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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출판문화의 황홀한 표정은…
그 때 그 시절, 출판문화의 황홀한 표정은…
  • 최성일 / 출판칼럼니스트
  • 승인 2007.12.0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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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 한국 문화잡지의 회고와 전망

교수신문은 이 나라 출판문화에 중요한 기여를 한 출판사의 지형도를 그려내고 이들이 시대와 어떤 방식으로 교유하면서 문화를 일궈왔는지를 진단하는 작업 일환으로 1980년대 이후 출판 小史를 3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출판문화에 족적을 남긴 주요 문화잡지를 리뷰, 잡지의 표정에 깃든 출판문화풍경을 복원한다.
출판칼럼니스트인 최성일씨가 이 연재를 위해 글품을 팔았다.

‘문화’ 잡지는 없다. 관련책자에 인용된 외국학자의 잡지 분류법에서 ‘문화’는 잘 안 보인다. 이러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20년 전, 한국잡지협회가 협회 정관 제27조에 따라 나눈 ‘잡지 성격별 분과위회’의 소분과 중에도 ‘문화’ 잡지의 거처는 마땅치 않았다. ‘문화 잡지’는 있다. 거의 모든 잡지는 넓은 의미의 ‘문화 잡지’다. 한국잡지협회의 성격별 소분과를 잡지분류의 기준으로 삼으면, 우선 문화종합잡지가 있겠다. 시사 잡지보다는 교양지가 더 가까울 터이고, 종교적 색채는 흐릿해야 하리라.
문예지는 문학의 비중이 낮아야겠으며, 학술지의 분야와 수준은 좀 대중적인 게 좋겠다. 예술 잡지는 당연하다.
스포츠지, 레저지, 취미지, 생활정보지 따위를 ‘문화’ 잡지로 볼 수 있다. 이제 살펴볼 ‘문화’ 잡지의 취사선택과 거론의 輕重에는 필자의 자의적 판단이 일부 개입돼 있음을 밝힌다. 
 

<뿌리깊은나무>
 <문화창조(文化創造)>, <생활문화(生活文化)>, <생활문화>의 제목을 바꾼 <문화(文化)>, 두 종류의 <민족문화(民族文化)>처럼 해방직후 선보인 표제에 문화를 앞세운 잡지들은 여기선 논외로 한다. 1970년대를 출발점으로 하는 이 글에서 맨 먼저 주목하는 대상은 <뿌리깊은나무>(한국브리태니커회사)다. “한국의 문화발전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바치는 월간잡지”를 표방하며 1976년 3월 15일 창간한 <뿌리깊은나무>는 문화 잡지의 새 장을 연다. 잡지연구가 김근수는 <뿌리깊은나무>의 특징을 이렇게 간추린다.
 1. 한자가 전혀 섞이지 않는 한글전용의 잡지다.
 2. 우리말과 글에 관심이 깊어 기고자의 글도 알기 쉽고 아름답게 나타내고자 힘썼다.
 3. 잡지의 꾸밈새, 곧 표지와 차례까지 예술성을 지니도록 애썼다.
 4. 다섯 해 동안 잡지발간을 준비했다.
 5. 우리문화, 특히 토박이문화에 애정과 관심이 깊었다.
 6. 이 나라의 자연과 생태와 대중문화를 가까이 살폈다.
 7. 독특한 형태의 여러모로 참신한 잡지였다.
 <뿌리깊은나무>는 한창기 발행인과 불가분의 관계다. 2007년 10월 출간된 『뿌리깊은나무의 생각』(휴머니스트)에 실린 잡지 창간사의 한 대목이다. “우리 문화는 이 땅에 정착한 토박이 민중이 알타이말의 한 갈래인 우리말로 이 땅의 환경에 걸맞게 빚어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말과 이 땅의 환경은 문화 발전의 수레인 교육과, 문화의 살결인 예술과 함께 <뿌리깊은나무>가 톺아보려는 관심거리입니다.”
 이 책과 더불어 『배움나무의 생각』과 『샘이깊은물의 생각』에다 한창기가 남긴 글을 추려낸 엮은이 세 사람은 그의 생전의 동지들이다. 윤구병 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는 <배움나무> 편집장과 <뿌리깊은나무> 초대편집장을 맡았으며, 김형윤은 윤구병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하면서 윤구병과 김형윤이 ‘모셔온’ 설호정은 <뿌리깊은나무> 편집차장과 <샘이깊은물> 주간을 지낸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주인공도 <뿌리깊은나무> 기자로 일한 바 있다.
 <뿌리깊은나무>는 시대의 풍파에 시달리며 뿌리가 잘린 비운의 잡지다. 생목숨을 빼앗긴 분들의 억울함과 한 맺힘에 비할 바는 아니나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광주항쟁을 상징하는 “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호곡하는 여인들의 사진을 실었던 내용 등이 문제”가 돼 <뿌리깊은나무>가 강제폐간 당했다면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렇다면, 신군부 세력은 구제불능인 자들이다. 이쯤에서 향후 문화 잡지의 전개와 맞물린 당시의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군부 세력의 대항매체 죽이기
 19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집권한 신군부는 그해 7월 들어 일련의 초법적인 조치들을 사회정화라는 미명아래 실행에 옮긴다. 고위공무원 숙정, 정치인 사정, 과외금지에 이어 발표된 172종의 정기간행물 폐간 조치(1980. 7. 31)와 무실적, 소재불명을 구실로 자행된 출판사에 대한 무더기 등록취소(1980. 8. 19)는 우리 출판계를 궤멸 직전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이때 등록 취소된 출판사 617곳은 전체 출판사 2천 597곳의 4분의 1이나 된다. 정기간행물 역시 전체의 12%, 유가지로는 26.3%가 강제폐간 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적인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창작과비평>, <뿌리깊은나무>, <문학과지성> 같은 당대의 유력지들이 다수 포함돼 질적인 면에서의 손실은 더 엄청났다. 신군부 세력은 부정부패 일소, 외설 추방, 사회불안요인 해소 따위를 출판·언론학살의 이유로 들고 있으나, 신군부 정권의 대항세력이 될 만한 비판적인 매체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함이 근본이유였다.
 이럴 때 상투적으로 쓰이는 표현을 답습하자면, 풀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1981년 9월 1일 창간한 월간 <마당>은 기층민중의 삶과 기층문화를 적극적으로 감쌌다. 신동국여지승람이라 할 만한 소설가 박태순의 『국토와 민중』(한길사, 1983)은 <마당> 창간호부터 15회 연재한 ‘국토기행’을 바탕으로 한다. 신경림 시인의 『민요기행』(한길사, 1985) 역시 <마당>에 연재한 ‘민요답사기행’을 엮은 것이다. 1980년대 중반은 클래식음악 잡지와 공연전문지의 출현이 눈에 띈다. 1984년 봄 <객석>과 <음악동아>는 한 달 간격을 두고 창간된다.

