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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에 관한 철학의 결핍
삶의 질에 관한 철학의 결핍
  • 교수신문
  • 승인 2008.06.0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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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어디로 가나

새 정부가 표방하는 교육 정책의 기조와 윤곽은 지난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을 필두로 지난 4월 15일 교육과학기술부에 의해 제시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통해 일단 드러난 셈이다. 이 조치를 통해 단위 학교와 지방 정부는 자율권을 부여받게 되며, 이에 상응해 자율화 방침을 저해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각종 규제는 철폐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하나는 교육과정 운영이나 교수학습 방법 등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지시 감독의 근거가 됐던 ‘포괄적 장학지도권’(초중등교육법 제 7조)의 폐지다. 이에 따라 학교는 앞으로 자율권을 강화시켜 학사를 스스로 결정·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정부는 국민들에게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선사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곁들이고, 끝으로 대학입시자율화 조치까지 이야기하면 대충 전체 그림이 나온다.

정부 구상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 구상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게 무언지, 질 높은 교육의 그 ‘질’ 이라는 게 무언지 그 정체가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실상 그 정체는 최근 세간에서 심각한 문제들로 지적되고 있는 0교시 수업 부활, 우열반, 심야 보충수업, 일제고사, 방과 후 학원 강사의 학교 내 영업, 사설기관 시행 모의고사 참여 보장 등의 사안으로 간단히 드러낼 수 있다. 초중등학교 수준에서의 그러한 다양성이나 질이란, 경쟁구도를 한층 심화시킬 것이 분명한 새로운 대학 입시 제도를 전제하는 한, 한낱 입시경쟁을 위한 획일화된 목표를 위한 부질없는 도구에 불과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오류다. 하나는 교육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 문제인데, 이런 식으로는 불가하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획일화는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대 형태로 회귀한 꼴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선진국 교육의 정수는 고등교육 단계에서 진정한 공부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점에 있는데,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초중등교육 단계에서 힘을 소진시켜 버리고 그것도 점수 경쟁에만 전전긍긍하게끔 하며, 정작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고등교육 단계에서는 저열한 상태로 전락시켜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에는 그 어디에도 아이와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차원에서 교육의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면 이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향유해야 할 자유에 대해서도 마땅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양성과 질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자유에 초점을 맞출 때에만 오직 정당화될 수 있다. 혹 이렇게 반문할 이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이 험하게 돌아가니까 국가경쟁력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국가 경쟁력은 이렇게 자신들의 삶을 자유롭게 향유하는 젊은이들의 힘에서 나온다는 점에 대해서 분명히 짚어두고 싶다.

이와 같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우리 교육이 다양성을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이다. 즉 예전에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 인한 학교교육의 획일화 현상이 있었고 이를 문제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 정부의 시도를 지지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그러한 시도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국가가 견지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 즉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문제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는데 새 정부의 기조는 이를 현저히  훼손하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해법은 없을까. 한 가지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단위 학교에 대해서 학교 운영상의 투명성, 입시교육이 아니라 학생의 인간성과 자유 그리고 재능을 다양하게 촉진할 수 있는 철학적, 제도적 준비도 등을 검토하고 이를 전제로 실험적으로 일정 부분 교육과정과 수업에 대한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때 학교장의 자유 뿐 아니라 그러한 교육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교사의 자유 역시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일정한 실험기간이 끝나면 이를 차츰 확대하는 것이다. 아울러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 관한 현 정부의 구상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에 앞서 먼저 현재 입시명문고로 변질된 특목고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전제 없는 어떠한 조치나 구상도 상황을 악화시킬 것은 자명하다. 아울러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이 대학입시제도에 결정적으로 좌우되고 있음에 비추어 현재의 대학입시자율화 형태가 아니라 대학평준화 내지 평생교육의 활성화를 통한 대학입시구조 경쟁구도의 완화 등의 문제를 놓고 처음부터 논의를 다시 시작해 보는 것

이다.

해법은 없을까


모든 새로운 정책에는 적절한 이행기, 즉 이전의 제도가 지닌 작용력의 완만한 하강과 새로운 제도의 상승 사이를 건너가기 위한 부드러운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현 정부가 보여 준 행태에 이런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음은 매우 유감스럽다. 적절한 의사수렴과정이나 공적 토의 과정은 편의주의적으로 조작됐거나 결여됐다. 내용은 물론 그 절차 또한 충격적이고 부실하다.

필자는 독일 튀빙엔대에서 '에두아르트 쉬프랑어 교육학에서의 깨우침의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유럽의 아름다운 학교와 교육개혁운동' '대학입시와 교육제도의 스펙트럼' 등이 있고, 논문으로 '한국에서 대안교육의 전개과정, 성격과 주요 문제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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