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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 연구지원기관으로 가는 길
독립적 연구지원기관으로 가는 길
  • 천명기 / 숭실대·물리학
  • 승인 2008.04.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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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입장에서 본 한국학술진흥재단-한국과학재단 통합방향

신정부 정부조직개편으로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통합이후,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과 한국과학재단(과학재단)통합 방침이 지난 3월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확인됐다. 하지만, 통합의 구체적 방안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정부는 ‘업무보고자료’에서 과학기술강국 건설을 위해 과학기술 국가전략 수립, 대학/연구기관 핵심역량강화 및 연구지원하부구조 강화라는 3대 정책을 제시했다. 이 중 연구지원하부구조 강화 정책 내 ‘연구비배분체계 개선’ 항목에서 두 재단 통합 방침이 언급됐을 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과학재단(NSF) 형태의 통합재단 모델” 및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에 의한 평가시스템”을 제안하고 “R&D 재원의 분배기능에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과기위)의 역할 강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NSF의 특징은 그 사업 성격에 있다. 우리나라처럼 일반사업 내 분야별 지원이 아니고, 과학기술 분야별 지원 사업형태다. 학문분야별 개별 특성을 유지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OSTP(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이다. OSTP는 미국 과학기술 R&D정책의 핵심기관으로 우리나라 과기위에 상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기위는 과거 참여정부 때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상위기관이지만, 주로 혁신본부의 자문기관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었다. 새 정부는 과기위에 실질적인 R&D예산 조정기능을 부여했다. 결국 두 기관의 내재적 통합 원칙은, 일반적 연구지원사업은 현재 사업을 통합, 주요 국책사업은 분야별 위주 사업으로 정리, 과기위가 예산의 주요 배분권을 유지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5개 주요기술 분류로 된 과기위 ‘운영위원회’ 산하 5개 ‘전문위원회’ 성격을 보면, 예산배분 원칙은 주로 기술위주의 분류를 중심으로 배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통합 당사자인 두 재단은 연구지원 단순집행기관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역할 강화의 기회로 판단,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현재 양 재단은 정부지원금이 출연금 형식으로 지원되지만 실제적으로는 관련부처의 간접지원 방식으로 지원되고 있다. 결국 책임권한은 정부부처에 귀속 될 수밖에 없어 양 재단은 연구지원의 단순 집행기관에 머물고 있다. 양 재단은 통합 이후 그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데 우려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문·사회 등 특성 존중해야


재단통합 관련자들의 이해를 바탕으로 통합과정에서 반드시 고려돼야할 사항을 연구자의 입장에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결국 두 재단 통합은 연구지원의 기능적 통합이 그 요체이므로, 연구자들의 관심은 연구지원사업의 변화 추이다. 양 재단 지원사업 중 과학재단의 ‘기초과학지원사업’, 학진의 ‘연구지원사업’은 어떤 형식이든 일원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인문사회, 기초과학 및 응용연구 등의 학문(또는 연구분야)별 예산/평가/지원 방식에서 학문별 특성을 존중할 수 있는 시스템의 확보가 전제돼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인문학과 같이 학문 고유 특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의 경우 기존의 지원방식의 합리적 변화를 심도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고려사항은 소규모그룹 연구(일명 풀뿌리 연구)를 포함하는 개인연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중규모 및 대규모 집단연구와의 지원 비율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 접근방식이다.

또한 신정부가 구상중인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나 기타 국책연구와 같은 대규모 사업과의 예산 배분에 관한 분명하고 합리적인 가이드라인 설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존의 R&D 예산 배분비율은 그대로 유지하되 순수하게 증액되는 예산 중 일정비율을 신규사업이나 국책사업에 투자한다는 등의 원칙적 선언이 필요하다. 제로섬게임에 본의 아니게 길들여져 왔던 우리나라 연구자들에게 좀 더 확실한 메시지로 작용되리라 본다.

두 번째는, 두 재단 고유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학진의 BK21이나 NURI사업 등 인력양성사업 및 과학재단의 ‘특정연구개발사업’ 등의 ‘기금사업’문제다. 사실, R&D정책과 인력양성정책은 개념적으로는 분리 가능해도 연구 현장에서는 분리가 거의 불가능하다. 참여정부의 경우 그 분리(과기혁신본부 및 인적자원혁신본부)를 시도했지만 그 성과를 검증하기 전에 이제 두 부처가 통합됐다. 따라서 차후 합리적인 통합개념에 의한 지원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과학재단의 ‘특정연구개발사업’은 주 수혜자가 정부출연구소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대학 연구자들이 위탁의 형태로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연구소를 둘러싼 제도적인 환경변화(PBS, 연구소 인력흐름의 정체성, 연구소 위상의 잦은 변화 등)에 민감한 연구소가 자체 현안을 정리하면서 복합적으로 접근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통합 후 정부부처와 연구지원기관과의 위상 설정문제다. 현재와 같은 연구지원을 위한 단순집행기관 기능만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정책 및 기획기능을 보강해 미국 NSF와 같이 정부부처로부터 독립적이며 명실상부한 연구지원기관으로 갈 것인가 하는 분명한 비전 및 실천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문제는 정부가 현재 구상 중인 과학기술위원회 구성 및 그 역할과도 관련된다. 이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점은 NSF를 둘러싼 환경과 우리나라 환경의 차이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접근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R&D 기획·조정 중장기 안목 필요해


네 번째로, R&D 예산 배분과 연구지원의 평가 문제다. 현재 신정부 구상으로는 국가 R&D 예산 배분권이 기획재정부로 이관돼 있는 상황이다. 물론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과기위의 기능에 자체 평가기능을 강화시켜 과거의 조사·분석·평가 기능을 대폭 축소시키는 시도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평가 기능을 유지해 예산 배분의 합리적 근거자료로 활용하고, 더 나아가 민간 R&D 및 정부 R&D를 포함한 국가 전체 R&D의 기획 및 조정기능에 대해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하는 시야를 가질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과학기술기획평가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및 과학기술정보연구원 등 관련기관과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일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신정부는 국가 경제를 위해 기술개발이야말로 가장 크고 직접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기초과학의 진정한 토대가 없는 기술개발은 이미 그 한계에 도달해있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이 함께 가는 공생의 길로 현 상황을 지혜롭게 돌파할 수 있는 R&D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과거 과기부와 교육부에서 각각 적용해왔던 연구지원 사업의 분류체계인 학문 및 과학기술분류체계, 더 나아가 지식경제부의 산업분류체계까지 시야에 넣을 수 있는 포괄적 연구분류체계로 양 기관 통합을 좀 더 밀도 있게 접근해야 보다 효율적인 R&D 지원 정책이 수립되리라 본다.
 

 


 

천명기 / 숭실대·물리학

필자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학술진흥재단 전문위원으로 학술정책을 담당, 2004년 과학재단과 학진 간 사업조정에 참여한 바 있다. 주로 물질의 기원을 연구하는 천체핵물리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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