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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천재의 ‘우주’를 읽다
‘전설’이 된 천재의 ‘우주’를 읽다
  • 고중숙/순천대·과학교육과
  • 승인 2007.12.03 13: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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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서평_ 아인슈타인의 우주·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아인슈타인은 과학 전 분야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이에 따라 그의 삶과 업적에 대해서는 누구나 비교적 잘 알고 있으며, 자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그에 대한 관심이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샘솟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이에 대한 답을 비교적 충실히 제시하는 두 권의 책이 일주일 간격으로 출간됐다.

 미치오 카쿠가 쓰고 필자가 옮긴 『아인슈타인의 우주』 (미치오 카쿠 지음, 고중숙 옮김, 승산, 328쪽)는 업적, 그리고 월터 아이작슨이 쓰고 이덕환 교수가 옮긴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월터 아이작슨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 736쪽)는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아래서는 편의상 <우주>와 <삶과 우주>로 줄여 부른다.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천재가 쓴 천재 이야기
뉴욕시립대 교수인 카쿠는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일본계 미국인으로, 전공 자체는 물론 과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점으로도 유명하다. <우주>는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사상 획기적인 논문들을 발표해 이른바 ‘기적의 해’로 불리는 1905년의 백주년에 즈음해 지금도 과학계 전반에 메아리치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학문적 유업을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전문가적 관점에서 조망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천재가 쓴 천재에 대한 이야기”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카쿠는  재조명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첫째,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매우 심오해 그 증거가 생전에 다 확인되지 못했으며, 새 귀결들이 지금도 계속 도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93년의 노벨물리학상은 1916년에 예언된 중력파를 간접적으로 확인한 과학자들, 2001년의 노벨물리학상은 1924년에 예언된 보스-아인슈타인응축상을 만들어낸 과학자들에게 주어졌다. 또한 일반상대성이론의 괴이한 한 귀결로만 여겨졌던 블랙홀은 최첨단의 망원경으로 탐사되고 있으며, 중력에 의한 빛의 굴절 현상으로 생기는 아인슈타인링과 아인슈타인렌즈는 이미 확인됐을 뿐 아니라 천문학의 새 도구로 부각되고 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이 “내 생애 가장 큰 실수”라고 한탄했던 ‘우주상수’마저도 새 의미가 발견됨에 따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정적 우주’를 믿었기에 우주상수를 도입했는데, 우주의 팽창이 확인돼 ‘동적 우주’가 진실임을 깨닫고 이것을 일생일대의 실수로 지목했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은 최근에 우주가 ‘등속 팽창’을 넘어 ‘가속 팽창’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에 따라 우주상수가 실제로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존재라고 추측한다. 이처럼 오늘날 실험적 측면에서 아인슈타인이 남긴 위업들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둘째, 사람들은 이토록 놀라운 업적을 낳은 아인슈타인의 사고과정을 신비롭게 여겨왔다. 카쿠는 그의 천재성이 ‘물리적 직관의 시각화’에 있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16살 때 ‘빛과 함께 달리기’라는 그림을 떠올린 지 10년 뒤에 특수상대성이론을, 28살 때 ‘의자와 함께 자유낙하’하는 그림을 떠올린 지 8년 뒤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후 평생을 바쳐 추구한 ‘통일장이론’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선명한 그림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양자론이라는 물리학계의 주류에서 벗어난 괴짜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 ‘초끈이론’이나 ‘엠이론(M-theory)’이라 불리는 ‘만물의 이론’들이 물리학계의 중심 무대를 차지하게 됐다. 그리하여 후반기 유산들도 새롭게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카쿠는 위의 두 측면을 정교하게 엮어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다. 그는 다년간 여러 매체를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노력해왔으며, 이런 경험이 이 책에서 한결 진하게 배어 나옴을 실감할 수 있다. 한편 필자는 아인슈타인의 정신적 유산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는 평생 여러 면에서 참으로 소탈하게 지냈다. 그리하여 죽은 뒤에도 ‘전설’이 되기를 원하지 않아 장례식도 없이 죽은 바로 그날 화장해서 허공에 뿌려지도록 유언했다. 하지만 그의 두뇌만은 허락도 없이 추출돼 지금껏 남아있다. 따라서 언젠가 뇌과학이 충분히 발달하면 그가 밟았던 희대의 천재적 사고과정이 물질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조명을 받을지 모르겠다.

