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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것들
불꽃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것들
  • 교수신문
  • 승인 2008.06.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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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쟁점]촛불시위의 동학

2002년, 나는 일본에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때 효순·미선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대중의 출현을 상징하는 촛불이 곳곳에서 타올랐다. 두 학생의 죽음은 앙마로 대표되는 네티즌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됐으며, 그간 침묵하던 대중들을 거리로 모여들게 했다. 특히 대선시기 노무현이란 정치적 코드와 중첩되면서 촛불 시위는 대중과 사회운동이 결합할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촛불은 새로운 것만으로 차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새롭게 보이지만 낡은 운동이 착종된, 다시 말해서 네티즌과 사회운동의 ‘깃발’을 둘러싼 당시 갈등에서 보이듯이, ‘정치적 순수성’에 대한 네티즌의 과도한 집착과 대중들을 다시 사회운동 밑에서 지도하려는 사회운동의 관성은 촛불이 가진 낡은 면이었다.


다른 한편 그들의 상징과 민족의식 속에 파시즘의 징후가 보였다. 촛불 속에서 내가 읽었던 것은 대중의 역동성이기도 했지만, ‘왜 우리가 미국에 꿀리고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자존심을 찾아야 한다’는 민족주의였고, 그 안에는 한미관계 혹은 세계체제 내 종속이란 문제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도 강한 자가 돼야 한다’는 위험스러운 사고가 은연  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08년과 2002년 촛불 : 비슷한 점과 다른 점

그리고 5년 반 정도가 지났고 ‘촛불’이 크게 밝혀지고 있다. 이번에도 중고생들이 중심이 돼 당시와 표면적으로 비슷한 모습의 촛불이 거리를 수놓고 있다. 이번에 촛불이 크게 밝혀진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시민의 급식, 건강, 삶의 안전이 근본적으로 위협받았으며, 특히 다수 중고생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촛불을 밝힌 것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거부, 구체적으로 무한경쟁, 적자생존 등으로 자신들을 몰아가는 ‘0교시’ 등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2002년과 마찬가지로 촛불 시위는 인터넷과 휴대폰 등 매체를 통해 이루어졌다. 바로 ‘한손에는 촛불, 다른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통해 전개되고 있다. 요즘 우수개 소리로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우더니, 이명박은 초중고생과 싸운다’는 말이 떠도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2008년 촛불을 든 주체는 누구인가. 2002년의 경우, 네티즌들의 제안으로 출발해서 효순과 미선 또래 학생들의 미군과 폭력에 대한 공분으로 확산됐다. 이번에도 초기 주체는 이른바 ‘2.0세대’로 불리는 2002년 촛불을 들었던 세대의 후배들인 10대들이다. 이들은 현재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20대의 무관심이 MB를 당선시켰다며 “경제를 살리지 말고 목숨을 살려 달라”,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려거든 차라리 대운하를 파라”며 촛불을 주도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40대를 넘거나 목전에 둔 세대들은 개념적 사유에 기초한 ‘문자세대’인데 비해, 촛불을 밝히고 있는 세대들은 감수성과 공감각적인 사유를 중심으로 구성된 개인이나 집단이다. 80년대 세대들은 거리에서 억압적 국가기구와 거리정치를 통해 시민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현재 10대들은 불합리한 학교 규정의 변화를 위한 단식이나 1인 시위 등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을 통해 해결하려하며, 촛불 속에서 서로 줄을 서며 현실 불만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하며, 경찰청 사이트에 몰려가서 ‘나도 잡아가세요!’라고 말하는 촛불을 든 아이들의 당당함은 이전 세대와 다른 자기표현 방식의 차이이다.

숨겨진 고통의 승화, 아이들의 축제

2002년 월드컵과 연이은 촛불시위를 이끈 대중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였다면, 현재 촛불을 이끄는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직접적인 이해관계라는 평가가 있다. 학교 급식, 패스트푸드에 길든 먹거리 문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 세대에게 미국 쇠고기의 수입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미친 소 닷컴’이나 ‘미친 소 너나 드세요’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2002년과 구분되는 분명한 차이이다.

