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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가치를 보호할 수 없을 때 인간성 복구의 원천은 무엇일까
사회가 가치를 보호할 수 없을 때 인간성 복구의 원천은 무엇일까
  • 이봉재 서울산업대·과학철학
  • 승인 2009.03.0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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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제롬 뱅데 외 지음┃이선희 외 옮김│문학과지성사│2008│620쪽

이 책은 야심찬 기획의 산물이다. 현재에 대한 진단과 전망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가 기획한 ‘21세기의 대화’라는 포럼에서 나온 발표문을 편집한 책이다. 자크 데리다, 장 보드리야르, 폴 리쾨르, 제레미 리프킨, 줄리아 크리스테바 등 저명한 세계적 지성들이 참여했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저자들은 가치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기성 가치들의 생명이 다하는 징조가 분명한 현재는 과연 새로운 가치를 약속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21세기의 가치는 어떤 것인가.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선 어떤 전략과 자세가 필요할까라는 등의 물음이 논구된다. 문화, 언어, 교육,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가 문제시 되고, 유전혁명과 과학기술의 문제 심지어 우주의 미래에 대한 논의까지 전개된다. 결론은 단정적으로 요약할 순 없다. 하지만 굳이 역자의 말을 빌려 얘기한다면 인간과 세계의 어떤 새로운 관계 맺기와 공진화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개발의 대상으로 상대했던 근대적 세계관의 변모를 전제한 것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가치의 미래’라는 대주제 아래 세계의 저명한 지식인 49명의 의견을 모아놓은 이 선집은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21세기의 대화(Twenty-First Century Talks)’라는 포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유네스코 ‘미래전망 분과’가 ‘인문 및 철학 분과’와 함께 주관하는 이 포럼은 1997년부터 지금까지 시급한 인류사적인 주제를 놓고 비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는데, 이번 선집에 묶인 글들은 2001년 하반기에 진행됐던 포럼의 결과물들이다.

2001년 하반기는 현대사의 특별한 시간대이다. 그해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물이 이슬람계 테러리스트에 의해 파괴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의미는 절대 단순치 않다. 그를 통해 대도시라는, 서구 현대성의 거점이 갖는 근본 취약성이 드러났으며, 전쟁과 민간인 간의 전통적인 경계 또한 지워져 버렸다.

잠재적 테러에 대한 불안감 앞에서 자유라는 가치 또한 유보될 수 있는 것으로 재해석됐으며, 적의 잔혹함에는 똑같은 잔혹함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응징의 원칙도 부활했다. 
2001년의 포럼을 배경으로 하는 이 선집은 당연히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서로 다른 가치체계는 오직 충돌할 수밖에 없는가, 하나의 가치체계가 그토록 폭력적일 수 있는가, 모든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가치의 미래가 존재하는가 등 이 선집을 묶어주는 문제의식의 상당부분은 ‘9월 11일’ 테러로부터 그 시의성과 긴장감을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 가치의 문제는 ‘9/11’의 그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른바 포스트 모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치의 상실’, ‘의미의 부재’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실상 가치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가 붕괴한 이후 서구의 가치체계는 민족국가와 문화권을 따라 분열했으며, 세계화의 확산 속에서 강화된 ‘소비적 개인주의’는 가치와 문화를 개별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리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가치의 위기란 사실 가치의 ‘범람’이며 가치의 ‘하찮음’이다.

 

이제 모두들 공통의 가치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가치는 취향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가치문제의 깊이가 있다. 이렇듯 가치가 파편화되고 그리하여 공통의 가치가 없다면, 가치들의 폭력적 충돌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다음 세대에무엇을 교육시켜야 하는가. 그리고 공통의 가치가 없을 때, 우리가 공유하는 지구를 지속시킬 수 있을까 등등. 선집의 세부를 이끌어가는 문제의식은 이런 것들이다.
풍성하다 못해 방대하기까지 한 이런 선집은 어떻게 읽어야할까. 이 선집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제시된 의견들이 상충하는 부분들이다. 하나의 결론을 보여주는 대신 의견 상충을 드러내는 이 책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물음의 폭과 깊이다.

단순한 상충이야 싸움으로 귀결될 뿐이지만, 의견들의 ‘진지한’ 상충은 우리들 식견의 폭을 상승시켜주는 효과적인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보겠다. 튀니지의 엘레 베지는 우리시대가 겪고 있는 가치의 위기가 사실상 다원적 문화에 의해 조장된 어떤 폐쇄성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20세기 중반, 탈식민지 시대와 함께 대두한 ‘다원적 문화’의 개념은 원래 ‘문명’이라는 위계적 관념을 대체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다원성의 기치 아래 개개 문화가 자족적인 정당성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문화가 동등하게 정당하다면, 그래서 개개 문화가 논박불가능한 정당성을 갖는다면, 그 문화 속의 폭력이나 비인간성의 요소들은 교정될 기회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은 흔히 문화라고 이름 붙여지는, 차이에 대한 편견을 초월했을 때에만 얻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피부색, 인종, 남녀, 계급을 넘어선 ‘인권’의 개념이란 사실상 문화를 벗어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해 엘레 베지는 인간적 가치의 퇴락은 오직 정치적 권리를 분유하는 시민사회의 성숙으로만 제어가능하다고 결론 내리게 되는데, 그러나 이에 대해 프랑스의 알렝 투렌은 곧장 이의를 제기한다.

알렝 투렌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중요한 진실은 바로 시민사회의 무력함이다. ‘세계화’가 증폭시킨 자본, 권력, 무력의 영향력 아래 우리의 사회가 붕괴되고, 고도로 물화된 사회 속에서 개인들은 소비 스타일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확인받는 이른바 ‘소비적 개인’으로 재구축된다. 사태가 이렇다면 가치의 미래를 시민사회에서 구할 수는 없다.   

사회가 가치를 보호할 수 없을 때, 인간성을 복구할 원천은 다시금 문화라는 것이 알렝 투렌의 의견이다. 당연히 이때의 문화는 소비적 개인주의로부터 벗어난 어떤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미셀 세르가 말하듯, 본질적으로 낯선 것을 만나 성숙해가는 여행 같은 것으로서의 문화일 것이다.
이 선집 안에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의견의 상충들이 들어있다. 가치의 다원화를 가치의 창조 또는 ‘가치의 미학화’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

가치체계의 급변은 가부장제의 위기 또한 초래한다.
그렇다면 ‘여성적 가치’에서 가치의 미래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창조해냈다. 지금 더욱 위험한 것은 자연이다. 자연을 존속시키기 위한 ‘자연계약’을 고려할 시점이 아닌가 등등. 의견들의 더미 속에서 통찰의 글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이 선집에는 들어있다.

주로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발언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남미, 아프리카, 중동의 지식인들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번역도 나쁘지 않으며, 필요한 곳마다 요긴한 주해를 붙여놓았다. 천천히 읽으며, 하찮기 보다는 여전히 너무 격렬해서 문제가 되는 우리네 가치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유용한 참고서다.

 

이봉재 서울산업대·과학철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새로운 천년의 과학 등의 저서와 인공지능과 책임의 문제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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