아인슈타인의 사후 수많은 개인적 자료들이 히브루대학교에 맡겨졌는데, 둘째 처의 딸 마르고트는 자기가 죽은 뒤 20년이 지나면 공개해도 좋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언론인인 아이작슨은 2006년에 새로 공개된 자료까지 포함시켜 <삶과 우주>를 썼다. 이 자료들에 특별히 놀라운 사실은 없지만 그동안 감춰졌던 내밀한 사실들은 인간적 측면을 살펴보는 데에 도움을 준다. 아인슈타인은 첫 결혼생활이 허물어져갈 때 제삼자를 통해 흔히 알려진 성자 같은 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휴전 통첩’을 보냈다. 거기에는 적대감과 소외감 속에 섬뜩할 정도의 과학자다운 냉정함이 스며있다. 이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충격 때문에 맏아들은 아인슈타인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아이작슨은 이와 같은 에피소드들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으면서 아인슈타인의 인간적 고통을 물 흐르는 듯한 서사시처럼 자연스럽게 써내려 간다.

새롭게 공개된 자료와 에피소드로 그려진 과학자의 진면목
아이작슨도 카쿠처럼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사고과정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금껏 대개의 자료들은 아인슈타인이 다른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특수상대성이론을 세웠다고 소개해왔다. 하지만 아이작슨은 아인슈타인이 선명한 근본원리를 먼저 정립한 뒤 이로부터 순수한 논리적 과정을 통해 특수상대성이론을 이끌어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기적의 해’인 1905년에 발표한 세 가지의 획기적 업적이 모두 동일한 과정을 거쳐서 얻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방법론을 이후 다른 연구들에도 적용했으며, 특히 그의 최고 업적으로 여겨지는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최고도에 이른다. 그는 “자유낙하할 때는 중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토대로 이 놀라운 성과를 얻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선명한 시각적 이해’를 중요시하는 이 방법론은 현대물리학의 다른 기둥인 양자론에서는 맥없이 무너진다. 상대론의 경우 결론들이 상식과 모순돼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지만 양자론은 전제부터 상식을 뒤흔든다. 신기하게도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와 함께 양자론의 창시자에 속한다. 하지만 양자론에서는 상대론에서 뚜렷이 부각된 시각적 직관이 통하지 않으며, 상대론의 바탕인 결정론적 전제도 양자론에서는 확률론적인 것으로 대치된다. 양자론에는 또한 ‘유령과 같은 원격작용’이 나타나는데 아인슈타인은 이것이 상대론의 철칙인 광속의 유한성에 모순되는 듯하다는 점 때문에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
양자론은 또 “대상은 관찰하지 않을 때도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역사적으로 이는 플라톤이 내놓은 ‘동굴의 비유’ 이래 주로 철학적 관점에서 논의돼 왔다. 하지만 ‘물리적 실체’를 다루는 자연과학에서 논의되자 과학계에는 격렬한 논쟁이 몰아쳤다. 아인슈타인은 처음에 실증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실험과 관찰로 확인되는 것만으로 연구한다”는 자세를 가졌지만 나중에는 ‘허황하게’ 보이는 양자론의 여러 면모들에 실망해 “물리적 실체는 관찰과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주의로 선회했다. 아이작슨은 이러한 ‘사상적 전향’이 사실논란이 있긴 하지만 사실이라는 입장에서 두 관점을 비교했다. 그러나 진행중인 이 논쟁을 좀 더 깊이 있게 분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주>는 맥스웰방정식이 8가지라고 하는데, 4가지를 잘못 쓴 원서의 오류로 보인다. <삶과 우주>에는 일반상대성이론의 한 증거인 ‘수성의 근일점 이동’이 ‘목성의 근일점 이동’으로 잘못 나와 있다. 그리고 1960년대에 알려진 ‘쿼크’가 1930년대에 밝혀져 있었다는 것은 원서의 오류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우주>와 <삶과 우주>는 상호보완적이다. 아무쪼록 이 책들을 통해 과학사상 뉴턴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우뚝 솟은 위대한 인물이 죽은 뒤 반세기가 넘도록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에 대해 한층 깊은 이해가 얻어지게 되기를 기대한다.

