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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염려증
건강염려증
  • 교수신문
  • 승인 2009.06.08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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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누구도 병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필자 또한 치아의 반 이상을 갈아 끼워야 할 만큼 오랜 세월 몹쓸 치통에 시달리고 있고, 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감기로 만만치 않은 불편과 고통을 겪는다. 더욱이 감기가 길어질 때면 식구들과 동료들이 늘 쏟아내는 걱정과 충고는 감기를 두 번 앓는 부담을 안겨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늘어나는 뱃살과 조금씩 오르는 혈압은 체중계와 혈압계 앞에서 마음을 옥죄게 한다. 혈압이 결코 정상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닌데도, 그 수치에 안심 반 걱정 반 하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필자는 신종 질환인 ‘건강염려증’의 초기 증상을 앓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 건강염려증은 유독 필자만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 우리에게 보편적 관심사가 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국민적 질환이라는 점이다.

이쯤 해서, 필자가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어느 신부님의 강연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강연의 주제는 누구에게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암을 예방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에서 암은 죽음의 선고나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뜻밖에도, 그 신부님은 암을 예방하는 방법의 하나로 감기를 자주 앓으라는 의외의 제안을 하고 있다. 더구나, 그 제안은 말기 암환자를 돌보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신부님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 요지만 말하면, 감기는 우리 몸 안의 백혈구가 온 힘을 다해 감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으로서, 백혈구의 활력을 높여 몸의 자연적 면역력을 증대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기에 수반되는 고열과 두통은 백혈구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것인 만큼, 감기를 앓는 사람은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를 하면서 백혈구가 이겨낼 때까지 고열과 두통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감기와 함께 찾아오는 고열과 두통을 감내하기 보다는 성급히 해열제나 항생제 등을 찾는다. 이것은 비유컨대 열심히 전투 중인 백혈구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것과 같다. 때로, 병원이나 약국 등의 외부 기관에 의존해 감기의 증세가 호전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면역력 저하라는 대가를 치른 결과이며, 이렇게 저하된 면역력으로는 암세포는 물론이고 어떤 병도 막아낼 수 없게 된다. ‘감기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은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니까, 감기는 만병을 ‘초래하는’ 근원이 아니라 만병을 ‘예방하는’ 근원이 되는 셈이다.

감기가 만병의 예방책이 된다는 얼른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 견해는 고가의 검진과 투약을 최상의 질병예방법으로 여기면서 오직 외부 기관에만 의존해 병을 치료하려는 이때까지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분명, 몸이 아프다는 것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경고이다. 그리하여,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우리는 얼른 병원의 도움을 받아 그 고통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것을 방치할 때, 몸의 작은 병은 큰 병으로 진전되기 마련이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몸의 고통을 이와 같이 생각하며 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몸이 아프다는 것은, 앞의 감기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몸이 현재 자기조정 작업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는 신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르기는 해도, 건강전문가들 또한 몸의 고통의 이 긍정적 측면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寶王三昧論은 우리에게 병의 고통을 良藥으로 삼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즉,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몸에 병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병고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양약’은, 물론, 몸에 좋은 약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데 좋은 약, 즉 수행을 가리킨다. 보왕삼매론은, 놀랍게도, 몸이 아픈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조율하는 기회가 된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마음의 자기조율 작용은, 마음이 몸과 별개가 아니듯이, 몸의 자기조정 작용과 따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병고를 마음 닦는 수행의 기회로 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병고를 몸의 자기조정 작용을 위한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병고를 수행의 기회로 삼는 것은 그야말로 성인에게나 가능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일이 우리에게 결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병의 고통이 오히려 수행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와 늘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우리는 매일매일 병이 안겨주는 몸의 고통을 수행의 발판으로 삼아 감내하고 있으며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삶의 자연적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한, 우리의 마음은 매 순간 성인의 경지를 향해 미약하게나마 자기 조정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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