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8:55 (금)
‘자율화정책’ 실체 아리송 … “비전부터 제시해라”
‘자율화정책’ 실체 아리송 … “비전부터 제시해라”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8.06.09 14: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중간 점검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백일이 지났지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 자율화 정책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하다.

현재까지 대학 입시 자율화, 국립대 법인화,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사업 등이 산발적으로 나열됐을 뿐 전체 대학교육의 밑그림은 아직까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학자율화 정책 가운데 구체적으로 제시된 정책은 대학 입시 3단계 자율화 정도다. 모집단위 자율화나 국립대 재정·회계법, 국립대 법인화는 지난 정부에서도 추진해 왔던 것으로 이명박 정부가 새롭게 추진한 정책은 대학 입시 3단계 자율화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대학 현장에서는 대학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장석권 한양대 기획처장(경영학)은 “대학을 자율화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자율화의 전체상이 어떤 것인지 정부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큰 기조로 삼고 있는 자율화 정책이 어떤 진단에서 나온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는 자율화 정책의 실체 논란으로 이어진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교육학)는 “자율화 정책에 알맹이가 없다”고 일축한다. 김 교수는 “대학 입시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자율화란 이름으로 교육을 왜곡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하면서 “국립대 민영화는 자율화가 아닌데 추상적인 생각을 공론화 과정도 없이 단순히 밀어 붙이고만 있다”고 꼬집었다.

이대로 정부 정책이 추진됐을 경우 진단 없이 나온 ‘처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도 문제다. 신뢰성 없는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은 역대 정부에서 되풀이한 과오를 살펴보지 않아도 예견할 수 있다. 그래서 개별 대학 처지에 따라 요구는 다양하지만 대학자율화 정책 청사진을 내놓기 전에 정확한 문제점 진단과 해결 방안에 대한 합의가 우선해야 한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학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대학 현장의 의견을 듣고 살펴보라는 것이다. 


정윤식 부산대 기획협력처장(통계학)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대학의 현실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란 양대 축을 균형있게 고려한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면서 “국·사립대학의 특성과 고등교육 현안을 잘 알고 있는 인사나 교수들이 참여하는 것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정화 홍익대 교수(교육학)도 “교과부에서 대학 현장을 적극적으로 청취해야 한다”면서 “간담회나 공청회 등을 마련해서 큰 방향에 따른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짜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제출돼 있는 자율화 정책에 대해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각 대학의 처지를 반영하지 않고 동일한 기준으로 자율권을 돌려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자율화 정책이 대학 학사·조직 운영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는 “대학 자율화 역량을 전체적으로 보지 말고 대학에 따라 달리 봐야 한다”면서 “대학 설립유형과 소재, 규모 등에 상관없이 모든 대학들이 동일하다고 가정한 채 자율화 방향을 논하기보다는 대학마다 자율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고 이 평가에 근거해 능력 수준에 따라 자율화 범위를 달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갑룡 전주대 기획처장(경영학)도 “수도권과 지방대 사정이 다른데 같은 잣대로 자율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지방 사립대는 갈수록 신입생 충원율이 어려워지는데 정원을 늘릴 수 있는 권한을 준다 한들 무슨 실효성이 있겠냐”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가 “비전이 있다면, 청사진이 있다면, 투명하게 내놓아봐라. 그렇지 않으면, 자율화 정책 같은 훌륭한 아젠다도 의혹을 사게 마련”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자율화에 입각한 교육 비전을 가감없이 내놓고, 교육 전문가, 교수들과 지혜를 강구할 때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