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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뜨거운 체온 지닐 수 있을까
차가운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뜨거운 체온 지닐 수 있을까
  • 북학 기자
  • 승인 2009.10.19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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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_ 행태경제이론과 『36.5°c 인간의 경제학』(이준구 지음, 랜덤하우스, 2009)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60년대 후반 우리 사회는 온통 경제발전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준구 서울대 교수(경제학)의 새 책 『인간의 경제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눈금은 흥미롭게도 바로 이 첫 문장에 있다. 이 문장은 제 1장 「‘경제적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실상과 허상」을 온통 관통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일인칭 주어 ‘나’가 글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책의 저술 배경과 동기가 생생하다. 그동안 경제학 관련 서적들이 숫자와 통계, 그래프 등 객관적 지표를 중심에 놓고 엄숙하게 전개된 것과 달리, 『인간의 경제학』은 바로 이렇게 ‘나’로부터, 나의 경험으로부터, 내가 배우는 학문의 체온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행태경제이론을 정립해온 학자들. 왼쪽부터 1978년 노벨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 교수, 2002년 노벨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네먼(두번째), 그리고 그의 이론적 동반자였던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세번째). 이들의 이론화 작업은 이제 쉴라이퍼와 래빈같은 제2세대 학자들에게 이어진다. 이준구 교수(오른쪽 끝)는 이 이론을 공부하면서 따뜻한 경제학을 추구하고 있다.


저자가 곳곳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을 간결하게 풀어내는 대중적 경제 서적이다. 그렇지만 이 교수는 자신이 ‘충실한 전도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이 이론에 정통하지 못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아직도 배워 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독자 여러분과 내가 함께 공부해 보자는 초대장의 의미”라고 말한다.

행태경제이론은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라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의 행태를 직접 관찰한 결과에 기초해 경제현상을 분석하려는 경제 이론이다. 지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린스턴대의 다니엘 카네먼(Daniel Kahneman) 교수가 이 이론의 대중적 전도사로 불릴 수 있다. 그러나 다니엘 카네먼 교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인데, 바로 이 점이 행태경제이론을 주류 경제학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게 만드는 어정쩡한 상황을 빚어냈다.

행태경제이론의 근간이랄 수 있는 그의 이론은 1973년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다. 노벨상은 비록 스미스 교수와 함께 받았지만, 이론적 지주의 동료는 같은 이스라엘 출신의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1937~1996)였다. 그는 트버스키와 함께 불확실한 조건에서의 인간의 판단 및 의사결정에 관한 선구적인 실험연구를 통해 경제심리학·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 등으로 불리는 불모의 분야를 개척했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 
1973년 그는 트버스키와 함께 불확실한 조건에서의 인간 판단과 의사결정에 관한 지배적인 경제이론인 기대효용이론의 전제, 즉 인간의 ‘합리적 판단’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이른바 ‘휴리스틱스 이론(heuristics and bias)’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인간은 불확실한 조건이나 상황 속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거나 결정해야 할 때, 확률이나 효용극대화이론을 따지기보다 자신이 살아온 생활세계의 경험에 비추어 가장 그럴듯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1979년 동료 버넌 스미스와 함께 개량경제학회지 <이코노메트리카>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은 여기서 더 나아간 ‘전망 이론(propsect theory)’에 관한 것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행동, 큰 비용 지불에는 과감하면서도 작고 소소한 문제에는 쩔쩔매고 인색하게 구는 인간 행태를 실험을 통해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인지, 이 교수의 『인간의 경제학』에 따라붙는 평은 ‘경제학책인지, 심리학책인지 모호하다’는 의문이 많은데 사실 이런 지적은 ‘행태경제이론’의 특성에 그만큼 낯설어서 제기된 것이다. 책의 제 1장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들이 경제를 움직인다고 보는 경제학에서 따뜻한 체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지적한다. 합리성에 근거해서 인간 행위를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며 어쩌면 잘못 됐을 수도 있다는, 전제의 반성은 결국 ‘무엇이 따뜻한 경제학’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인간의 체온을 지닌 경제학을 구상하는 이준구 교수의 접근은 책의 목차만 봐도 한 눈에 잡힌다. 주먹구구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손해보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는 모습, 혼자 힘으로 다이어트를 죽어도 못하는 연약함, 남의 떡은 또 왜 그렇게 커보이는지 등 그는 종횡무진 살들이 마주치는 현실에서 생각의 단초들을 밟아간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정성의 문제 즉 ‘돈이 전부가 아님’을 놓치지 않는다. 그게 그의 미덕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행태경제이론의 영향력이 제한돼 있음을 인정한다. 전통적 경제이론의 굳건한 아성에 도전하기에도 아직 역부족인 상태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왜 이 이론에 매료됐을까. 그는 프롤로그에서 “나는 행태경제이론의 영향력이 이론보다 정책의 측면에서 훨씬 더 빠르게 확대되리라고 본다”고 말하면서, 이 이론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론보다 정책 효과 측면에 주목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현실 경제에는 전통적 경제이론으로 이해할 수 없는 특이현상들이 수없이 많이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비현실적 가정이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빚어 내고 있다. 이런 비현실적 가정에 얽매여 있는 한 정책의 효과를 제대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 교수가 ‘행태경제이론’ 공부를 함께 나누자고 제안하는 속셈을 읽을 수 있다.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진실을 탐구하는, 사람의 냄새가 물씬 나는, 결국 따뜻한 36.5℃의 체온 회복을 위해서라는 것 말이다.

그가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은  ‘행태경제이론의 간략한 실험’은 중요하다. 미시경제이론 수강생 169명을 대상으로 한 행태경제이론 실험인데,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발견, 경제학 교육이 사람을 더욱 이기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추측은 근거가 없다는 것 등, 흥미로운 내용을 담아서다. 이준구 교수의 ‘인간의 경제학’이 학계에 공감의 자장을 넓혀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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