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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는 봤어도 값진 경험이 남지 않았는가
손해는 봤어도 값진 경험이 남지 않았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07.12.0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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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비평_ ‘라이온 킹’이 남긴 것들

‘라이온 킹’이 막을 내렸다. 이러저러한 논쟁들로 시작부터 시끄럽더니, 종연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신문지상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기사들은 역시 30억원이 넘었다는 손실액 부분이다. 대부분 언론에서는 지구상에서의 유일한 ‘사자왕’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여념이 없고, 간헐적으로 장기 공연 시스템의 한국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들도 제기되고 있다. 시장의 한계나 거품론에 대한 지적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상업적 공연의 본질이나 미래적 지향점에 대한 논의 없이 겉으로 드러난 계량적 수치들에 사로잡혀 그릇된 잣대를 들이대는 감이 없지 않아 안타깝다.
서울에서 사자의 포효는 끝났다. 이제는 진정 ‘라이온 킹’이 남긴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한 분석과 파악을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분법적 판단, 성급하다
유난히 흑백론을 좋아하는 우리 언론들의 관심은 일단 ‘라이온 킹’의 한국 공연이 성공인가 실패인가라는 피상적인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각에 맞춰 선을 긋자면 ‘라이온 킹’은 명백히 실패했다. 대규모 손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살아있는 물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온 킹’은 과연 실패만 했을까. 시각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게 결론지어질 수 있다는 데 사안의 흥미가 있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뮤지컬과 같은 상업적 공연물의 속성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돼야 하기 때문이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우리나라 공연시장에 처음 소개된 이래 한국의 뮤지컬 산업은 매해 17~18%의 가파른 매출 신장을 기록하며 팽창을 거듭해 왔다. 연말을 맞아 우리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작품들만 해도 ‘뷰티풀 게임’, ‘헤어스프레이’, ‘스펠링 비’, ‘애니’, ‘노트르담 드 파리’, ‘맘마미아!’ 같은 중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뿐 아니라 프랑스 뮤지컬인 ‘십계’, 앤드루 로이드 웨버 원작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그리고 해가 바뀌면 퀸의 음악으로 꾸민 ‘위 윌 록 유’ 등이 투어형태로 앞 다퉈 막을 올릴 예정이다. 여기에 ‘명성황후’를 필두로 ‘마리아 마리아’, ‘인당수 사랑가’, ‘미스터 마우스’, ‘샤인’, ‘컨페션’, ‘김종욱 찾기’ 등 창작 뮤지컬까지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치열한 공연 시장에서의 한 판 쟁탈전이 펼쳐질 기세다.


외형적으로는 작품의 수적 증가가 시장의 성장을 가져올 것 같지만, 문제는 그 체질적 측면에서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다는 토대의 허약함에 있다. 근간이 되는 시스템이나 환경이 뒤따르지 않는 시장의 성장은 근본적으로 뿌리가 약할 수밖에 없고, 한국 뮤지컬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상업적인 공연물인 뮤지컬이 그에 상응하는 완성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적합한 시설과 규모를 갖춘 공연장에서의 장기 공연을 바탕에 둬야 한다. 복제의 용이성으로 인해 동시에 많은 영화관에서 상영되거나 창구(window)를 달리하며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영상물과 달리 공연은 첫째, 한 회에 얼마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극장의 크기와 둘째, 얼마나 오래 공연을 지속할 수 있는가의 공연 기간에 따라 매출액이나 수익 구조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매출 구조의 문제는 다시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투자, 세트나 비주얼 효과 등 제작비의 산정에 밀접하게 관련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길어야 두세 달에 불과한 공연 기간과 같은 제한적인 시장 환경 하에서 뮤지컬이 산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자연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작은 그릇에 제대로 된 요리를 담을 수 없다는 시장의 악순환으로도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라이온 킹’을 단순한 투자대비 실적의 실패로만 볼 수 없는 또 다른 시각은 바로 이러한 상업예술의 경영적 측면을 바탕에 두고 있다. 결코 적은 규모의 손실은 아니었지만, 시장의 잠재적 가치나 마케팅적 노하우의 축적이라는 면에서 시키(四季)의 ‘라이온 킹’이 지난 일 년간 장기공연을 통해 얻어낸 경험치는 ‘수업료’를 훨씬 상회하는 값진 정보로 활용될 수 있다. 1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프로덕션을 쉬지 않고 서울 한 복판에서 독점적 공연장을 운용하며 이끌어온 경험을 가진 제작사나 기획사는 현재 일본 극단 시키가 유일하다는 면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라이온 킹’ 자체보다 ‘포스트 라이온 킹’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마찬가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국내 극단이나 제작사, 기획사 사이에서는 ‘라이온 킹’의 종연 수개월전부터 치열한 물밑 접촉을 통해 샤롯데 극장의 차기 대관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가 하면, 시키 측도 한국에서의 사업 철수가 아닌 보다 진화된 형태로 사업을 성숙시키거나 새로운 전개를 모색하기 위한 조사 및 사전 정지작업들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

