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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된 국가는 神 을 어떻게 가르칠까
세속화된 국가는 神 을 어떻게 가르칠까
  • 양은미 / 브라질 통신원·상파울로대 박사과정
  • 승인 2007.12.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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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학술동향_ 브라질

세계 가톨릭 성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시의 ‘예수상’. 리우 시 코파카바나 해변 맞은편 해발 710m 높이의 코르코바두 언덕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학교에서 ‘신’에 대해, 혹은 ‘신’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염두에 두고 교육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해묵은 주제인 이 문제는 상파울루 주 의회 PSDB 당 대표인 마리 루치아 아마리(Maria Lcia Amary)의원이 ‘학교에서 신을’(Deus na escola)이라는 법안을 제출한 것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뜨거운 논쟁의 대열에 올랐다. 이와 함께 1890년 헌법에 의한 정·교분리 선언 이후 오랫동안 비판 받아 온 가톨릭교회가 사회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력 또한 전반적으로 다시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올해 5월에 있었던 5일 간의 교황의 브라질 방문과 이 축복 받은 신의 땅에 대한 그의 강한 격려 메시지는 분명 가톨릭 지도부는 물론이고 많은 신자들에게 ‘다시 일어설’ 동기를 제공해 주었다. 물론 이를 축으로 한 다양한 논쟁과 비판들 또한 더욱 빈번하게 신문과 TV를 비롯한 언론뿐 아니라 학계의 석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브라질은 가톨릭 국가?
흔히 신자 수에 있어서 브라질이 세계 최대의 가톨릭 국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가톨릭의 위상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브라질은 멕시코와 함께 바티칸에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브라질의 상황 역시 세계적인 추세와 다르지 않다. 브라질에서 1970년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전체 인구에 대한 가톨릭 신자의 비율은 각각 91.8%에서 73.9%로 약 20%나 줄어들었으며, 공화국 선포(1889년) 직후 교회와 국가의 분리 조항이 헌법에 명시되면서(1890년 1월 7일 법령) 브라질은 공식적으로 세속 국가(laic state)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한 편으로 흔히 말하는 1500년 브라질의 ‘발견’ 이후 긴 포르투갈 식민 역사에 걸쳐, 그리고 그 이후 공화국 직전까지 강력한 가톨릭의 영향을 가지고 살아온 민족의 종교성이 정교분리라는 법령 선포로 한 번에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문화적 가톨릭’ 혹은 타종교가 금지됐던 식민시대부터 몰래 행해져 온 아프리카 토속 신앙과 결합된 ‘신크레티즘적 가톨릭’까지 고려한다면 아직까지도 브라질은 강력한 가톨릭 신앙의 영향권 아래 있는 나라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브라질 사람은 영적인 민족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데, 이들의 언어와 생활에는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많은 어휘와 습관들이 강하고 빈번하게 엿보인다.

가톨릭교회와 세속 지식인 사회 간의 갈등
이러한 배경 때문에 브라질에서는 공식적으로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잃은, 그리고 국민에 대해 영적인 지도자로서도 그 권위를 잃어가는 가톨릭 지도부의 ‘자리 찾기’ 노력이 끊임없이 있어 왔다. 문제는 그 노력이 세속 국가임을 공언하는 브라질의 헌법에 위배돼 이에 대한 많은 비판과 두 목소리 간의 갈등 또한 같이 있어왔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 및 인문·사회과학계의 지식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중 비교적 명확한 논란이 오가는 문제가 공립 초등교육기관에서의 종교(가톨릭) 수업 여부에 관한 것이다. 현재 브라질의 공립 초등교육 과정(연방, 주립, 시립)에서는 종교 수업을 선택과목으로 규정하고 있고 많은 학교들이 강도나 방식은 다르지만 가톨릭적 가치를 가지고 이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여기서 가톨릭 외에도 개신교,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 카데시즘, 칸돔블레나 움반다와 같은 아프리카 기원 신앙, 심지어는 무신론자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다양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지금의 브라질의 현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다양성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가톨릭이 다수란 명목 혹은 착각 하에 기도로 수업을 시작한다거나 미사 참석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거나 하는 것은 아직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은 어린 학생들에게 혼란스럽거나 다소 압박을 느끼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늘고 있다.

시민 온라인 투표 거쳐 결국 법률안 거부
이런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법안 ‘Deus na escola’가 기존의 논쟁을 더 격렬하게 한 것은 이미 예상된 일이다. 아미리 의원이 상파울루 주 의회에 제출한 후 이미 승인을 받은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주지사 호세 세라(Jos Serra)의 인가를 기다리는 동안, 이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TV 뉴스와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원칙적으로는 모든 종교계의 지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어느 종교의 고유성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법안이 작성됐고, 실제 제출된 문서에서도 범종교적인 ‘신’이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아미리는 제출한 문서에서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동기로 ‘날로 사회 폭력과 불평등, 부패가 만연한 브라질 사회를 변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으로 교육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 어떤 구체적인 노력보다도, 근본적으로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신’에 대한 개념을 심어 주고 사랑과 조화, 평화를 중요시하는 인성과 태도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시급하다는 믿음이 문서 전반에 걸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데, 앞서 논한 종교의 자유, 인권침해 외에 또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이것이 각 학교의 커리큘럼에 하나 더 추가되는 선택과목이 될 것인지, 다양한 과목에서 특별한 형태 없이 광범위하게 ‘퍼진’ 방식으로 다뤄질 것인지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Deus’(신)의 개념조차 정의하고 있지 않아 전반적으로 법안 자체가 모호하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가톨릭 신자임을 고려할 때 그 신은 ‘하느님’일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고 있다. 특히 이 마지막 지적에 관해서는, 동기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고 결과적으로 각각 상이한 종교와 그 신들을 동질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한 마디로 ‘말도 안 된다’는 데 많은 이들이 의견을 모으고 있다.
 민감한 주제였던 만큼 세라 주지사는 이 결정을 위해 온라인 투표를 열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결국 지난 달 12일 이 법률안은 거부됐다. 종교수업을 공교육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입법부나 행정부가 아니라 각 학교가 자치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 결정의 이유이다.
아미리 측은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다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설사 아미리 의원의 법안이 구체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종교교육을 둘러싼 문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오랫동안 학계, 그리고 정계의 중요 사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교육기관에서의 종교 수업을 비롯한 세부적인 정책들은 국가 전체보다는 주나 시 정부 차원에서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 연이어 다른 주에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해야 할 것이고, 다른 주에서의 전례는 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것이기에 근시안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또한 브라질의 정교분리와 이에 따른 ‘세속 국가(laic state)’의 지위가 오랜 투쟁을 통해 성취된 것인 만큼 가톨릭의 잃어버린 자리 찾기 노력이 그리 쉽게 결실을 보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이 2010년까지 브라질과 외교협정을 통해 가톨릭 교육을 공립 교육기관의 ‘의무사항’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이런 브라질 측의 헌법 수호라는 벽에 걸려 큰 진전을 낳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양은미 / 브라질 통신원·상파울로대 박사과정


 

세계 가톨릭 성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시의 ‘예수상’. 리우 시 코파카바나 해변 맞은편 해발 710m 높이의 코르코바두 언덕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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