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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탄생, 위협받는 기초학문
공룡의 탄생, 위협받는 기초학문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08.25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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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학자들, 한국연구재단 설립 재검토 주장

지난 8일 학술단체협의회등 3개 인문사회계 학술단체가 서울 정동에서 공개토론회를 열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 이명원 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황영호 군산대 교수(행정학과)(왼쪽부터)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 : ‘국가학문지원정책의 올바른 방향’요약

“최근 정부는 ‘신정부 출범 및 교육과기부 발족에 따른 기초연구지원 시스템 효율화 및 선진화’라는 구호 아래 이른바 ‘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을 꾀하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기왕의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을 통합하여 새로운 연구관리전문기관을 세운다는 것인데, 교육과기부가 배포한 자료에는 두 개의 부처의 통합에 따른 조치라는 점 외에는 이렇다할만한 기관통합의 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새 집단의 발족을 통해 ‘기초원천연구투자 확대’와 ‘기초연구지원시스템 효율화 및 선진화’가 이루어져 ‘기초원천연구의 창조적 역량 극대화, 지식기반사회의 성장잠재력 확충, 과학기술 5대 강국 구형의 기초체력 강화’라는 목표를 이룬다고 자료는 밝히고 있는데, 연구투자의 확대는 새 재단의 설립과는 아무런관계가 없는 사안이고 또 새 집단이 생긴다고 하여 연구지원체제가 자동적으로 더 효율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통합의 기대목표라는 것도 두 재단의 발전적 해체와는 원칙적으로 무관하다. 두 재단이 존속한다고 하여 그런 목표가 포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합을 계기로 ‘기초원천연구의 기회 확대’가 우리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더 튼실하게 해 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본다면 교육과기부가 통합에 임하는 자세는 다소간 실망스럽다. 통합을 발전의 적극적인 계기로 삼으려는 의지가 돋보이지 않거니와, 더 근본적으로 우리 학문의 현 상태에 대한 진단과 이에 입각한 방향 모색의 고민이 결여된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을 통폐합하는 형식으로 새 학술재단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정부의 R&D 기금 운영의 구조 개편’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양 재단은 그 나름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갖고 있다. 차제에 인문사회계와 이공계에 대해 아예 별개의 지원기관을 존치시키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차제에 새 재단은 연구관리전문기관으로서 독립성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연구지원업무의 공정성, 전문성, 객관성을 살리는데 더 적절하다. 셋째, 새 재단의 주 업무인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이 대학의 연구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끔 새 재단의 운영방식이 혁신되어야 한다. 넷째, 연구지원재단의 성패는 학문분야별 특성에 적합한 평가체제의 구축 여부에 달려 있다. 다섯째, 연구비 사용과 관련하여 새 재단은 감독만 하고 아예 대학에 위탁 관리시키는 과감한 집행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여섯째, 새 재단의 연구지원사업은 새로운 문제의식과 지적 실험에 대해 열려있어야 한다. 일곱째, 새 재단이 기초연구지원이 주목적이라면, ‘연구개발활동과 연구개발인력’이란 표현도 ‘연구활동과 연구인력’으로 달리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명원 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 ‘학진/과학재단 통합의 문제점과 인문학의 위상’요약
“기존의 단체를 통폐합한 새로운 연구재단의 평칭은 한국연구재단이다. 이 명칭은 여러 논자들에 의해 지적되었지만, 체계적인 국가학술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적당하지 않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재단의 명칭에 ‘학술’이라는 용어를 분명히 명시함으로써, 학술지원 및 정책기관으로서 성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연구재단의 설립모델은 미국의 국립과학재단(NSF)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은 명칭에서 보이듯, 인문사회과학 중심의 지원모델이 아닌 이공계 중심의 정책지원기관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기관의 통폐합 이후 한국연구재단이 인문학 분야의 연구 및 정책 기능이 약화될 것을 인문학자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에 국가학문정책의 수립 및 지원에 있어 학문분야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 때문에 학술연구 및 정책지원 기관이 분리되어 있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을 굳이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하는 것이 선진화와 효율성의 목표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빈약하다.

새롭게 설립되는 한국연구재단은 ‘사무총장 중심운영’을 뚜렷이 하고 있다. 사무총장은 전권을 갖고 인사, 재정, 경영, 정책 등을 총괄한다. 명목상의 이사장은 있지만, 비상근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 책임성이 떨어진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한 대로 이러한 구조는 이사장·사무총장의 역할분담 및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이사장은 인사 및 재정 부분을 총괄하고, 사무총장은 경영 및 정책부분을 총괄하는 식으로 업무분담을 재조정해야 한다.

한국연구재단의 설립에서 특징적인 것은 이른바 PM제도에 있다고 보여진다.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의 프로그램 담당관(PO, Project officer)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이는 이 제도는 오히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정책의 전문성과 공정성의 확보에 독이 될 수 있다. 한국연구재단안을 보면, 소수의 PM이 연구재단 정책의 전 영역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되어 있으며, 더구나 민간전문가로 구성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일단 PM의 직무의 공정성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체계화가 없다면, 이는 연구자들에게 상당한 불신을 초해할 뿐만 아니라, 연구의 자율성과 목표를 사실상 검열하는 학문사회의 ‘빅브라더’가 확률이 높다.

새 정권이 출범했다고 해서 학문정책이 효율성과 선진화로 획일화된다면, 이것은 학문의 본령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우를 범할 확률이 높다. 학문의 목표는 가령 실용학문의 경우는 국책에 입각한 정책연구가 필요한 부분도 불가피하게, 때로는 전략적으로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개별적 연구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학문의 존립이 불가능해진다.”

 

황영호 군산대 교수(행정학과) : ‘학진/과학재단 통합(안)과 사회과학’요약
“양 기관의 통합은 ‘기초연구지원 및 관리체제의 일원화’라는 일차적 수준을 넘어, 지식기반사회 국가발전의 핵심동력으로서 기능할 기구를 확대, 재편하는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설립법안 마련, 국가 R&D 설명회, 입법공청회 등을 통해 현재까지 드러난 준비과정은 양 기관의 고유기능과 역할 및 연구 현장의 요구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토대로, 통합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미래지향적 방향제시를 고려하는 기능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기존 양 기관의 기능을 물리적으로만 취합하고 단순화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심지어 두 기관의 시스템 중 하나만을 임의로 취사선택하여 획일화하는 행정적, 관료주의적 관점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연구지원의 폭과 깊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인문사회분야에 대한 홀대가 우려될 수밖에 없다.

통합의 궁극적 목표는 연구자의, 연구자에 의한, 연구자를 위한 ‘학술연구지원체제의 효율화·선진화’이어야한다. 최우선적으로 다음 사항에 대한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고려와 검토를 제언하고자 한다. 이는 첫째, 정부에서도 전면에 내세우는 현장 중심, 수요자 중심의 정책추진을 위한 연구현장과의 소통, 둘째, 선진화를 위해 벤치마킹 대상으로 제시되고 있는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의 구조 및 작동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책적 함의 도출 및 실제적인 적용, 셋째, 연구지원기관의 전문성 강화와 축적 및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다. 결국 진정으로 연구자의 입장에서 연구자가 만족하고, 학문분야별 특성이 고려되고 전문화된 연구지원기관으로의 통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연구자들과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하는 비전과 중장기 발전계획이 제시되어야한다.”

한국연구재단 설립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자들과 단체들은 지난 20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보낸 의견서에 대한 반응의 본 뒤, 국회의원들도 참여하는 대규모 공개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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