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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아끼라’
‘세월을 아끼라’
  • 교수신문
  • 승인 2009.05.2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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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영남대에서 열린 학술대회를 마치고 학회 회원들과 청도 운문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회장과 친분이 있는 한 스님의 호의로 장맛비 속에서 아래로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르는 극락교를 건너가 잠시나마 사바의 시름을 잊는 행운을 누렸다. 그 스님이 안내한 다실에서 회원들끼리 담소를 나누던 중에 뜻밖에도 한 교육대학교 학생의 교육실습 경험담을 듣게 됐다. 그 자리에 있던 지도교수의 소개로 시작된 그의 발언은 곧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학생의 경험담은 그가 맡았던 교생 대표 수업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라는 초등학교 2학년 ‘슬기로운 생활’의 한 차시 내용을 나름대로 해석해 수업을 진행했다. 교사용지도서에 제시된 수업목표는 시각 설정과 시간 측정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그는 거기서 더 나아가 ‘시간의 철학적 의미’를 가르치려고 했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도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느냐,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길이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안다. 그 아이들은 야단을 맞거나 무료하게 보낸 한 시간과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서 보낸 한 시간은 시계로 재면 모두 똑같은 한 시간이지만, 전자는 마치 한나절처럼 여겨지고 후자는 단 몇 분도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시간의 상대성’에 대한 아이들의 초보적인 인식을 기화로 하여 객관적, 물리적 시간과 주관적, 실존적 시간의 차이를 이해시키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의미와 가치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모험을 했다.

그의 보고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대부분 교육학자였고, 어떻게 하면 시간―특히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씨름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마 마음속에서 그 교생의 수업을 이어받아 자신을 상대로 수업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도록 도와주는 일로 시간을 보내 왔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그 시간이야말로 더욱 가치 있는 시간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과연 그런 시간을 살고 있는가…….’

‘세월을 아끼라’는 사도 바울의 말(에베소서 5:16)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명구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돼 왔다. ‘세월’이라든가 ‘아끼다’라는 낱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그런 만큼 이 말을 이해하는 데는 하등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낱말들을 일상적인 의미로 이해할 때, 그것은 무익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거나 유용한 일을 많이 하면서 바쁘게 살라는 뜻을 나타내며, 사람들이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뜻을 몰라서 답답해 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 말에는 이런 식의 손쉬운 이해로는 닿을 수 없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우선, ‘세월’은 이러저런 일로 채워지는 빈 공백 같은 시간이 아니며, 더 중요한 일을 위해 줄여야 할 시간은 더욱 아니다. 바울의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세월’은 영원과 맞닿은 시간, 영원과 하나가 된 시간을 가리킨다. 그 세계관에 의하면, 삶의 의미와 가치는 이 특별한 시간을 향유하는 데에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가치의 표준이요 모든 의미의 원천이 된다.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산다는 뜻이며, 또한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든다는 뜻이다.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은 종교의 관심사일 뿐 아니라 교육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교과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속세의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 된다. 지금은 어엿한 교사가 됐을 그 교생은 누군가로부터 ‘어떤 일을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라는 초등학교 교과내용에서 ‘세월’을 읽어내는 안목을 배웠고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 교과내용의 깊은 의미를 추구해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모험은 어린 학생들에게 잠시나마 ‘지복의 세월’을 느끼는 경험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 여름날 그의 모험담을 듣기 위해 극락교를 건넌 것은 아니었지만, 바깥세상에서는 듣기 어려운 그의 모험담을 듣는 동안 그 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극락’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그의 모험담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세월’을 맛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을 아끼라’는 가르침에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돌아보라는 뜻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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