장기 공연 위한 준비와 체질 개선
‘라이온 킹’은 우리 시장에 적합한 상업 뮤지컬의 장기 공연 시스템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실증적으로 점검해봤다는 측면에서도 값진 경험을 선사했다. 단순히 공연을 길게 하는 것 못지않게 장기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한 여러 가지 제반 여건이나 요소들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우선 장기 공연에 적합한 수준의 관객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티켓 가격 면에서 기존의 고급화 전략이 아닌 새로운 방식에서의 접근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됐다. 공연 초기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객석의 유료 관객 점유율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아직 우리 관객들이 뮤지컬을 안정적으로 소비할 만큼 수적으로 충분히 팽창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되고, 대중적으로 수용가능한 존재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지금까지의 뮤지컬 관객 대상 마케팅과 달리 3~4명이 기준이 되는 가족 단위의 관객들을 극장으로 안정적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화된 수준에서 수용 가능한 티켓 가격의 형성이나 가족 단위의 공연장 방문객들(Theatergoers)을 배려하는 수준에서의 적극적인 할인 마케팅 전략의 모색 등도 앞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을 꿈꾸는 우리나라 상업 극장계가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프로덕션 자체의 완성도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보다 치밀한 준비와 실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말로 제작된 ‘라이온 킹’이 외국에 비해 그리 폭발적이지 못한 흥행기록을 세운 이면에는 엄밀히 말해 시장적 요인보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내적 요인이 더 치명적이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흑인들로 무대를 꾸미며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적 정서와 멜로디, 창법으로 구현해내는 영미권 ‘라이온 킹’의 진정성은 우리말 번안 무대에서는 소화해내기 힘든 원초적인 어려움이 있었을 뿐 아니라 라이브 연주가 아닌 반주(MR)를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평면적인 음악적 한계를 지니게 됐고, 한국 공연 프로듀서들과의 불협화음 탓으로 확보하지 못한 스타급 배우의 부재 등이 더해져 원작이 지니고 있던 대중적 파괴력을 반영해내지 못한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이러한 시각이 흥미로운 것은, 역으로 보자면 작품의 선택이나 기획 측면보다 우리 정서에 적합하게 재구성해내는 무대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장기 공연 콘텐츠로서 라이선스 뮤지컬이 가지는 한계점이 명백해진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관점의 문제다. ‘라이온 킹’의 사례를 단순히 해외 유명 콘텐츠의 국내로의 직접 진출이나 우리 시장에서의 수익 구조 창출 여부만을 좁게 논의할 것이 아니라, 향후 지속적인 성장을 모색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 공연 산업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환경적, 질적 요인들을 검증하는 폭넓은 논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 하니 우선은 이러한 시각과 논의부터라도 빠르게 전개해 봤으면 좋겠다.

원종원 / 순천향대· 신문방송학 뮤지컬 평론가

필자는 한국외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렌트’ 등 해외 유명 뮤지컬을 번역한 바 있다. 저서로는 『뮤지컬 티켓, 없으면 훔쳐라』,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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