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1:35 (일)
원로가 된 젊은 제자들, 삶의 북극성을 사모하다
원로가 된 젊은 제자들, 삶의 북극성을 사모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5.19 13: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제의 책_ 『스승』 김태준·소재영 엮음 | 논형 | 428쪽

머리와 마음이 함께하는 참다운 사제동행을 일깨워주는 책이 나왔다. 김태준 동국대 명예교수와 소재영 숭실대 명예교수가 엮은 『스승』이 그것이다. 식민지와 6·25전쟁의 격변기를 살아낸 27인의 스승을 마지막 직계 제자들이 기억했다. 제자들마저 이제는 모두 ‘학계의 원로’스승이 된지라, 이들의 기억은 존경의 기록인 동시에 자성의 기록이기도 하다. 제자 27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잃어버린 참 스승의 의미가 오롯하게 그려진다.

이들의 사무치는 思師曲에 등장하는 스승들은 석전 박한영, 한힘샘 주시경, 만해 한용운, 단재 신채호, 가람 이병기, 담원 정인보, 외솔 최현배, 일석 이희승, 건재 정인승, 김교신, 함석헌, 무애 양주동, 도남 조윤제, 일사 방종현, 무돌 김선기, 석주선, 장암 지헌영, 일오 구자균, 청계 김사엽, 청명 임창순, 황순원, 연민 이가원, 조지훈, 나손 김동욱, 안병무, 백영 정병욱, 정판룡 선생이다. 이들의 삶에 대한 굽힘 없는 자세야말로 이 시대 스승들이 되새기고자 하는 ‘스승’의 모습이었다.

김석득 연세대 명예교수는 1953년 나라 안팎 문화계를 뒤흔들었던 한글파동이 있었을 때, 문교부 편수국장 자리를 내놓고 대학으로, 국회로까지 가서 비판 강연을 하던 외솔 최현배 선생의 모습을 기억했다. “옳다고 판단한 일에 대해서는 치밀한 이론으로 상대를 설복해마지 않았으며, 다수결 원리까지도 거부하는 기개를 보인” 스승의 모습을 그려낸다. 아버지이자 엄한 스승이었던 모습도 있다. 정양완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건방의 제자였던 담원 정인보 선생의 장년 모습을 그려냈다.
역사와 지성을 일깨운 스승의 목소리도 들린다. 일제 시기 “아무리 식민지배 아래 고통당하는 조선 민족이 동족이라고 해도, 지난 조선 역사를 과장해서 가르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진실을 말함으로써 그들을 절망시킬 수도 없었다”던 함석헌 선생의 고뇌를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닮고자 했다.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이 마음에 담고 있는 스승은 ‘엄숙한 지성의 분노’를 보여준 조지훈 선생이다.

대쪽 같은 선비의 기개도 닮아야할 모습이었다.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사코 만원버스를 이용하신다고 택시 앞의 제자들을 민망하게 했던” 일석 이희승 선생을,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는 “산중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하여 향기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던 가람 이병기 선생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담았다. 또 도남 조윤제 선생을 사사했던 김시업 성균관대 교수는 “사람이 근본이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참 스승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책의 말미 김병민 옌벤대 총장의 글에 이르면, 어렴풋한 스승의 의미를 더욱 확연하게 느끼게 된다. 결장암 투병 중에도 제자의 박사학위 논문 심사에 참석하지 못해 가슴 아파하시고, 수술 직후 전화로 논문에 대한 의견을 전하시는 정판룡 선생에 감동하지 않을 제자가 있을까.
앎이 곧 삶이었고, 삶이 곧 앎이었던 참스승. 이들을 기억하는 오늘의 스승들이 전하는 울림이 깊게 다가온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