립민족박물관은 국립박물관에 흡수됐고 1966년에 장주근 선생 등의 노력으로 한국민속관이 개관했다. 1975년 이를 계승해 한국민속박물관이 개관했고 한국민속박물관은 1979년에 국립민속박물관으로 개편됐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개관이래 구입, 기증, 기탁 등의 여러 방법으로 수집된 유물은 2009년 9월 현재 9만1천457점에 달한다. 이 유물은 대부분 일상의 의식주, 생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속유물들이다. 그 상당수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수집되지 않았더라면 버려져 사라졌을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러한 자료들의 수집, 전시는 주로 고고학적 유물과 미술사에 등재될 작품들의 수집, 전시에 치중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확연히 구분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고유 업무다. 이러한 유물들의 수집은 미술/민속의 이분법이 긍정적으로 기능한 대목이다. 

이렇게 수집된 유물들은 선별돼 현재 3개의 전시관에서 상설전시중이다. 제1전시관인 한민족생활사관에서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생활모습과 문화유산을 전시하며, 제2전시관인 한국인의 일상관에서는 일 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농경생활과 사계절의 삶의 모습을 전시하고 제3전시관인 한국인의 일생관에서는 양반가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상적으로 여긴 일생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기획전시실과 야외 전시실, 기증실도 있다. 전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박물관/미술관처럼 유물만을 조명하기보다는 유물과 연관된 사회-문화적 맥락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준하여 전시에는 현물이나 복제품, 파노라마 , 디오라마, 영상 등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인류학 박물관, 또는 민속생활사 박물관의 면모가 부각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문맥만을 강조하는 접근은 유물 또는 텍스트 자체를 차분히 관조할 기회를 사전에 배제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이는 국립민속박물관을 대표할만한 독특하고 빼어난 작품이 극히 미비하다는 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여기에는 新·舊法天文圖, 趙氏三兄弟肖像, 庚辰年大統曆, 山淸全州崔氏古靈宅喪輿 등 소수의 몇몇 유물을 제외하면 기념비적, 미적인 의의를 갖는 유물은 극히 적다. 그래서 특히 우리민족의 생활사를 역사적으로 살피는 제1전시관은 인형과 모형, 파노라마, 영상으로 채워져 겉보기에는 현란하지만 전시된 유물 자체로 볼 때는 지극히 빈곤하다.

반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화려한 유물을 자랑하지만 그것을 생활의 문맥으로부터 고립시켜 그 의미와 의의를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문제다. 물론 우리는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 기념비와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옛 선인들의 생활을 접하기 위해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하지만 역사와 美, 생활은 불가분하게 얽혀있기에 그렇게 간단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정상, 또는 학제상의 편의를 위한 분류가 관객들로 하여금 분리될 수 없는 것을 분리시켜 볼 것을 강제하고 있는 셈이다. 고려인의 생활사를 선보이는 전시관에서 최고 수준의 고려청자를 제시해 역사-사회적 문맥 속에서 美를 체험케 하는 상상력, 실천력의 빈곤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서 이종철 前국립민속박물관장이 지적한대로 1950년 정부의 행정 간소화 방침에 따라 국립민족박물관이 국립박물관 남산분관으로 흡수통합될 당시 국립박물관에 인계됐던 4천555점의 이른바 ‘남산품’, 곧 국립민족박물관 컬렉션이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되돌아오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그 가운데 당대의 비평가이자 미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컬렉션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또 두 박물관 유물의 교차전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의 말처럼 두 박물관을 인접시켜 뮤지엄 콤플렉스를 조성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의 상호연계가 모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더 나아가 이 양자의 근간을 이루는 미술사와 민속학의 상호연계는 우리 전통 문화의 미의식을 균형잡힌 시선으로 다각적으로 고찰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선과 색의 어울림’ 이라는 주제로 이리자 한복 기증특별전(10.21~11.30)을 개최 중이다.

1970~1990년대 한복의 유행을 주도했던 이리자 선생의 작품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한복의 형태와 옷감, 장식기법 등의 변화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전시의 취지다.

전통문화의 미의식 해명 미흡
여기서 전시 제목인 ‘선과 색의 어울림’은 분명 미적 함의를 갖는다. 그러한 함의는 미술사, 문화사에서 조명된 우리 전통문화의 미의식과 연관지어 해명되고 향유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오래 전에 아르놀트 하우저가 지적한대로 두 가지 편향된 시각이 전통과 생활의 문맥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맴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는 그것을 극단적으로 신비화, 이상화하는 낭만주의적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전락한 문화재, 곧 고급예술을 서투르게 모방한 낙후된 것으로 보는 반낭만주의적 입장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관리를 위해 영역, 또는 분야의 구분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다만 그러한 구분이 우열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는 것, 경계가 배타적, 폐쇄적으로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또는 미술사와 민속학의 경계는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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