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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시선] 性이 사라진 세상, 상상을 해 본다면
[쟁점과 시선] 性이 사라진 세상, 상상을 해 본다면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5.11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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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간 대화로 읽는 학술키워드_ 18. 성의 종말

교수신문은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적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를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와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데 목적이 있다.


작년에 진행된 기획에 이어 이번에 진행될 키워드는 문명의 전환과 인간의 진화에 초점이 맞춰진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화 사회의 심화, 지구촌을 아우르는 사회, 정치, 경제 질서의 결속 강화는 새로운 문명과 인간의 출현을 가져온다는 인식에서다. 이번호에서는 성의 종말에 대해서 알아본다. 여성주의의 대두로 점차 부각되고 있는 키워드이다. 환경학자인 정명규 선문대 교수는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성비 불균형을 경고한다. 독립연구가인 박연규는  보다 열린 관점에서 지금의 이성애 중심 사회가 다수의 성이 존재하는 사화로 이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한다.

 


 

[쟁점과 시선] 性이 사라진 세상,  상상을 해 본다면

인간을 포함한 대다수 생물의 진화에서 性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의 존재로 인해, 생물은 단순한 자기 복제의 늪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유전 정보를 구성하면서 더 나은 존재로 도약할 기회를 얻어왔다. 그런 이유로 여러 생물 특히 인간에게서 성이 차지하는 위치는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그런데 일각에서 바로 이 성의 종말이 논의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우선은 환경학자들 사이에서 예전부터 지적된 것인데,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남녀의 성비가 파괴되고 있다는 논의를 들 수 있다. 그 핵심에는 내분비계교란물질이 있다. 살충제, 제초제, 중금속과 같은 다양한 현대 산업의 부산물이 배출한 물질이 여타 동물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성비에 불균형이라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다년간 출생 성비가 불균형하게 되면,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는데, 이는 다수의 여성 vs 소수의 남성 구조로 사회가 재편됨을 의미한다. 이는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진화론적 압력이 여성과 남성에 다른 강도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가부장제가 강하다면 일부다처제로 압력이 강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매우 색다른 여권 중심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 호르몬으로 인한 성비의 불균형을 ‘남성’의 종말, 혹은 성 일반의 종말로 사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상정하더라도, 남녀 간의 정치적, 사회적 권력에 차이가 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경 호르몬은, 잇단 환경론자들의 경고에 힘입어 미래에는 충분히 통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이 되고 있어, 그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성의 종말이 논의되기도 한다. 일부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은 미래의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단성 생식이 가능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이는 비단 여성들만의 독자적인 재생산 가능한 사회 구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성애자들이 단성 생식을 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고, 혹은 일부러 특정성을 배제한 생식을 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더 극단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을 통합한 양성형 인간의 자기 재생산이 제시되기도 한다. 혹은 양성형 인간, 동성애 커플, 여성주의 커플, 남성주의 커플이 복합적으로 얽힌 다성적 사회가 출현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논의는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성비의 불균형과는 차원이 다른데, 지금까지의 이성 중심 사회의 종말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성의 종말은, 기술적으로, 곧 인간에게 그럴만한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수 있다. 특정 성이 사라진 세상, 혹은 양성형 인간들이 지금의 인간들을 대체할 경우, 지금까지 사회 제도와 문화가 상상도 못할 혁명적 변화를 맞이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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