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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교육 白兵戰
[문화비평] 교육 白兵戰
  •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 승인 2008.09.2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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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요즘 대한민국의 교육이 돌아가는 판을 보면 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지난 주 서울 친구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초등학교 때의 성적이 특목고 입학을 좌우하니 아이들 팡팡 놀리지 말고 4학년 때부터 바짝 죄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 분야에 더 정통한 ‘교육계의 타짜’에 의하면 4학년도 늦고, 3학년 겨울방학부터 ‘밀봉교육’에 바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중과 전국 일제고사의 등장으로 인해서 그 시작은 2학년 겨울방학 정도로 당겨질 것이라고 귀띔을 해줬다. 특목고 진학이 대학입시의 첫 관문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목고에서 말하는 그 특수목적이 언제부터 유명 대학 진학이 됐는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특목고 상황도 그렇게 여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특목고의 어떤 학부형은 자식의 시험 결과에 불복해 청와대로, 감사원으로, 검찰청으로 수사까지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니, 이래서 진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이다. 자식이 틀린 문제의 엄밀한 답을 위해 최신 <네이처> 논문까지 팩스로 보내서 무식한 교사를 질타한 교수 학부형까지 있었다니, 이래서 부모의 은혜는 가없다고 하는 것이다. 올 여름 필자는 어떤 연유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올림피아드에 관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대회에서 입상권 밖으로 밀려난 몇 학생들의 학부모들과 특정 학원이 의기투합해 출제위원 교수들을 조사해달라는 민원을 경찰청에 넣었다. 사연인즉 출제교수들이 본선 문제를 특정 학원으로 유출했을 수도 있으니 이러한 의혹에 대하여 엄중하게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현재 진행되는 교육백병전에서는 본인의 적절한 노력, 엄마의 넓은 정보력, 아빠(혹은 할아버지라는 설도 있다)의 확실한 경제력, 이 3개의 드라곤 볼을 모은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오로지 자신 외에는 모두를 적으로 삼아 어둠 속에서 총칼을 휘두르는 백병전이 지금의 교육전쟁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한편, 이 보다 더 무서운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진지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작금의 교과서 전쟁이다.

조선의 이념이 유교가 된 것은 다름 아닌 과거제도에서 쓰인 기출문제용 교과서들 때문이다. 유교 이데올로기만이 정답으로 간주되는 문제에서 누가 감히 “어찌 왕후장상의 씨앗이 따로 있으리오.”라는 요 따위의 미친 답안을 적어낼 수 있으리오. 낙방을 물론이요, 요런 불경스런 수험생은 아마도 시신이 돼서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 몸 전체가 한 토막으로 붙어서 갔다면 복 받은 자라고 할 것이다.

작금의 교과서에 대해 여러 수정 요구가 있다고 한다. 물론 치우친 것이 있다면 다시 무게를 달아봐야 하고, 빠진 것이 있으면 채워야 할 것이다. 여러 교과서들이 좌우로 적절한 스펙트럼을 가지는 것은 다양한 사상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것이 권력을 등에 업고 강요되는 식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법관의 판결을 양심에 따른 결과라고 믿어주는(줘야 하는) 것 같이 그것은 각 선생님들의 양심과 연구에 맡겨야 하고, 또 그것만이 유일한 방책이다. 그러나 지금의 추세로 본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수능에 나올 것 같다.

“다음 중 친북좌파소탕에 매진해 지금의 경제발전에 가장 기여한 정권은? ” 또는 “다음의 불법행위 중 우리 국가경제에 피해를 끼치는 정도가 가장 심각한 것은? (1)뇌물수수 (2)위장전입을 통한 탈세 (3)불법 거리시위 (4)선거법위반 (5)노상방뇨. “웃을 일이 아니라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수능문제의 정답으로 인해 국가적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야말로 진지전과 백병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것이다. 공영방송 정규 뉴스에서 집권 이데올로기를 백번을 선전하는 것 보다, 요상한 수능 한 문제가 훨씬 더 강력한 이데올로기 매개체가 되기 때문에 이 성배는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소비에트 생물학 10년을 고스란히 말아먹은 뤼센코의 예가 보여주듯이 교육에 종교와 과도한 이데올로기가 개입하는 것은 국가 멸망의 지름길이다. 레이건에서 시작해 부시정권에 이르기까지 공화당내 남부신학 근본주의자들이 ‘진화론, 줄기세포, 기후변화’ 관련 연구자들을 그렇게도 갈구고 괴롭힌 결과로 미국이 결국 얻은 것은 무엇인가. 과유불급, 완장을 찬 사람은 씩씩하게 학교 밖을 지켜야지 교실 안으로 들어와서 아니 될 것이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교육은 교사에게”, 약봉지에 이런 경구가 쓰여 질 날을 기대해 본다.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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