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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도 둘째도 학생중심 … 인격발달도 챙겨
첫째도 둘째도 학생중심 … 인격발달도 챙겨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8.04.07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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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로 소문난 미국 교수들의 교수법 비결

명강의로 알려진 교수들의 강의는 무엇이 다를까. 『미국 최고의 교수들은 어떻게 가르칠까』(켄 베인, 뜨인돌, 2004)는 교수법을 고민하는 교수라면 한번 참고할 만한 최고 교수들의 강의 사례와 교수법을 소개한다. 이들 교수들의 배움에 대한 철학과 강의 준비, 수업방식, 강의 평가는 무엇이 다른지 살펴봤다. EBS는 지난달 24일부터 닷새 동안 이 책을 바탕으로 ‘다큐프라임-최고의 교수 노하우 노와이’를 제작·방송하기도 했다.

최고의 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를 나누는 기준은 뭘까. 이 책의 저자인 켄 베인 뉴욕대 ‘최고의 교수법 연구소’ 소장은 최고의 교수를 선정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해당 교수의 교수법에 만족했는지, 계속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를 물었고 관련 분야 교수들에게는 교수의 학습 목표를 유용하다고 여기는지를 물었다. 학습성과를 새롭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정의한 교수들도 포함했다. 최고 교수를 선정하기 위해 강의 계획서, 시험지, 과제일람표, 강의 노트, 학생 리포트 등이 이용됐다.

이 과정을 통해 최고의 교수라는 명예를 갖게 된 교수는 60여명. 학문분야와 수업 방식은 다르지만 학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이들 교수들의 공통점이었다. 학생 중심 교육은 수업 진행 뿐만 아니라 수업 준비, 평가까지 지배하는 원칙이다.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여성사를 가르치는 낸시 맥린 교수는 학생들 제안을 받아 들여 강의 계획서를 수정한 경험이 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연애의 법칙』이라는 책을 언급하자, 그는 책을 구해서 읽은 뒤 이 책으로 리포트를 써도 된다고 자신의 강의계획서를 변경했다. 조건으로 △교과내용에서 최대한 많은 부분을 참고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한 내용 포함 △역사적 배경을 대입한 논리적인 설명 등을 내걸었다. 학생들이 무엇이 왜 중요한지 이유를 모르고서는 과목에 대한 관심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75세 노교수인 도널드 골드스타인 피츠버그대 교수는 학생들이 즐겨보는 엠티브이 리얼 프로그램을 챙겨본다.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그는 “학생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는 교육 철학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철학을 반영해 그의 연구실은 모든 학생들에게 열려있다. 지도 학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논문 자문을 구하거나 연구자료를 얻기 위해 그의 연구실을 방문한다. 이런 그를 학생들은 ‘골디’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그는 “많은 교수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은 수업을 즐기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학생들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질문 통해 비판적 학습 유도
198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더들리 허쉬바흐 하버드대 교수(화학과)도 학생 중심 교육을 강조한다. “학생들이 수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먼저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입생 수업에 더 많은 노력과 준비가 필요한데 학생들의 관심사가 다르고 출발점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들 교수들의 강의 방식은 다양하지만 비판적인 학습 환경과 학생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은 일치하는 부분이다. 비판적인 학습은 주로 관심을 자극하는 질문이나 흥미로운 질문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로버트 솔로몬 텍사스 대학 교수(철학과)는 인식론 개론 수업 첫마디에 “이 중에 무엇이든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진다.

도널드 사리 교수는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를 수업에 들고 와, 학생들에게 그 부피를 구하려면 미분으로 어떻게 계산할지 문제를 제시한다. 그는 학생들이 풀이 과정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문제 본질을 파악해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하도록 묻는다.
허쉬바흐 하버드대 교수는 전공 개념인 중합체(폴리머)에 대한 강의를 ‘나일론의 발명이 2차대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시작한다.

이들 교수들의 수업 진행 방식은 대체로 ‘질문 하기→질문의 이해 돕기→질문에 비판적 접근 돕기→질문에 대한 추론과 결론을 이끌어내기’ 순으로 이뤄진다.
폴 하인리히 시드니대학 교수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무엇인지 연구하면서 ‘차가운 언어’와 ‘따뜻한 언어’개념을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차가운 언어’보다 ‘따뜻한 언어’가 학생들의 관심을 모은다.

차가운 언어는 다음과 같이 ‘초연하고 덜 감정적이며 덜 기술적인 언어’다. “한 소녀와 곰 세 마리가 있는데 소녀가 곰돌이 사는 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먹어보고 만져보다가 집에 돌아온 곰들한테 들켰다” 같은 내용이지만 따뜻한 언어는 이야기 전체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옛날 옛적에 곰 세 마리와 골디락스라는 이름의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 ‘따뜻한 언어’는 서서히 결론까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로 학생들이 강의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자넷 노던 미국 벤더빌트 의대 교수는 학생의 지적 발달 못지않게 인격발달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은 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던 교수는 신경해부학 전공 수업 내용 일부에 인격발달 과정을 포함시켰다. 학생들과 인생의 슬픔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재해 카운슬링’의 개념과 실전에 대해 설명했다. 또 수업 시간에 환자 유족들을 초대해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수업 내용을 일부 생략했지만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고 임상실습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시험은 평가 아닌 배움의 도구”
명교수들은 학생들을 학점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또 학습의 목표가 좋은 학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험 결과보다는 학생들의 발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의 학생 평가서에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적혀있다. 학생들은 이를 미리 알고 시작하기 때문에 시험 성적을 받았을 때 교수가 개별적으로 배려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조 교수는 “학생을 채점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학생을 평가함과 동시에 수업자체를 평가한다”면서 “단순히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매달렸던 학생들이 학기말 무렵에는 점수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고 전한다.

골드스타인 교수는 특이하게 미리 시험 문제를 공개한다. 35문제를 제시하고 학생들은 이 가운데 4문제를 선택해서 시험을 치른다. 시험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학생 스스로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될 때 시험을 볼 수 있다. 그는 “학생들이 A학점을 받지 못해도 열심히 배우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면서 “시험은 평가가 아닌 배움과 가르침의 도구”라고 말한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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