<상상>과 <리뷰>
 계간 <상상>과 계간 <리뷰>는 한 해 터울이다. <상상> 창간호(1993. 가을, 살림출판사) 표지는 잡지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소설과 영화가 만나는 풍경’을 연출한다는 의도가 보인다. 하지만 표지 모델 여섯 사람의 직업보다는 창간 특집이 잡지의 성격에 더 가깝다.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전업한 ‘젊은’ 이창동 감독을 비롯한 영화배우와 영화감독보다는 ‘‘신세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상상>의 상상력이 담겨있다.
 <상상>의 문학적 상상력은 호를 거듭하며 현실로 나타난다. 통권 3호(1994. 봄)는 소설가 장정일과 이인화를 표지인물로 세우고 ‘우루과이 라운드(UR) 시대의 소설과 영화’를 크게 다룬다. 통권 4호(1994. 여름)의 특집은 ‘동아시아 문화 제대로 보기’이고, 중편소설 ‘아우와의 만남’을 게재한 소설가 이문열의 얼굴이 표지를 장식한다. 통권 5호(1994. 가을)에선 그룹 ‘넥스트’를 표지에 올리고 ‘존재의 문을 열어라’라는 신해철과 김탁환의 대담이 마련돼 있지만, ‘제1회 상상문학상 모집’을 알리는 표지 문구가 잡지의 이후 전개를 예고하는 듯하다.  
 <리뷰>는 창간호(1994 겨울)의 ‘서태지, 주류질서의 전복자’를 필두로 한 문화예술인 인터뷰와 지난 계절의 대중문화 전반 되짚기로 대중문화 전문 계간지다웠다. 2호(1995 봄)는 오염된 시대의 비평가로 박재동 화백을, 8호(1996 가을)는 한국축구의 영원한 승부사 박종환 감독을 인터뷰한다. 가수 윤도현(10호, 1997 봄)과 김민기(14호, 1998 봄)도 인터뷰이로 초대했다. 하지만 <리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잡지 관계자의 기대에 못 미쳤다. <리뷰>는 문예마당에서 시작해 리뷰앤리뷰와 문학동네를 거쳐 인우로 간행처가 바뀌었다. 문화 잡지가 독서계에 정착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시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개성 있는 문화잡지들
 스트리트 매거진의 역사도 짧지 않다. 2007년 11월호로 창간 12주년을 맞은 <페이퍼>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문화종합잡지로 손꼽힌다. “영화, 음악, 연극, 만화 등 ‘정통’ 문화 장르를 다룬다. 사람에 대한 관심의 폭은 넓다.” 또 “<페이퍼> 는 개성이 뚜렷하다. 밝고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문화집단이 만드는 문화종합잡지가 스스로 규정한 정체성이다.” 전투적 대중문화비평을 내세운 <문화건달 짬(ZZAM)> 또한 ‘음주인터뷰’ 등으로 나름의 개성을 발휘했다. 부산에서 발간되는 <보일라>는 2002년 9월 창간한 문화종합잡지다. <보일라>는 전국으로 독자의 폭을 넓혀 요즘은 발행부수 1만부 가운데 65% 가량을 서울에서 소화한다고 한다.
 비슷한 형식이거나 독특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는 문화 잡지를 살펴볼 순서다. 1970년 4월 1일 창간한 <샘터>는 ‘작은’ 교양지의 시초다. 뒤표지에 광고를 싣지 않고 발행인의 짧은 칼럼을 게재해왔다.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의 『한 눈 뜨고 꿈꾸는 사람』(1990), 『걸어가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걸어간다』(1992), 『그 다음은, 네 멋대로 살아가라』(2006) 등은 월간교양지 <샘터>의 뒤표지 글모음이다.
 상공부 장관을 역임한 장덕진의 주도로 1982년 8월 1일 창간된 <한국인>은, 한동안 <샘터>와 작은 교양지 시장을 양분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접한 <한국인> 창간호는 관변냄새가 났는데, 나중에 독자의 호응을 얻는 걸 보고 약간 의아했다. <좋은 생각>은 서울 구로지역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기반을 잡았다고 한다. <작은 이야기>는 얼마 나오다 말았다.
 아예 처음부터 노동자를 대상으로 출범한 작은 교양지도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글 모음’ <작은책>은 표제대로 잡지의 크기가 작다. 노동자문예 교양지 성격의 <삶이 보이는 창>은 생활 현장의 살아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1980년대 후반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격월간 <노동문화>(<노동문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정기간행물 <노동문학>은 아니다)는 기품이 있었다.
이 잡지의 간행이 꾸준히 이어지지 못한 게 아쉽다.
다루는 분야가 색다른 문화 잡지로는 먼저, 1970년대 중후반의 스포츠 열기에 부응한 <주간스포츠>(한국일보사)와 <스포츠동아>(동아일보사)가 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두 잡지는 스포츠 정보매체로서의 주도권을 스포츠신문들에게 내주고 소멸한다. 여기에다 프라모델링 동호인의 역량을 과시한 <취미가(HOBBIST)>, SK 그룹이 발행한 대학생 잡지 <지성과 패기>, 34년째 버스터미널과 기차역 가판대를 지키고 있는 월간 관광교통 <시각표>, 가톨릭 교양잡지 <들숨날숨> 등도 눈여겨볼만하다.

