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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통곡
아내의 통곡
  • 교수신문
  • 승인 2009.06.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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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흔히 ‘밥벌이’로 불리는 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직업은 우리의 삶에 필수불가결하게 요청되는 의복과 음식과 주거를 마련하는 기본적인 수단이 된다. ‘제 한 몸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장가는 무슨 장가’라는, 누군가가 성인이 된 이후 특별한 직업 없이 빈둥거릴 때 들려 올 법한 어른들의 잔소리는 직업이 단순히 한 개인에 국한해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최소 단위로 하여 이루어지는 개인의 사회적 삶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직업의 중요성이 여기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사회적 삶의 필수적 조건이 된다는 점 이상으로, 그것은 또한 개인이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회 심리학이나 최근 유행하는 평생교육 관련 저작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문구는 이제 귀에 익다 못해 고리타분하게까지 여겨진다. 이쯤 되면, 직업은 가히 우리 삶의 맨 꼭대기 층을 차지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가 가중되는 요즈음 상황에서 직업의 중요성을 새삼 거론하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제 한 몸 건사하고 장가라도 들라 치면 직업을 얻기 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은 당연지사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남들 보기에 번듯한 직장이라도 얻게 되면 아내가 환호작약하는 것 또한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환호작약할 일인가. 오늘날의 우리로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지만, 바깥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반드시 그럴 일만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齊나라에 아내와 첩 한 명을 두고 있는 한 가난한 사내가 살고 있었다(이것부터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사내는 바깥에 나가면 언제나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새벽녘에 집에 돌아와서는 그때마다 고관대작과 자리를 함께 하였노라고 자랑했다. 이에 그 아내가 첩에게 말하기를, 남편 되는 자가 언제나 지체 높은 사람을 만나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돌아온다니 참으로 기꺼운 일이지만, 그런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이 또한 참으로 기이하다. 그러니 남편이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내 보고 오리라. 아내는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이 가는 곳을 몰래 따라가 보았다. 남편은 하루 종일 온 장안을 홀로 배회하다가 자정이 가까워지자 성곽 동쪽의 공동묘지를 찾아 들었다. 그리고는 제사 지내는 자에게 가서 이런저런 너스레를 떨면서 남은 음식을 빌어먹고 부족하면 또 다른 자에게 가서 같은 식으로 음식을 빌어먹었다. 이것을 본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 한평생 우러러 보아야 할 남편이 이 같은 짓을 한다고 한탄하면서 첩을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했다(『孟子』, 離婁 下).

맹자는 이 일화 말미에 ‘君子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사람 중에 부귀와 명예를 구하는 자는 모두 이와 같으니, 만약 그 처첩이 이것을 본다면 부끄러워 울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라는 간략한 논평을 덧붙이고 있다. 누구든지 간에, 아내 된 자는 남편 된 자가 거렁뱅이처럼 살아간다면 속이 상하다 못해 목 놓아 울 것이요, 반대로 고관대작으로 남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면 뛸 듯이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고관대작의 삶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얼른 보면, 그것은 남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는 점에서 거렁뱅이의 삶과 천양지차이다. 그러나 얼른 보기와는 달리, 이 두 삶의 차이는 수준의 차이일 뿐 종류의 차이는 아니다. 아랫사람에게 대접받는 고관대작 또한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부귀와 명예를 누리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반드시 빌어먹는 짓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맹자가 고관대작의 삶을 거렁뱅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러러 보아야’ 할 君子의 삶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근자에 들어 심각해졌다고 하는 경제위기의 여파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오늘날 직업은 남편 된 자의 일인 동시에 아내 된 자의 일이요, 아내 된 자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경향은 한편으로 주변 상황이 몰고 오는 불가피한 압력에 의하여, 또 한편으로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뜻 모를 문구의 부추김에 의하여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아내 된 자의 직업적 성공은 그 남편 된 자의 성공으로 추켜세워진다. 아내의 직업적 성공에 남편이 희희낙락하는 사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이 사태에 대해 옛날의 아내라면 분명 대성통곡했겠지만, 오늘날의 아내가 그렇지 않은 것은 옛날과는 달리 ‘부둥켜안고’ 통곡할 사람이 없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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