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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옛사람들의 비유에 그려진 ‘파리’, 그 生態 지식 놀랍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옛사람들의 비유에 그려진 ‘파리’, 그 生態 지식 놀랍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09.09.21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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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희미하고 작은 것을 “파리 足통만 하다”하고, 덧없는 草露人生을 “파리 목숨 같다”하며, 손을 싹싹 비벼 애걸하거나 윗사람에게 阿附할 때 “파리 발 드린다”라고 한다. 그뿐 아니다. 남을 헐뜯어 먹거나 한몫 끼어들어 이득을 보려는 것을 비꼬아 “작은 잔치에 파리 꾄다”라고 하고, “파리 날리다”란 말은 무료하거나 손님이 없을 때 곧잘 쓰는 말이다.

이렇게 옛 사람들은 파리의 行態(behavior)와 生態(ecology)를 훤히 꿰고 있었다. 우리가 어릴 때만해도 놈들이 온 사방 들끓어 밥상에도 먼저 올라앉았으니…. 오죽하면 숙제로 파리와 쥐를 잡아 학교에 다 갖다 냈겠는가. 참 無謀하고 쩨쩨한 짓이었지만 그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집파리, 초파리, 모기, 등에 등은 날개 한 쌍이기에 節肢動物, 昆蟲綱, 雙翅目(파리목Diptera)에 넣는다. 녀석들은 다른 곤충처럼 날개가 4장이었으나, 뒷날개 2장은 퇴화해 흔적만 남고 말았다. 파리의 날개를 떼고 보면, 희고 얇되 얇은 작은 살점조각이 양옆구리에 붙어 있으니 그 모양이 운동기구 棍棒을 닮았다해서 平衡棍이라 하고 막대 모양이라 해 平衡桿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공중에서 몸의 균형도 잡고 방향도 정하는 방향타(키) 역할을 하기에 ‘halteres(balancer)’라고도 하며, 그것이 떨면서 앵! 소리를 낸다. 다짜고짜로 독자들에게 내는 필자의 질문이다. 두 날개는 그대로 둔 채 평형간들을 바늘로 찔러버리고 놓아둬 보자, 파리가 날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보는 파리는 집파리(Musca domestica)지만, 똥오줌에 모여드는 똥파리, 시체나 생선에 쉬를 스는 쉬파리(금파리), 소나 말의 등짝에 피를 빠는 엄지손가락만큼이나 큰 쇠파리들도 있다. 파리는 알을 낳고, 그 알이 까여서 애벌레(幼蟲)인 구더기가 되고, 커서 번데기로 변하고 얼마 후에 날개를 달고자란벌레[成蟲]가 돼 나오는 완전변태(갖춘탈바꿈,complete metamorphosis)를 한다. 번데기 시기가 없는 한살이를 하는 메뚜기 같은 것은 불완전변태를 한다. 아리고 쓰린 탈바꿈 없이는 꿈을 이룰 수 없나니, 지금의 고됨을 어렵고 힘들어하지 말라. 정녕 안 가본 길은 누구나 적이 두렵다. 그러나 바뀜, 변화 그것이 進化일진대, 모름지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정녕 달라 있어야 한다. 미래가 있는 당신은 지금 바로 진화의 가운데에 있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요 내일의 어제일 뿐이지만 참 중요한 하루다. 지금(present)은 아주 귀중한 선물(present)이니까…. 하여 이 늙은이도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고 되뇐다.

    앞에서 애걸하거나 아부하는 것을 빗대서 “파리 발 드린다”라고 했다. 여기서 ‘드리다’란 두 가닥 이상을 가지고 꼬아 한 가닥으로 만드는 것을 말 한다. 바로 짚으로 새끼를 꼬는 모습이다. 실제로 설탕 알갱이나 밥풀을 먹고 있는 파리의 모습을 보라! 끝이 널따란 입(술)이 들락거리는 것은 물론이고(음식을 침으로 녹여 입으로 빪) 앞다리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볼 것이다. 두 다리를 비비꼬듯 부비고 있다!? 그러다간 세수하듯 머리와 눈(겹눈), 더듬이를 닦는다.

무슨 짓일까. 파리는 앞다리로 물체를 만져서 맛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감각기관인 앞다리와 더듬이를 청결하게 하느라 ‘고양이 세수’를 자주 한다. 이렇게 파리도 나름대로 제 깨끗하다한다. 암튼 파리는 앞다리가 혓바닥이다.

    파리를 쫓았더니만 반반한 천장에 또 매끈한 유리창에 찰싹 붙는다. 우리가 못하는 재주를 잘도 부린다. 파리의 다리 끝에는 ‘며느리발톱’이라는 예리한 발톱(넙적 돌기)이 붙어있다. 현미경으로 보면 거기에는 수많은 센털이 나 있어서 그 털을 천장의 종이나 나무 틈 사리에 끼어서 꽉 붙잡는다. 그럼 유리는?

유리도 고배율현미경으로 보면 울퉁불퉁하고 짜개진 틈새가 수없이 많다. 역시 틈새기에 센털을 쑤셔 넣어서 달라붙는다. ‘끈적끈적한 점액 발바닥’으로 붙는다는 옛날 이론은 틀렸다는 것이다. 과학은 뱀 같아서 절대로 뒷걸음질 못하고 앞으로만 달려간다. 숨 가쁘게 내닫는 과학의 진화속도에 어김없이 어제의 ‘참’이 오늘 그만 ‘거짓’이 되고 마는 일이 쌔고 쌨다. 당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파리 한 쌍이 여름 내내 이어서(암놈이 한배에 500여개의 알을 낳음), 하나도 잡혀 먹히지 않고 새끼를 치면 19×1019마리로 주체 못할 정도로 불어나니 지구는 파리이불로 덮여버린다. 한 쌍이 그 정도니….다행히 그 많은 성가신 파리도 捕食者에게 여지없이 거의 다 잡혀 먹히므로 파리수가 일정하게 되니 자연계란 참 오묘하다.

    주검[死體]에 가장 먼저 날아드는 놈도 파리다. 시체가 자연 상태에 노출 될 경우 최소한 여덟 차례에 걸쳐 연이어 곤충들의 침입을 받는다고 한다. 첫 번째의 침입자는 ‘금파리’이고 마지막은 ‘딱정벌레’ 무리다. 하여, 犯罪醫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또한 파리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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