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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들 심사결과 공개 요구는 해교행위?
지원자들 심사결과 공개 요구는 해교행위?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2.03.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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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9 09:32:53
형식적 법 적용원리가 학문후속세대의 정당한 요구보다 앞설 수 있는가. 교수임용에서 탈락한 지원자들이 금기를 깨고 사상 처음으로 요구된 ‘심사결과 공개’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 교수임용에서 탈락한 성종환, 전혜진, 최문정씨 등 3명의 ‘심사결과 공개’ 요구에 대해 대학측이 “법적으로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면서 사태가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이번 사건은 공정한 교수임용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지원자들이 심사결과 공개를 요구할 수 있도록 교육공무원임용령이 개정된 이후 발생한 첫 사례로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의 요구가 밖으로 알려지면서 문제가 확대되자 대학측은 “공정하게 이뤄진 교수임용 과정을 지원자들이 문제삼아 대학의 명예가 훼손되고 있다”고 밝히고, “명백한 해교행위이며, 심사를 맡았던 교수들에 대한 교권도전”이라며 역공을 펴고 있다. 조재영 통역번역대학원장은 “한노과 교수임용은 역대 어느 심사보다 공정하게 치뤄졌다”며 “지난해 마무리된 일을 학기가 시작된 지금에 와서 문제 삼는 것은 해교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지원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학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 우선 심사결과를 공개할 법적 의무가 없고, 공개한 전례가 없다는 것, 두 번째로 결과가 공개될 경우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일용 교무처장(무역학과)은 “심사과정과 결과에 문제가 있어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관행상 어쩔 수 없다”며 “이미 당사자가 교수로 임용돼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서 심사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학측은 지원자들이 현재 대학원 강의를 맡고 있고, 두뇌한국(BK)21사업에도 일부가 참여하고 있는 점을 들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문제를 확대할 경우 불이익 처분을 내릴 수도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대학측의 강경 입장에 대해 지원자들 또한 “정당한 요구를 대학이 묵살하고 있다”며 “심사결과가 공개되지 않는 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대학에서 이렇다할 조처가 없자, 이들은 지난 11일 교육부에 두 번째 감사촉구서를 전달했다. 감사촉구서에서 이들은 “심사기준과 내용이 불공정했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행돼야 할 기초심사와 전공세부심사를 단 하루만에 종결짓는 등 임용절차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며 “감독기관인 교육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

대학측이 심사기준과 심사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심사내용은 교수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표상용 교수(한노과)는 “기초심사와 전공심사에서는 네 명의 지원자가 고른 평가를 받았다. 우열을 가린 것은 번역실적이었다. 최종 후보로 결정된 방 아무개씨는 다른 지원자들과 달리 ‘러시아 문학 관련 비디오 번역’을 실적으로 제출했는데, 이것이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지원자들은 “편파적인 심사기준 적용”이라고 반박했다. 비디오 테이프 번역 실적만이 주요 평가기준이 될 수 없고, 다른 지원자들이 제출한 산업경제, 과학기술, 정치법률 번역실적을 간과해 방씨에게 유리하도록 심사기준이 편파적으로 적용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심사위원 선정에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표논문에 대한 외부심사 위원 위촉은 비공개로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학과 심사위원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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