또한 2002년 촛불시위에서 네티즌이 ‘운동권의 깃발’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난 바와 같이, 유사한 모습을 부분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다만 2008년과 2002년과 차이는 이제 사회운동과 조직된 운동의 영향력이 2002년보다 더욱 약해졌고, 역으로 촛불의 독자성이 한층 강화된 것이다. 사회운동의 무능력함은 사후적으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번 촛불에서 아이들은 촛불을 자신들의 숨겨진 고통을 승화시키는 ‘축제’로 즐기고 있으며, 가수, 연예인 등의 쇠고기 수입 관련 발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나름대로 ‘자신들의 대변인’을 통해 이를 투사하고 있다.

며칠 전 나는 과연 촛불이 20대나 30대층에까지 확대될 것인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촛불시위의 주도층은 10대에서 20대와 30대층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으며, 심지어 관련 공무원조차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형편이다.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20~30대 가운데 상당수는 경제성장과 고용안정, 뉴타운 개발 이익 등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보수정치세력에 표를 한껏 밀어주었다. 이른바 ‘민간정부 10년의 실망’이 이런 현상을 낳았던 것이다. 하지만 정권 출범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드러난 정부 인사의 땅투기 및 부정부패 의혹, 경쟁과 자율이라는 이름 하에 그나마 존재했던 사회적 안전망이 폐기되는 현실은 대중들로 하여금 ‘배신감’을 공유하게 했을 것이다. 이는 초기 촛불시위에서 외쳐졌던 쇠고기 수입 반대 등의 외침에서, 점차 대운하, 교육문제, 구조조정 등 광범위한 이슈로 구호가 변화해가는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독재 이명박’이란 구호다. 물론 여기서 독재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이 87년 외쳐졌던 ‘독재타도’와는 다른 것이다. 공권력이 200여명의 시위 참가자를 연행했지만, 이것 자체가 분노의 근원적 소재의 모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시민들이 분노했던 것은 ‘소통의 거부’라는 정권의 행태였을 것이다. 이미 몇 주가 넘게 10대들과 시위 참여자들 그리고 다수 대중들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재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보수언론은 연달아 ‘배후 조정설’, ‘386 배후설’ 등을 유포했으며, 정권은 시민사회와 소통의 통로는 닿아둔 채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다시 말해서 정권은 시민사회와 소통의 통로를 잠가둔 채, 국익만을 외쳐댔다. 정권은 스스로 ‘정치하기를 포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믿던 지지자들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잠재적인 정권과 한나라당 지지층은 ‘커다란 요동’을 치며 촛불 주위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낮에도 촛불을 밝히자!
며칠 전 지하철에서 『88만원 세대』를 읽는 한 대학생을 우연히 보았다. 그 친구를 바라보면서, “저 아이도 2002년에 촛불을 들었겠지...”란 혼잣말을 되뇌었다.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은 20대, 노무현과 민간정부의 무능에 실망했던 30대와 40대가 서서히 촛불 주위에서 서성이고 있다. 부자 정권, 쇠고기 수입, 먹거리 위험, 검역 주권, 정치의 포기, 밀어붙이기 식 대운하 등 그간 쌓였던 대중들의 분노는 6월에 정점에 달할 것이다.

6·4 재보선, 6·10 항쟁 21주년, 효순·미선 사건 6주기 등을 통해 대중들은 거리와 투표소에서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힐 것이다. 여야 제도권 정치가 정치를 포기하고 있는 요즈음, 대중들이 만들어 가는 정치는 이제 막 시작됐다. 이제 어두운 밤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 낮에 촛불을 밝히자!

김 원/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필자는 서강대에서 ‘여공담론의 남성주의 비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 『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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