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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의식] ‘뇌-의식’ 둘러싼 현황과 쟁점
[뇌와 의식] ‘뇌-의식’ 둘러싼 현황과 쟁점
  • 교수신문
  • 승인 2008.09.0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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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 신경과학·심리학자와 달리 ‘환원’ 놓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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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은 사회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 키워드를 정해 다양한 전문가적 관점의 학자적 식견이 상호 소통하는 장인 ‘학문간 대화로 읽는 키워드’를 마련했다. 이 기획은 한국과학문화재단 <사이언스타임즈>와 공동기획으로, 21세기 현재 지식의 전선을 바꿔나가는 이슈 키워드에 다양한 학문간 대화로 접근함으로써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미학적 이해와 소통의 지평을 넓히는데 목적이 있다.

그 네 번째로 여전히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뇌와 의식의 문제에 대해 살펴본다. 심리학자 곽호완 교수는 의식을 포함한 모든 심리과정이 뇌신경의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 감각질과 창발의 문제는 과학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심리철학자이면서 경험적 물리주의자인 한우진 교수는 의식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한 철학의 노력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경험과학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함을 강조한다.

 


 

‘뇌-의식’ 둘러싼 현황과 쟁점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의식이 뇌를 이루는 분자들의 운동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인간은 별로 없다. 서구 철학 역시 전통적으로 우리의 의식이 육체의 운동으로 환원이 될 수 없다는 이원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18세기 말부터 과학적 방법으로 무장한 현대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의식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은 도전을 받았다. 가장 먼저 의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 학파는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의식을 여러 감각요소로 나누면서, 내관법(introspection)으로 자신의 의식을 관찰하고자 했다. 그런데 관찰하는 주체로서 의식은 관찰될 수 없다는 모순에 부딪치면서 붕괴했다. 구성주의의 난점에 직면한 심리학은 게슈탈트 학파와 기능주의 심리학을 태동시켰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대상에 대한 전체 지각 표상은 그 대상 요소에 대한 지각의 합 이상이라는 주장을 했는데, 이는 의식의 기능에 초점을 두는 기능주의로 이어지게 됐다. 기능주의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통해 유기체가 여러 지각 표상과 행위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서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 후 의식은 심리학의 주제 목록에서 잠시 제외가 된다. 마음, 의식 등은 객관적으로 관찰될 수 없으므로 자극이나 행동 등 관찰 가능한 것만을 연구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출현 때문이다. 한편 인지심리학은 뇌파(EEG) 측정법,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fMRI) 등 신경학적 연구법과 함께 괄목할만한 발달을 하게 되었다. 인지심리학이 이렇게 신경 생리학적 방법으로 뇌와 의식의 문제를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뇌손상을 당한 환자들에게서 여러 인지적 이상 특성들을 관찰하면서 생긴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결국 이러한 연구는 인지심리학에 대한 신뢰를 높여서, 이제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 및 심리학자들은 의식을 포함한 모든 심리과정이 궁극적으로 신경과정으로 환원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감각질과 창발의 문제
신경과학자들과 인지심리학자들의 입장과 달리 철학자들 사이에서 뇌와 의식의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특히 핵심 논점은 감각질(qualia;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는 붉은 색의 붉음이라는 성질)과 창발(emerge; 이전에는 없던 것이 갑자기 발생하는 현상)이 과연 뇌의 물리적인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나’만이 의식하는 대상의 성질을 신경구조로 환원하는 일이나, 의식이 창발하게 되는 현상을 뇌신경의 정신-화학적 법칙으로 설명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가 논쟁점이다. 이와 관련해 의식이 뇌의 운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보는 이원론적 입장과 뇌의 운동으로 환원가능하다고 보는 물리주의적 입장이 있다.

이원론의 경우 여전히 의식은 물리적 법칙이나 용어로  포섭 가능한 범주의 것이 아니고, 그래서 감각질이나 창발을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직관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통의 본질은 그 느낌에 있다는 크립키의 양상 논변, 의식 경험의 주관성은 객관적 환원이 불가능하다는 네이글의 주관성 논변, 색에 대한 물리적 지식이 있더라도, 색에 대한 경험은 새로운 지식을 줌으로 이에 대응하는 독립적 속성이 있다는 잭슨의 지식 논변, 우리와 물리적으로 동일하지만 의식 없는 좀비가 가능하다는 찰머스의 좀비 논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이원론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지지하면서 물리주의에 저항을 하고 있다. 대표적 학자로는 해외의 경우 데이비드 찰머스 호주국립대 교수(철학)와 솔 크립키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철학)가 있다.

한편 뇌의 운동으로 의식이 환원이 가능하다고 보는 물리주의적 입장은 오늘날 신경 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들은 의식이 물리적 사실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한다. 다만 감각질과 창발에 대해서 아직 뚜렷한 설명을 내놓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신경과학의 도움을 받아 뇌와 의식에 대한 통일적 이론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재미 한인 철학자로 명성이 높은 김재권 브라운대 교수(철학)가 바로 이 물리주의에 기여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고, 국내에서는 윤보석 이화여대 교수(철학) 등이 관련 논문을 꾸준히 학술지에 내고 있다. 심리학자 중에서는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심리학)가 유명하고, 신경 생리학자 중에서는 뇌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제럴드 에델만 미국 신경과학연구소장이 있다. 물리주의 내부에서도 개념적 설명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경험과학의 성과를 토대로 하는가에 따라 개념적 물리주의와 경험적 물리주의로 나눌 수는 있으나, 학자별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상황은 아니다.

오주훈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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