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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뒤에 꿈틀거리는 욕망 “계책 난무해도 正道가 명분”
‘명분’뒤에 꿈틀거리는 욕망 “계책 난무해도 正道가 명분”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7.12.03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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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_ 정치의 계절, 삼국지 현상

삼국지만큼 인간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은 없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만들어내는 지략과 계책, 관계와 소통은 마치 거대한 바둑판의 수처럼 치밀하고 치열하다.
최고의 전략서로 꼽히는 삼국지가 대선을 앞두고 자주 회자되고 있다. 격변의 시기마다 삼국지는 늘 인용됐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불투명한 사회분위기는 삼국지를 다시 손에 들게 한다.
 

‘삼국지’, 신임교수가 뽑은 ‘대학생 추천 도서’ 1위
삼국지는 최고의 고전반열에 드는 작품이다. 교수신문이 지난 2학기에 임용된 신임교수 가운데 1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학생에게 추천하고 싶은 도서’로 대다수가 삼국지를 택했다. 한 교수는 “삼국지는 교양서적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를 덧붙일 게 있을까”라고 말한다. 전공에 따라 삼국지를 들여다보는 시각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초점을 어디에 두고 읽느냐에 따라 재미를 느끼는 부분도, 이해하는 방법도 다르다. 
“요즘 시대 대학생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대학생활에서 낭만을 떠올리지만 현실은 취업 등 여러 고민이 뒤따른다. 삼국지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한 사

회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 백종우 경희대 교수(정신과학)
“전략을 짠다는 측면에서 삼국지는 좋은 참고서가 된다. 책을 읽을 때도 인물에 포커스를 두기보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 하병천 서강대 교수(경영학)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접하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인물의 성격에 중점을 두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 윤성환 계명대 교수(중국학)
신복룡 건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삼국지는 절의, 배신, 충의, 미담, 기괴함, 천재같은 이야기가 고루 실려 있는 옴니버스 스타일의 소설”이라고 표현한다. ‘일차적으로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소설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삼국지는 발군이라는 것이다.
그는 “삼국지에 몰입하며 감격하는 이유는 최고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권선징악에 대한 대리만족 때문일 것”이라며 “따라서 조조를 정통으로 보는 삼국지는 이미 삼국지가 아니다. 삼국지를 가려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정치 삼국지’, ‘경영 삼국지’를 논하기 전에 삼국지의 문학적 가치는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장기판이 치밀해도 뛰어노는 말에 생명력이 없다면 재미를 잃기 마련이다.
삼국지 역자 중 한 명인 장정일은 2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삼국지는 삼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고구려 등 수많은 주변국이 등장하는 동아시아의 역사”라며 광대한 이야기 스펙트럼을 강조했다. 황석영은 ‘의를 추구했지만 현실에서 실패한 영웅을 내세워 집단적인 열망을 투영하는 역사적 흐름’ 가운데 삼국지를 자리매김했다(창작과 비평사, ‘황석영의 삼국지’ 소개 글 중).
정치의 계절에 삼국지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국지는 중국 위촉오 3국 제후들이 ‘누가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인가’를 놓고 싸운 영웅 이야기다. 군웅들은 전쟁을 누구와 어떻게 치를 것인가에 따라 전략과 계책을 짜고 ‘신의’라는 이름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했다.
그 속에서 다양한 인물상이 탄생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과정이 정치였다. 유비의 정치, 조조의 정치는 그런 점에서 차별된다.
주인공은 天下를 도모한다. 이들에게 천하는 영토이자 정치권력이다. 무엇보다 民意를 얻는 과정이다. 민의를 얻기 위해 명분을 중시했고 正道를 표방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들끓는 천하제패의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수 천 년이 지난 지금 영역을 넓히기 위한 전쟁은 사라졌고 민주주의 시대는 상층부 권력에 제동을 걸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천하를 이야기하며 권력을 얻고자 한다. 정치권력은 물론 경제권력, 문화권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대선주자들은 출사표를 던지며 저마다 대중의 지지를 호소한다.

왜 여전히 삼국지인가
한 정치인은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돼 한 사람의 지시가 정치를 좌우한다. 이른바 유비나 관우같은 이들이 붙어서 지면 우르르 도망가고, 이기면 졸병들이 기세를 올린다”며 한국의 정치를 ‘삼국지 정치’에 비유했다.
이등연 전남대 교수(중어중문학)는 “삼국지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즉 처세술이라고만 할 수 없는 삶의 현장이 담겨 있다”고 전한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바로 내 옆에 있는 인물을 떠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대선 후보를 삼국지 등장인물에 빗댄 칼럼도 쏟아진다. 조조, 여포, 손권 등을 난립하는 대선후보에 빗대는 식이다. 이 교수는 “인물이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현실에 연결할 수 있다”며 “요즘 사회적으로 다양한 일이 많은데, 삼국지는 언제 어느 시대에 놓아도 시공을 뛰어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삼국지’의 전쟁은 목적이자 수단이었지만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전쟁은 ‘경쟁’이라는 훨씬 복잡하고 치명적인 의미를 안고 있다. 국제적으로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정치적 혼란과 남북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다. 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난세인 셈이다.
정원기 아시아대 교수(중국고전문학)는 “삼국지는 난세 때 진가를 발휘한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의 말을 빌자면 ‘현세는 언제나 난세’다. 두뇌싸움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책은 인간이 사회에서 경쟁하며 사는 이상 읽혀지고 읽어야할 책이다. 책 속 인물보다 우리는 좀 더 영악하고 좀 더 지능화했을 뿐이다.
권순긍 세명대 교수(한국어문학)는 “삼국지는 ‘명분을 어떻게 얻느냐’를 논하고 그 방법으로 정도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고 말한다. 지략과 계책이 난무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이기고 지는 일이 아니라 정도를 걷기위한 방법이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어떤 삼국지를 권할 것인가

삼국지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드라마, 대본, 애니메이션, 게임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현재 삼국지 번역본은 370여종에 달한다(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조사).
삼국지를 읽는 것만큼 ‘어떤 삼국지를 읽느냐’도 중요하다.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평·번역한 삼국지는 그 자체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삼국지 해석을 둘러싼 작가 논쟁을 낳았다.
지난 2005년 교수신문이 연재한 ‘고전번역비평-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에는 ‘최고의 삼국지 번역본’에 대한 추천도 있었다.
당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은 김구용 역과 황석영 역이다. 두 작품은 정역류로 삼국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황석영은 원본에 충실한 번역과 더불어 특유의 문체를 통해 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장정일 역은 ‘완전한 재창작’을 두고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이 엇갈렸다. 이창헌 명지대 교수(국어국문학)는 당시 장정일 역을 추천한 이유로 “여성차별적인 관점을 고려해 독자층을 넓혀 다른 평역본들과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반면 이등연 전남대 교수는 “너무 주관적인 해석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여타 번역본과 비교해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대중에겐 사랑 받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작가의 개입이 지나치고 오역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장정일은 이문열의 삼국지를 “보수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문열은 지난달 23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삼국지’로 알려지는 것은 상당히 불만스러운 대목이다. 당초 작가가 할 수 있는 부업으로 생각했는데, ‘삼국지’가 다른 작품들을 압도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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