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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적응 집단인가, 新인류의 출현인가
사회부적응 집단인가, 新인류의 출현인가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3.16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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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간 대화로 읽는 학술키워드_ 15. 오타쿠] 쟁점과 시선

<교수신문>은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적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를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와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데 목적이 있다.

 지난해 진행한 기획에 이어 이번에 진행할 키워드는 문명의 전환과 인간의 진화에 초점에 맞춰진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화 사회의 심화, 지구촌을 아우르는 사회, 정치, 경제 질서의 결속 강화는 새로운 문명과 인간의 출현을 가져온다는 인식에서다.

 이 취지하에서 이번 호에서는 오타쿠에 대해서 살펴본다. 정보화 사회의 대표적 인간유형인 오타쿠는 소외와 칩거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러나 새로운 인간 진화의 일환으로 생각하자는 주장도 있다. 사회학자인 조동기 동국대 교수는 오타쿠에 대한 전향적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그리고 오타쿠와 집단지성의 가능성을 논한다. 문학평론가인 복도훈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접근 보다는 그 원인에 대한 이해와 정치적 접근을 권한다.


오타쿠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주변에 무심한 눈빛, 산발 머리, 아무렇게나 입은 옷, 끊임없이 뭔가를 만지는 손. 그리고 어딘가 부족한 사회부적응자가 연상되진 않는가. 댁이나 당신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오타쿠는 단순한 취미 애호가 수준을 넘어서 특정 분야에 대한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을 지칭한다. 이 단어가 일본어인 점이 암시하듯이, 오타쿠는 일본의 독특한 대중문화 속에서 출현한 집단과 연관이 깊다. 반드시 분야를 한정할 필요는 없지만,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에 광적인 기호를 지닌 폐쇄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오타쿠에 대한 일반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취미를 취미 수준이 아니라 광적으로 매달리는 모양이 이상해보이고, 어딘가 변태적이며, 기이하며, 반사회적인 분위기도 풍기기 때문이다. 하위문화의 변방을 차지하는 집단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세간에서는 오타쿠를 이른바 히키코모리나 니트족과 연관시키는 경우가 잦다.
곧 집에 틀어박혀 일체의 사회적 접촉을 거부하는 자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타쿠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과연 이 많은 사람, 이토록 확산되는 문화를 사회부적응자들의 일탈적 양상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혹 어떤 근본적인 변화의 징후는 아닐까.
일본의 문화평론가인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를 포스트모던을 대표하는 집단이자, 새로운 인간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낸다. 이들은 국가, 거대 담론, 이데올로기, 근대적 가치 체계, 기존의 사회구조, 큰 이야기들에 강박되지 않는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곧 특정 아바타의 삐죽 나온 머리카락에 열광하고, 성적 쾌락조차 가상에서의 그것으로 대체하며, 자신들만의 작은 이야기들을 데이터의 바다에서 구성하는데만 관심을 갖는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타자와 관계 맺기 자체에 생소한 동물적 욕망을 지닌 즉자적 존재들로 변모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든, 이들은 오직 컴퓨터 화면에만 신경 자극이 되게끔 어릴적부터 훈련이 돼있다는 말이다.

컴퓨터 게임에 미치고, 멍한 눈빛으로 가상의 이야기에 울고 웃는 이들. 에티엔느 바랄이 말한 것처럼 ‘가상적인 것의 아이들’인 이들은 모든 큰 이야기들이 몰락하고 있는 시대가 낳은 신인류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오타쿠는 모던이 저무는 시대의 황혼녘에 여기저기서 출몰하고 있는 좀비와도 같은 존재가 된다. 오타쿠와 신인류 출현이라는 테마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진 않은 상태다. 일본을 중심으로 몇몇 나라의 문화평론가들이 관심을 갖는 수준이다. 사회학 등 일부에서 접근하는 태도도 ‘실태조사’와 ‘현상기술’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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