살림출판사는 1993년 창간해 시대의 문화적 상상력을 표현해왔다. 사진은 파주에 위치한 현재의 살림출판사 전경.

다종다양한 대중지의 출현을 고대한다
 나는 이른바 ‘전자책’의 보급이 지지부진한 주된 이유가 그것에 걸맞은 양식을 창출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의 변화는 과거 두루마리 필사본에서 코덱스 형태로의 전환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종이책의 콘텐츠를 디지털화한 것만으로 전자책이라 하기엔 아직 미흡하다. 웹진 또한 그렇다. 오로지 인터넷으로만 볼 수 있는 잡지가 없지 않으나, 그런 형태의 잡지들이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고 보긴 어렵다.
 정보통신업이 우리의 미래라는 공수표를 마구 남발하던 무렵, 꽤 큰 규모의 출판사 이름을 ‘○○닷컴’으로 바꾼 것은 단견이었다. 부지불식간 닷컴의 꼬리표가 슬그머니 떨어져나가지 않았는가. IT 광풍이 잦아들기 시작할 즈음, 한 연륜 있는 출판사는 문화가 제목에 들어간 사외보를 없애면서 출판사 인터넷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했다. 나는 이에 대해 유감을 표한 바 있다.
 말 나온 김에 출판사 관계자에게 <○○문화>는 왜 없앴는지 따지듯 물었다. “그것 한번 내는데 1천만 원 적자”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문화>는 책 소식지와 사보를 겸한다. 출판사는 소식지를 없애고, 인터넷사이트를 개설했다. 소식지는 낭비 요소가 없지 않았던 만큼 발간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했어야 했다. 인터넷사이트 역시 제대로 운영하려면 적잖은 비용이 든다. 더구나 네티즌이 아닌 독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말인가?
 자연생태저술가 데이비드 쾀멘이 『야생에 살다』(이충호 옮김, 푸른숲, 2006) 머리말에서 표명한 대중잡지 옹호론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고상한 전문지뿐만 아니라 실속 있는 대중지도 없다. 앞날을 내다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희망사항을 피력하는 것으로 전망을 대신하겠다. 나는 대중지가 다종다양하게 많아졌으면 한다. 나는 “Keep the culture style!”을 외치는, 고무하는 <프라우드(proud)>에서 그 싹을 본다. 그런데 이 잡지 편집자는 어떤 칼럼의 내용에 대해 독자들이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아무리 쉬워도 자기가 모르면,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최성일 / 출판칼럼니스트


 

필자는 <출판저널>을 비롯, 출판과 관련된 각종 매체에서 출판문화와 관련된 깊이있는 글쓰기 작업을 해왔다. 『미국 메모랜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1~3』, 『베스트셀러 죽이기』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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