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국립대 대학원
무릇 세상만사가 그러하듯이 변혁은 칼로 베듯이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변혁을 주도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과의 치열한 줄다리기 속에서 ‘기정사실화’가 선행되면서 진행되는 법이다. 이번 국립대학법인화 역시 1990년대 진행돼온 기정사실을 ‘제도화’하는 측면이 강한데, 특기할 점은 변혁의 한쪽 당사자인 국립대학 측의 거의 無言에 가까운 무저항 속에서 진행돼 왔다는 점이다.
90년대 중반부터 대학교육 거품 빠져
그 이유는 ‘잃어버린 십년’이라는 일본사회의 침체속에서 기술의 국제경쟁력 상실 위기에 처한 산업계와 국립대학의 폐쇄성에 대한 납세자의 비난 등 ‘제삼자’의 변혁 요구가 너무나 거세어 대학측은 저항할 힘도 의사도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대학교육의 대중화’로 부풀어올랐던 학생수가 9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감소해감에 따라 교육 서비스가 공급 과잉되고, 생존 확보란 지상과제 앞에서 국립대학도 예외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문부성의 대학 개혁은 국립대학이 누려온 대학의 자치라는 핵심에 도달했다. 일본의 대학 자치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교수 전원이 참가하는 학부교수회의 결정이 교원인사를 비롯한 대학 관리운영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학부교수회는 학부 관리운영에 대해서는 정부 등의 외부 개입뿐만 아니라 학장(우리의 총장) 및 평의회(학부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학장 자문기관)의 간섭까지 거부해왔다. 일본의 대학자치가 ‘교수회 자치’라고도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결과 일본의 국립대학은 유기적인 일체성을 갖는 하나의 조직이라기보다 학부라는 교육연구단위의 연합체로서의 성격이 짙었다.
문부성은 98년 10월 대학심의회의 답신에 의거하여 대학제도의 탄력화와 국립대학 조직운영체제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학교교육법과 국립대학설치법을 개정해 2000년 4월부터 시행했다. 개정 내용은 △학부장(우리의 학장) 설치의 명시, △대학운영에 관한 중요 사항에 관해 학장의 자문에 응하는 ‘운영자문회의’의 설치, △종래 문부성령에 의해 학장의 자문기관이었던 평의회를 국립대학설치법상의 기관으로 하고 예산 및 인사를 포함한 대학의 최고의사결정으로 규정, △종래 교육, 연구 및 교원 인사에 관련되는 일체의 중요사항을 심의, 결정하던 교수회의 권한을 교학 사항으로 한정하고, 교원선발시 학부장이 대학의 인사 방침에 의거하여 교수회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하며, △국립대학은 그 교육연구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부 기타 조직의 운영을 통합하여 기능을 종합적으로 발휘하도록 했다. 또한 때를 같이하여 학부 및 연구실 단위로 배정돼온 예산을 일정분으로 제한하고 나머지 부분을 학장 재량으로 돌리는 개혁도 행해졌다. 이로써 대학 자치는 사실상 붕괴되고 국립대학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조직으로서 기능을 수행할 법제적 기반이 정비된 셈이다.
학장 권한 보완해 대학조직 통합
대학 측, 특히 교수들은 외부적인 변혁의 요청으로 대학의 자치가 사실상 부정되는 것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도 법인화를 통해 대학이 조직, 인사, 예산에서 자유재량을 가짐으로써 문부성과 대학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기대하는 쪽으로 기울어 갔다.
‘보고서’의 조직업무 부분은 이미 단행된 조직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운영자문회의의 명칭이 운영협의회(가칭)로 바뀌어 주로 경영면의 심의를 담당하고, 주로 교학업무의 심의를 담당하는 평의회와의 업무 분담 부분과 학장을 중심으로 한 ‘役員會’의 설치가 새롭기는 하지만, 학부 중심의 대학 자치가 거의 부정된 점은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대학 자치의 핵심이었던 교원인사의 독립성도 ‘학부의 의사 존중’을 표명하면서도 대학 전체의 인사 방침의 반영의 필요성과 학장, 학부장의 역할 강화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은 각 대학이 문부성에서 어느 정도 독립돼 법인화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느냐이다. 법인의 장으로서 학장이 경영자원 배분권한을 가지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문부대신의 학장 임면·해임권을 유지하고, 중기계획의 허가권, 문부과학성령에 의한 법률상의 업무 내용 결정, 대학 독자적인 사업의 제한, 허가 사항의로서의 학생정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행정조직의 일부분으로서의 색채가 상당 부분 남아있다. 또한 현재 사무국 인사의 문부성 일괄관리 체제는 원칙적으로 학장 소관으로 바뀌지만 사무직원의 대학간 인사교류를 위해서는 문부과학성과 ‘연계’할 수밖에 없는 등 애매한 부분이 남는다.
평가할 부분으로서는 직원의 신분이 ‘비공무원型’으로 결정된 점이다. 그에 따라 유연한 고용 형태와 급여 체계가 가능해지고 겸직, 겸업이 비교적 자유스러워지며, 특히 학장, 학부장 등 관리직에 외국인 교원이 취임할 수 없었던 폐해가 시정되게 된다.
한편 각 대학은 제삼자 기관으로부터 정기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고 외부에 설명할 책임, 정보공개 의무를 지는 등 예전처럼 ‘학문의 자치’의 명분 아래 안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평가 방법 및 평가 주체라는 면에서는 여전히 불명확한 점도 많다.
관료의 ‘오래된 관행’ 탈피가 관건
이에 대해 대부분의 국립대학 교원들은 일정한 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교육연구라는 공공재를 공급하는 대학에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이 친화적일지 의구심을 가진 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속에서 법인화가 가져다 줄 지도 모르는 이점에 막연히 기대하고 있다. 특히 효율성 중시는 양적인 평가를 요구하고 있어 그 동안 연구자로서의 ‘양식’과 ‘직감’속에 익숙해온 교수들이 과거의 습성에서 빠져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까지 구태의연한 잣대로 대학을 ‘경영’해 온 문부과학성이 과감하게 권한을 이양할지도 두고봐야 할 것이다. 문부과학성과 대학 쌍방 모두가 과거의 습성에 얽매어 있는 한, 대학 자치의 희생 위에 세워진 ‘국립행정법인’이란 새로운 제도는 국립대학의 명칭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