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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파는 볼 수 있었지만 좌파는 볼 수 없었던 현실
신우파는 볼 수 있었지만 좌파는 볼 수 없었던 현실
  • 김용규 / 부산대·영문학
  • 승인 2008.03.3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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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리즘의 문화정치』 스튜어트 홀 지음 | 임영호 옮김 | 한나래 | 2007 | 2만8천원

테리 이글턴은 영국의 지적 좌파에 관한 한 편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그 지적 좌파의 다양한 경향과 국면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한 명의 모범적인 인물을 찾고자 한다면, 스튜어트 홀이 바로 그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홀은 지난 40년 이상 동안 영국의 지적 좌파의 역사를 거의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미 1950년대 말 영국의 신좌파가 출범할 때부터 신좌파 진영에 적극 가담했고, 70년대와 80년대 버밍엄 현대문화연구소와 개방 대학에서 제자들과 영국 문화연구의 형성과 실천을 주도했고, 80년대 대처리즘과 신시대 논쟁에 주도적으로 개입했으며, 최근에는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주의를 비판하는 등 영국의 지적 논쟁의 한가운데 항상 서 있었다. 그런 점에서 홀의 이론적, 실천적 궤적을 좇아가는 것은 전후 영국의 급진적 문화 전통의 지도를 그리는 것과 다름없다.

홀의 이론적, 실천적 작업과 관련해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점은 홀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수미일관하게 쓴 개인 저작이나 학술 논문을 거의 남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온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이주자라는 사실이다. 전자의 의미부터 살펴보면, 홀이 개인 저작이나 학술 논문을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글의 성격이나 작업스타일을 반영한다. 우선 그의 글은 대부분 영국의 급변하는 문화정치적 정세를 정면으로 다룬 실천적 개입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의 글에서 현실과 거리를 둔 느긋한 이론적 사색이나 현학적인 추상적 이론에 대한 탐닉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그의 글들은 대부분 개인적 창작보다는 버밍엄 현대문화연구소와 개방대학의 연구원들이나 제자들과 집단으로 창작하고 집필한 공동 성과물들이다. 공동 작업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고 개인적 글쓰기만을 독창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서양적 글쓰기 전통을 감안할 때, 홀의 작업 방식은 그가 영국 문화연구의 형성에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그리고 영국의 문화정치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처리즘의 문화정치』는 홀의 이런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다. 우선 이 책은 홀이 자기 혼자만의 이름을 내걸고 출간한 이례적인 책이긴 하지만, 각주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 역시 상당부분 공동창작의 산물이다. 사실 홀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 이름들의 집합명사인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대처리즘이라는 국면적 현실에 뛰어든 실천적 개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대처리즘이라는 초유의 현상과 직면해 그것을 정치하고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처리즘의 문화정치』는 홀의 본 모습을 보여주기에 매우 적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대처리즘의 문화정치』는 홀이 주로 1978년에서 1988년 사이에 당대 영국의 문화정치적 상황과 그 의미에 관해 쓴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우선 이 책의 내용은 1979년 대처 정부의 등장으로 나타난 대처리즘이라는 독특한 문화정치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정치문화적 현상을 토대 변화의 결과나 반영으로만 사고하던 좌파 지식인들에게 대처 정부가 국민을 동원하는 헤게모니적 방식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우선 대처 정부는 전후 영국의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인 복지국가 시스템을 해체하고 영국 사회를 시장과 경쟁의 논리 속으로 몰아넣고자 했다. 사실 대처 정부가 표방한 ‘작은 정부’란 기존 국가체제에 대항하는 매우 강력한 국가의 등장을 의미했다. 그것은 노동과 자본의 대타협으로 등장한 전후 합의를 파기함으로써 국가와 사회복지를 담당한 공공기관을 감축하거나 민영화하고, 나아가서 경쟁에서 낙오된 국민들, 즉 실직 노동자들, 소수인종, 그리고 여성들을 더 이상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매우 공세적인 정책을 추구했다.

대처 정부의 정책들은 영국 사회의 거의 전 부문에 큰 여파를 미치게 되는데, 홀은 이런 여파의 문화정치적 의미를 통칭해서 ‘대처리즘’이라 부른다. 홀이 설명하는 대처리즘의 대략적 면모는 이렇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대처리즘은 전후 대타협에 의해 이루어진 합의를 깨고 국가가 관리해온 것들을 모두 시장과 경쟁의 원리에 맡기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써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구조조정 작업이었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강력한 신우파의 등장으로 전통적 계급과 정당 간의 역사적 대의 관계가 와해되고 국가와 시민사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국가와 국민 간의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갈등과 적대의 지대들을 생겨나게 했다.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는 자유 시장의 자유주의적 담론과 전통, 가족, 국가, 명예, 가부장주의와 질서 등의 보수주의적 주제들을 모순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담론 접합체를 형성했으며, 문화적 측면에서는 60년대 이후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사회분위기에 대항해 배타적인 영국다움이라는 과거의 유형에 집착하는 퇴행적 근대화를 추구했다.

