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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소액 배정 … 정부, 실험보다 ‘시범’ 선택
예산 소액 배정 … 정부, 실험보다 ‘시범’ 선택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11.02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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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한국학 세계화 랩 사업 시동 걸었지만

일러스트 : 이재열

고전번역 활성화와 해외 한국학의 내·외연 확장을 위해 학계가 고민을 담아 제출한 장기 사업이 애초 계획과 달리 대폭 축소, 변경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진행된 ‘고전번역 활성화방안 연구’팀(연구책임자 신승운 성균관대 교수·문헌정보학)은 △권역별 거점연구소 협동번역 사업 △분야별고전협동연구번역사업 △한국고전강독클러스터지원사업 △4대총서사업 △고전번역연구평가사업에 역점을 두고 전체적으로는 ‘국가번역시스템’을 구축, 운용하겠다는 60억원 규모의 야심찬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작 국회 예결위로 넘어간 예산은 16억9천700만원으로, 거점연구 번역(12억), 강독지원사업(1억) 정도만 간신히 지원할 수 있는 규모로 축소됐다.

규모 축소는 ‘한국학 세계화 랩 육성사업’도 마찬가지다. 2008년 11월 교과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단장 한도현)이 제안, 개발해 온 이 사업은 애초 10년에 걸쳐 45개의 한국학 랩을 설치·지원하며, 해외학자 100명, 한국전문가 300명 배출을 목표했다. 그러나 예산은 15억으로 배정됐다. 이 정도라면 5개 랩 설치로 만족해야 하는 규모다. 

당초 계획 초안과 달리 예산이 대폭 줄어들면서 사업 계획도 밑그림부터 다시 작성해야 한다. 관련 학계가 분주할 수밖에 없다. 신승운 교수는 “계획이 축소되면, 성격도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기대를 많이 한 사업이었다. 중앙과 지방을 연결해, 전국적인 고전번역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통문화유산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학술문화의 기초가 되는 부분을 일괄적으로 재단한 감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신 교수는 “거점연구번역과 강독지원 사업만 실행할 수 있게 돼, 지금 계획을 어떻게 실행해 옮길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국회 예결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민족문화유산의 한글화 작업이야말로 글로벌시대 경쟁력 있는 콘덴츠 자산이기 때문이다.

역시 이 사업의 취지에 적극 공감, 지지해왔던 한 교수도 “번역 고전의 DB화는 한국학 연구에 긴요하다. 한국학을 세계화하는 데 토대가 되는 사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적극 검토되지 못하고 축소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7월 ‘한국학 세계화 랩 육성사업 기획연구’ 학술토론회를 마련, 사업의 청사진을 제안한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철학)는 예산 배정과 관련, “정부가 사업 필요성과 리스크 사이에서 절충안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사업 시행에 의미가 있다. 단순 공모제의 단점과 정량평가의 함정을 극복할 수 있는 (랩) 선발제도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고 평가했다. 어차피 제한된 예산이 배정될 수밖에 없다면, 한국학 랩의 시스템을 좀 더 투명하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폭 수정된 계획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7월 한국학 세계화 랩 학술토론회에 참가했던 로버트 보스웰 UCLA 교수의 지적은 음미할만하다. 그는 “UCLA의 종교 연구처럼 해외 한국학 센터들의 강점들에 기반을 둔 일련의 한국학 랩은 현재의 한국학을 다음 세대로까지 계속 발전하도록 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고 지적한 뒤, “전통시대 연구에 분명하게 투자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전통시대를 연구하는 한국학 연구자는 서양에서 더 이상 생산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그의 지적처럼 예산 규모가 대폭 줄어들면서 한국학 랩은 ‘실험적’ 성격 대신 ‘시범적’ 성격으로 변질될 수 있다. 때문에 “4대강 같은 녹색 사업을 지원하는 예산은 키우면서, 국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고 민족문화유산 콘덴츠를 강화할 수 있는 이들 한국학 사업에는 정부가 여전히 인색하다”는 학계의 푸념이 간단히 들리지 않는다.

교과부 인문사회연구과 양승택 사무관은 “4대 강 예산 등 현안이 많은 가운데, 두 사업 모두 새롭게 예산을 배정받은 사업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시범적으로 운영해본 뒤 점차 사업 규모를 확대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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