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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동료교수가 학과회의서 자기주장만 할 때
⑨ 동료교수가 학과회의서 자기주장만 할 때
  • 박상주 기자
  • 승인 2007.11.05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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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 엿보이면 느긋하게 長期戰으로

학과회의는 독특하다. 결정할 내용이 자신의 처우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이 많고, 교수의 기질 상 치밀한 논리력과 설득력이 필요하고, 관계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 데다 뜬금없는 반론이 ‘참’ 많다. 자신들의 ‘룰’을 정하지만 체면도 있어 대놓고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을 요구할 수 없다.

전공에 따라 전문가 냄새가 물씬 풍기기도 한다. 한 정치학과에서는 식사 자리에서 주요 맥락을 합의하고 학과회의는 요식행위로 거친 뒤 학과조교가 결정의 근거를 정리해 대학에 보고한다. 어느 기계공학과 교수는 지난 5년간 우수한 성적을 보인 선진국 대학들의 커리큘럼을 분석해 표와 그래프로 제시하면서 자신의 과목을 필수과목화 하자고 주장한다. 어떤 철학과는 학과회의 ‘무익론’에 따라 지난 해 회의 결과에서 이름만 바꿔 적어 결정한다.
연구년 교수 선정만 해도 나이, 경력 순으로만 결정하지 않는다. 해당 교수의 “연구비수주액, 외국대학과의 관계를 고려하자”는 주장이 나오면 회의는 길어진다. 다른 교수는 “이전의 방침은 무엇이고 그 방침을 만들게 된 역사는 어떠했고, 당시의 공시적 세계 상황은 뭐냐”고 되받는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 재반론을 거듭한다. 결국 ‘좋은 시기에 나를 보내 달라’는 말이다.

이외에도 강의시간 배정, 강의시수 분담, 필수·선택 과목의 안배, 연구비 배분, 대학원생 배정은 ‘마르크스도 평등하게 나눌 수 없다.’ 한 교수는 학과회의에 대해 “겉으로는 집단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룰을 좇는다”고 진단한다.

학과회의 의제에는 승진 규정, 신임교수 임용 분야 선택 등의 심각한 사안이 많다. 승진규정에 따라 부교수부터 전임강사는 그 해 승진을 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연구실적을 ‘논문 000%’에서 ‘학진 등재 000%’로 바꾸거나 ‘학진 등재 000%’에서 ‘SCI 000%’로 바꾸기도 한다. 신임교수 임용분야를 정하는 회의에 들어가면 모두 ‘학과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를 뽑겠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간혹 자기사람을 심으려는 교수는 학과 중장기 발전계획을 재구성하거나, 필요 학문분야의 카테고리를 엽기적으로 해석하기를 서슴지 않고, 학문분야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제시하면서 특정 분야가 향후 100년간 학계를 좌우할 듯이 설득하기 시작한다.

한 중진교수는 “학과회의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좋아하지 마라”고 말한다. “1, 2년 지나면 그 때 내세웠던 논리 그대로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학과장을 마친 한 교수는 “꼭 회의가 끝날 때쯤 결과를 뒤집는 반론을 하면 미칠 지경”이라면서 “회의 의제를 대전제에서 소전제로 옮겨가는 방식으로, 각 의제별로 결정을 받아 둔다”고 조언한다. 경험이 많은 교수들은 다른 교수가 의도를 품은 주장을 하면 “괴변을 듣더라도 ‘저는 시간이 많아요’라는 듯 무심한 표정을 하라”고 조언한다. 의도를 가진 사람의 마음이 급하고, 결정은 내일해도 늦지 않는 법이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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