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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촛불, ‘중도의 지혜’를 모색하기
[문화비평] 촛불, ‘중도의 지혜’를 모색하기
  • 유희석 / 전남대 영문학
  • 승인 2008.06.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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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연조가 짧은 정치체제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서양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이 처음 수입될 때 ‘하극상’으로 이해됐다는 사실은 당대 위정자들에게 ‘民主’가 얼마나 새로운 개념이었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과 계급, 인종의 장벽을 넘어서서 만인이 평등하게 각 1표씩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대표자를 뽑을 수 있는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까지 수많은 희생이 따랐던 제도가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정당정치와 3권 분립이 근간인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획득한 정치체제임을 부정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1인1표라는 대의제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완벽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위험성은 역사적으로 희대의 독재자인 히틀러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탄생했음을 상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한마디로 시민들이
깨어있지 않는 한, 시민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각성한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위험천만한 정치체제인 것이다. 이 뻔한 사실을 현실에서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공과를 온당하게 결산하지도 않은 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해버린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 웅변한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그 참뜻을 구체적인 역사현실에서 헤아리지 않는 한 한낱 공허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어쨌든 서구,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민주주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조정과 타협을 통해 형성된 것과는 달리 외세에 의한 식민통치 끝에 분단으로 귀결된 20세기 후반 한국의 정치사는 민주주의에 관한 한 세계사적 보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하나의 특수한 사례에 해당하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길거리 정치’야말로 바로 그 사례의 상징적 표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1960년 4·19혁명에서 1987년 6·10항쟁에 이르는, 정당정치의 한계를 거리에서 극복해온 시간은 숱한 고난 끝에 쟁취한 한국 민주주의의 도도한 승리의 순간이다.

진보든 보수든 지식인이라면 그 점은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4·19혁명에서 6·10항쟁까지를 5막으로 이루어진 한편의 극적인 드라마에 빗댄다면 어떨까. 극적 위기와 절정, 해결 과정이 펼쳐지는 4·5막이 아직은 채 펼쳐지지 않은 시간대가 아닐까. 표현을 달리하면 그 위기와 해결의 드라마가 87년 6·10 항쟁 이후 목하 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 5월 2일에 여중고생들이 주도하면서 촉발된―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촛불시위에 참여하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한 386세대 시민으로서 이제는 더 이상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일말의 안도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6·10항쟁의 열매에서 나오는 그런 안도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야말로 발랄한 민중적 축제와 전투적인 항쟁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하는 촛불집회가 정당정치와 제휴하면서 어떻게 하면 4·19 이후 축적된 민중의 정치적 역량을 모아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고민과 성찰은 중도의 지혜를 새롭게 모색하지 않고서는 깊어질 수 없다.

 

어쩌면 축제와 항쟁을 결합한 작금의 촛불시위가 바로 그 중도의 구현인지도 모르지만 지식인이라면 국민의 건강권에 해당하는 ‘쇠고기 문제’가 불과 석 달을 넘겼을 뿐인 이명박 정권의 어떤 속성을 전형적으로 폭로했음을 직시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 다시 말해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은 사교육을 부추기는 교육정책을 비롯해 한반도대운하사업이나 공공부문의 민영화 등이 안고 있는 온갖 문제의 연속선상에 있는바, 촛불시위는 그 각각의 의제들을 하나로 묶어 진화하지 않고서는 6·10항쟁을 참답게 계승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진화가 슬기롭게 이루어질 때 촛불시위는 평범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벌이는 ‘한 여름밤의 난장’인 동시에 이명박 정권이 시민의 公僕임을 단호하게 일깨우는 항쟁의 성격을 모두 갖게 될 것이다. 또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드는 촛불 하나하나도 시민에 의한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재교육’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앞당기는 서광임도 좀 더 분명히 실감할 수 있으리라 본다.

유희석 / 전남대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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