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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지식인의 태도
[딸깍발이]지식인의 태도
  • 전진성/편집기획위원·부산교대
  • 승인 2008.03.1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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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신임 대통령의 취임연설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는 이미 달성했으니 이제는 선진화로 나아가자는 국정과제가 제시됐고, 이는 곧바로 주요언론에 의해 시대의 이정표로 치켜세워졌다.
국민에게 자긍심을 안겨주어야 할 최고 정치지도자로서는 이런 식의 발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식인들마저 똑같은 정치적 수사를 반복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맞고, 안 맞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만약 1980년대에 한국인들 모두가 그때까지의 경제적 도약을 자축하던 군사정권의 팡파레에 덩달아 춤췄다면 과연 어떻게 민주화가 가능했겠는가?
과거의 미흡한 점에 주목할 때, 미래로의 도약이 있다. 소위 ‘뉴라이트’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을 보며
가장 거슬리는 점은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고 우쭐대는 모습인데, 그들은 심지어는 일본 우익을 그대로 흉내 내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자세를 ‘자학사관’이라 폄하하기까지 한다. 이런 식의 주장이 난무하는 한,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칭찬은 남이 해줄 때 가치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반성할 줄 알고, 최소한 겸양의 미덕쯤은 갖춘 자에게 오히려 미래가 있는 법이다. 너무 원론적인 얘기일 수 있겠지만, 지식인이란 한 사회가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끔 자극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물론 지나친 자기비하로 우리 국민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은 좋을 리 없겠지만, 이는 사실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한국인은 쉽게 기죽을 국민도 아니다. 활력이 넘쳐나, 심지어 동남아에까지 원정을 가서 땅 투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로 기가 뻗칠 대로 뻗친 국민이며, 이제는 극도로 부지런한 지도자까지 얻었으니 앞으로 어떠한 방향이든 세차게 몰아쳐갈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즉슨, 지식인들만 기죽지 않으면 되니 남 걱정은 필요 없을 듯싶다.
어차피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장관직 물망이나 주요 신문지상에 지식인들 이름이 오르내린다고 해서 스스로가 힘이 있다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지식인들이 그나마 독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한다면, 어느 정도 시대를 거스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실용의 시대’를 맞이해 지식인들은 ‘실용’ 이전 또는 이후의 가치, 예를 들어 자유와 인권, 평등과 관용 등과 같은 결코 퇴색될 수 없는 보편적 가치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킬 수 있어야할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가치의 구현이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성취에 섣불리 A학점을 주고 ‘실용’만이 미래인양 정치권력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지식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전진성/편집기획위원·부산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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