『대처리즘의 문화정치』에서 홀이 제기하고자 하는 질문은 대처리즘 자체보다 대처리즘이 영국 사회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그것은 영국 국민을 어떻게 동원하고 호명하는가, 전통적 노동당 지지층들은 왜 노동당보다 자본 분파의 이익을 옹호하는 신우파 정권에 투표를 던지게 됐는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홀은 대처리즘이 전통적으로 노동당의 노선을 확고하게 지지했던 대중들의 삶과 의식까지 파고들어 그들의 의식을 신보수주의적 논리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사실에 주목한다. 홀에게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그람시의 용어로 말하자면, 대처주의는 대중의 의식과 상식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자본주의와 지배의 위기를 돌파하고 지배블럭의 헤게모니를 새롭게 구성해간 문화정치의 이데올로기였다. 대처가 집권하고 있던 1979년과 1983년 사이 영국의 국내 총생산은 4.2%, 산업생산량은 10%, 제조업은 17%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141% 증가해 실업자가 3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전통적으로 집권 정권의 무능력으로 간주돼 정권 퇴진으로 이어졌지만, 대처 정부의 대응방식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대처 정부는 이를 빌미 삼아 자신의 적들에 역공을 펼쳤다. 대처 정부는 그 책임을 이전 정부들의 방만한 운영과 국가 및 시민사회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고, 60년대 이후의 확산된 급진적 문화를 내부의 적으로 몰아세우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전개했으며, “대중적 불만 세력들을 결속시키고 사회 내의 다양한 분파를 조성하고 결집할 수 있으며 대중적 경험의 일정한 측면과 연결하는”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대중의 삶과 의식 속으로 파고드는 대처리즘의 전략적 개입, 사회적으로 억압적이고 가부장주의적이며 인종주의적인 신보수주의적 사회 프로젝터의 반동적 성격, 통제적이고 규율적인 국가 권력의 행사가 결합해 형성된 모순적이고 중층결정된 구성체를 홀은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라 부른다.

신우파는 볼 수 있었지만 좌파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홀에 따르면 좌파들은 전통적으로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정치적 현상을 ‘재현’과 ‘결정’의 관계로만 파악할 뿐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독자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의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상대적’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만 관습적으로 되풀이할 뿐 그것이 갖는 자율적 기능에 대해서는 외면했던 것이다.

사실 『대처리즘의 문화정치』는 신우파의 작동 방식에 대한 해부이자 경제주의적 발상에서 탈피하지 못한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이었다. 홀의 비판은 좌파 내부에서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대처 정부를 이데올로기적이고 문화정치적으로 읽고자 한 시도는 토대의 물적 변화를 보지 못하는 지나치게 일방향적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처주의를 두고 홀과 논쟁을 펼쳤던 봅 제솝은 홀의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 영국 사회의 축적구조의 변화를 간과하고 대처주의를 지나치게 획일적인 이데올로기적 통일체로 간주함으로써 그 내부의 모순을 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즉 대처주의를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만 봄으로써 그 이전의 사회복지 국가와의 이데올로기적 단절을 사회경제적 단절로 확대 해석했고 전후부터 진행된 영국 사회 내부의 정치경제적 변화에 대한 분석은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홀이 대처주의의 이데올로기와 문화에 주목하고자 한 자신의 특정한 입장을 사회구성체 전체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논점을 빗나간 것이라고 반박하기는 했지만, 홀의 반박은 서로간의 관점과 영역의 차이를 강조하는 차원에 머문 감이 있다. 나중에 홀은 대처리즘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는 대처리즘이 영국적 현상이 아니라 전지구적 자본과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깊이 있게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자본의 전지구화를 감안하는 ‘신시대’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이 프로젝트는 제솝이 주장하는 축적구조와 정치경제의 변화를 상당부분 수용하면서 그러한 변화를 문화적 방식을 통해 해석하는 홀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에 접어두었던 문제, 홀이 자메이카 출신 이주지식인이라는 사실이 갖는 의미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상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홀의 문화정치와 문화연구가 애초부터 ‘지금-여기’의 당대적 현실을 천착했던 이유는 부분적이지만 이주지식인으로서 영국의 토착 노동운동에 깊이 개입할 수 없었던 홀의 한계에 기인한다. 영국 신좌파들은 대부분 당대의 문화적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이 관심은 신좌파 내부에서도 영국적 전통에 관심을 기울인 E. P. 톰슨이나 레이먼드 윌리엄스와 같은 구세대 신좌파와 다른, 홀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사실 이주지식인으로서의 홀의 주변적 위상은 영국 현실을 이해하는 데 맹목과 통찰로 작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해, 이주지식인으로서 그의 위상은 영국의 전통적 노동운동에 깊이 관여하는 데는 한계로 작용했지만 당대 영국의 문화지형을 객관적이고 실천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유리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영국의 구체적 현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 해당 사회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지 못한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내용들도 들어있지만 역자의 꼼꼼한 번역과 풍부한 역주는 우리로 하여금 영국적 현실을 매우 실감 있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실감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이후 실용 정부가 지배하는 작금의 우리 현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지침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문화계의 잡음이나 영어 광풍 그리고 신우파 교과서의 출간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있을 치열한 이데올로기적 문화투쟁의 서곡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김용규 / 부산대·영문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영문학 비판과 이론의 대두: 1960년대 이후 영국의 사회변화와 문화 이론의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에서 문화로』 등의 저서와 『비평과 객관성』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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