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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요즘 불평들이 왜 그렇게 많을꼬?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요즘 불평들이 왜 그렇게 많을꼬?
  • 이봉재 서평위원/서울산업대·과학철학
  • 승인 2009.10.1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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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재 서평위원/서울산업대·과학철학

1. 최근 정치학 교수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교수에 의하면 정치학과 학생들과 사회학과 학생들은 그 정조에 있어서 상당히 다르다. 정치학과 학생들이 약간의 영웅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는 반면 사회학과 학생들에게는 반골의 정신, 비판의 정조가 두드러진다는 것.

    그 이야기를 듣고는 최근 대학가에서 사회학과 철학의 매력 내지 영향력이 급속히 퇴조하는 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철학도 사회학처럼 비판을 존재이유로 삼는 학문. 이들 학문이 유난히 궁색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흔한 대답들이 있다. 정치적 민주화의 일정 정도 성취로 인한 비판대상의 상실,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흐름으로 인한 시장경쟁의 전면화 등이 사회에 대한 이론적 비판보다는 문화적 개성이나 경영학적 진취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태를 더 깊게 읽어볼 수는 없을까. 이 지점에서 최근 번역 출간된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액체근대』 (원제 Liquid Modernity, 도서출판 강, 2009)은 놀랍도록 예리하다는 느낌이다.바우만에 따르면 이 사태의 이면에는 우리사회의 ‘유동화’ 내지 ‘액화’의 경향이 작동하고 있다.

2. 서구 근대성이란 원래부터 일종의 액화, 유동화 과정이었다. 神性의 이름으로 가장된 지배의 구질서를 이성의 열기로 녹여버리는 과정이 서구 근대성의 핵심이며, 이를 베버가 ‘세계의 탈주술화’라고 이름했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있다.

    바우만이 말해주는 것은 그 다음의 이야기다. 바우만에 따르면 서구 근대성의 액화/유동화하는 힘은 지금 시점 더욱 강화되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금 녹아내리고 있는 것은 지배의 어떤 질서가 아니다. 경제적 관계를 제외한 인간적 유대의 모든 형식들이 위기에 처해있다.

“결과에 대한 합리적 계산을 방해하는 모든 부적절한 의무사항들” 예컨대 가족 친지들 간의 유대, 동료와의 의무, 약한 자들에 대한 호의 등.

    더군다나 지금의 ‘액화’는 공간성, 물질성마저 녹여내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사이버스페이스의 힘이다. 통신망을 타고 시시각각 자신의 지점을 이탈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연대, 공간-지리적 연대 또한 녹아내리고 있다.

3. 모든 것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그 세상은 어떤 곳일까. 그 곳은 뜻밖으로 수많은 비판과 불평이 횡행하는 세상이다. 왜 그런가. 모든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또는 쫓겨난) 개인들에게는 그들 각자의 통합불가능한 취향/만족이 최고의 가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즉 그들은 수시로 불평한다.

 
    바우만이 잘 비유하듯, 우리들의 소소한 불평들은 자동차캠핑장의 모습과 전적으로 닮아있다. 어느날 저녁 도착한 캠핑족은 작은 불편에도 아주 예민하다. 격렬하게 항의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면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떠나버린다. 캠핑장의 항구적 개선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러니 이들 ‘유목족’들의 투덜거림은 비판일 수가 없다. 체계적이지도 못하며, 이론적 폭도 갖지 못하며, 다른 세상에 대한 비전 또한 결여한 불평일 뿐이다.

4. 나는 사실 비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던 나로서는 비판보다는 창조에 훨씬 관심이 많다. 대학원에서 만난 철학과의 끊임없는 비판(적 해석)은 대부분 피곤할 뿐이었다.

    그렇긴 해도 우리시대 비판의 쇠퇴가 결국 보호받지 못하는 허약한 개인들의 출현과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 앞에서는 더 이상 둔감하기 어렵다.

왜 사회가 있는가. 그것이 우리들 개인의 약한 부분을 보호해주는 연결망이 아니라면, 그것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니까 우리들 인간의 모든 유대를 녹여내는 지금의 근대성은 사실상 사회를 녹여없애는 것이며, 그로써 인간의 자리, 인간의 장소를 녹이고 있는 것이다. 바우만으로부터 우리들 시대의 가장 예리한 소묘 중 하나를 만나볼 수 있다.

이봉재 서평위원/서울산업대·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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