고중숙/순천대·과학교육과


 

필자는 미국 애크런대에서 레이저분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아인슈타인의 시간 여행』, 『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내 머리로 이해하는 E=mc2』 등이 있으며 역서로 『불완전성』, 『소수의 음악』, 『우주 또 하나의 컴퓨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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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2세(물리학자) 2007-12-05 16:24:38
책<노벨상 스캔들>이 출판되었다고 여러 신문에서 소개를 하더군요. 노벨상 수상에 관한 50개의 사례를 말하면서 문제점을 말했죠. 책<과학의 사기꾼>과 책<지식의 사기꾼>을 쓴 하인리히 찬클이 책<노벨상 스캔들>의 저자입니다. 노벨상의 순기능도 말하기도 하면서 노벨상이 나아가야 할 미래를 제시했다고 하네요. 교수신문의 책서평에도 책<노벨상 스캔들>이 나왔죠.

책 제목 : <과학의 사기꾼> 세계를 뒤흔든 과학 사기사건과 그 주인공들의 변명
지은이 : 하인리히 찬클 지음, 도복선 옮김
출판사 : 시아 출판사 펴냄

책 목차
- 머리말 / 학문에서 사기는 어떻게 일어나나?

[1] '인위적' 실수와 천재의 영감

1. 가장 오래된 표절 - 프롤레마이오스의 별자리지도

2. 떨어지는 대포알 -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칙

3. 짜 맞춘 계산 - 뉴턴의 '조작인수'

4. 찬란함의 초라한 뒤끝 - 블론로의 N선

5. 기록에서 뺀 기름방울들 - 밀리컨의 미심쩍은 기본전하량 'e'

6. 참인가 거짓인가? - 아인슈타인의 '위조'에 대한 비난

7. 빛의 속성에 대한 잘못된 증명 - 에밀 루프의 꾸며낸 빛 파장설의 근거

8. 내 실적을 물어내라 - 반양성자 첫 발견의 공은 누구에게?

9. 소문만 요란한 기적의 에너지 - 플라이슈만과 폰스의 상온 핵융합

10. 조작된 신기록 - 가짜로 드러난 니노프의 초우라늄

11. 추락한 젊은 스타 - 날조로 밝혀진 얀 헨드릭 쇤의 초전도체 발견
......(중략)


조지 가모브가 자신의 책<물리학을 뒤흔든 30년> 김정흠 옮김, 도서출판: 전파 과학사
에서 양자역학을 대신할 이론이 2000년 또는 21세기초반에 나타날 수 있을 가능성을 말했는데 가모브의 예상이 저에 의해서 실현되었습니다.

책의 부록에서 가모브가 한 말 " 엉터리 양자역학을 집어 치우시오. "
새가 " 까악 까악 " 하자 디랙이 " 우리들의 불운인가? " " 1926년이후의 우리 연구를 모두 불태우자. "

파우스트가 " 우리는 이제 무엇을 연구해야 하나? "(오늘부터는 연구조차 할 수 없나?)
라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죠. 여담인데 우리나라에 학술지<새물리>가 있죠. 여기서 새는 새로운new를 말하는 것이지만요.

아인슈타인이 보른에게 보낸 편지(책<아인슈타인-보른 서한집>이 최근에 출판되었음)에서 "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 라고 말한 것이 옳았던거죠. 아인슈타인의 통찰력이 정말로 뛰어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