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6:10 (일)
[나의 강의시간] 코피 터지고 절망해도 늦지 않다
[나의 강의시간] 코피 터지고 절망해도 늦지 않다
  • 이 훈 목포대·국어국문학
  • 승인 2009.03.30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한국문학, 그 가운데서도 현대소설을 주로 가르치는데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작품을 읽게 하느냐 하는 것에 온통 신경을 쏟는다. 그래서 과제는 오로지 작품의 줄거리를 매주 자세하게 정리하고 어려운 낱말을 조사하는 것뿐이다. 일주일에 단편은 대여섯 편, 장편의 경우는 한 편이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줄거리를 올려놓는 곳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아주 편하게 줄거리를 베끼는 것이 가능해졌다. 학생이 직접 작품을 읽고 있는지를 제대로 가려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스스로 읽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학은 정독으로 향유할 수 있다. 이 훈 교수(오른쪽 두 번째)는 ‘줄거리 첨삭’을 강조한다. 사진제공:  목포대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이 정리한 줄거리를 수업 전에 전자 편지로 제출하도록 하고, 수업하면서 줄거리와 관련된 질문을 자주 할 뿐만 아니라 시험에서도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문제를 낸다. 텍스트를 그대로 인용하고 나서 인물이 거명되는 부분에 괄호를 치고 거기에 맞는 답을 쓰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 소설사에서 최초의 근대소설이라고 평가되기도 하는 『무정』(1917)을 읽지 않고서 이 소설의 근대문학적 의의를 아는 것은 단순한 정보 암기일 뿐이다. 지식 습득이 아니라 지적 능력을 키우고 더 나아가서 문학 작품의 미학적 성질을 제대로 느끼며, 거기에 나타나는 세계관을 해석할 수 있는 비판적인 이성을 지닌 주체적인 개인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문학 교육, 더 나아가 인문학의 목표여야 한다. 이런 목표에 가까이 가자면 학생과 작품 사이의 고통스러우면서도 창조적인 소통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면 먼저 학생들이 정리한 줄거리를 발표한다. 선생은 그 발표를 들으면서 어색한 문장에서부터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인데 빼놓은 부분이라든가 반대로 지나치게 상세하게 거론해 균형이 맞지 않는 곳을 일일이 지적한다. 이 경우에는 반드시 그 근거를 작품에서 끌어옴으로써 줄거리 정리가 작품의 올바른 이해와 직결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줄거리를 정리하는 작업은 학생들에게 작품을 스스로 읽게 함으로써 작품을 주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울러 대학생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글쓰기 능력을 기르는 데도 이바지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줄거리 발표가 끝나면 학생들의 독후감을 간단히 듣고 나서 선생이 작품에 관련된 사항과 연구 경향 등을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서 중심을 이루는 것 역시 정독의 중요성을 실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작품의 구조를 알기 위해 갈등을 파악한 다음에 작품의 앞뒤로 오가면서 각 부분들이 전체와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 주목하도록 한다. 그러면 작품의 중요한 대목을 많이 읽게 된다.

나는 대학에서 전인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감이 좀 부족한 우리 학생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꿈과 열정, 성실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수업 시간마다 강조한다. 과제하다가 코피를 흘리고 밤새워 공부하고 난 다음에 절망해도 늦지 않다고 얘기한다.

수업 시간마다 출석을 확인해서 지난 시간에 결석한 학생에게 그 이유를 꼭 따져 묻는다.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것이 어떤 학생들에게는 자극이나 격려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수업을 마치면서 그 소감을 적은 글에서 나를 ‘치어리더 교수님’라고 부른 학생도 있으니 말이다.

이 훈  목포대·국어국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