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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협력 정례화 공감 … 선언에 반영한 것 의미있다”
“학술협력 정례화 공감 … 선언에 반영한 것 의미있다”
  • 안병욱 / 가톨릭대·국사학과
  • 승인 2007.10.29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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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정상회담과 학술교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통일에 대비한 학술 문제를 반드시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상회담에서 학술협력 문제를 논의하고 그 결과를 공동선언문에 담는다면 앞으로 남북교류의 질적인 수준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특별수행원으로 마침 동행할 수 있게 됐다.
이번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들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으로 10월 4일 발표됐다. 그 선언 6항에서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두 정상은 역사·언어·교육·과학기술 등의 학술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기로 뜻을 같이하고 선언에 명기한 것이다.
그동안 몇차례 진행돼 온 남북 당국자들의 합의는 정치적 선언이나 경제협력 문제에 집중됐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빼놓을 수 없는 학술협력과 공동연구의 가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점은 정치인이나 관련 공직자들뿐만이 아니라 막상 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술문제는 생색내거나 주목을 끄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타성 탓인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학술문제가 의제로 논의되고 그 결과가 선언에 명시됐음에도 그 의미에 대해 언론들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정상회담 기간중 학술관계 인사들의 간담회는 방북 이틀째인 10월 3일 오전 인민문화궁전 회의실에서 문화예술분야와 함께 진행됐다. 남측 10명, 북측 8명이 1시간 정도 참여해 토의했다. 남측의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한 교수들은 여러분이었다. 그 가운데 학술분야의 임무를 안고 그 회의에 참석한 분들은 김근식 교수, 김용옥 교수, 문정인 교수, 이수훈 교수 그리고 필자 등이었다. 북측 학자는 리종혁 조국통일연구원장을 단장으로 하고 송국남 사회과학원부원장, 조희승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장, 림미화 사회과학원 부교수 등이 참여했다.
간담회는 간단한 수인사와 기조발언을 진행한 후 참석한 인사들이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진행했다. 남측은 간담회에서 여러 문제들을 제기했다. 먼저 지금까지는 학술교류가 주로 민간차원에서 논의되고 진행됐는데 이제는 학술교류를 상설화·정례화해야 하며, 또 남북의 학자들이 서로 상대지역을 방문해 연구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후진들을 양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남북 당국이 협력해서 학생들을 교류해서 교육하고 해외 유학을 보내는 문제들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개별적인 사항들로는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북학자들이 한자리에서 모여 토의하면서 공동으로 작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개성에 문화복합단지를 개설해 공동작업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밖에 문화공연의 정례화와 베이징올림픽 문화행사 공동 추진, 전통문화의 인적·물적 교류 활성화를 제안했다. 광화문 복원을 위한 목재를 북이 지원해 줄 수 있는지, 또 남쪽에 보관돼 있지 않는 영화필름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북측이 사항별로 관심을 보이면서 응대했지만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필름 자료와 광화문복원을 위한 목재 등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를 통해 대답을 보내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북한이 준비해 온 간담회 의제는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성을 고수하고 발전시키며 만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는 데서 문화인들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문제’였다. 이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분야별 간담회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원칙과 방침을 서로 공유하자는데 더 비중을 두었다. 리종혁 단장은 기조 발언에서 학술 문화 분야에서 그동안 다양한 교류를 전개함으로써 6·15정신에 따라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을 계승하는데 기여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정파적 편파적 장애물을 제거해 대결시대의 낡은 유물을 털고 민족불신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다면서 북남의 정서와 감정을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6·15실천에서 선구가 돼 통일문화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여 민족·자주·통일의 새로운 장을 여는데 기여하자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다른 참여자들의 발언 또한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남쪽 학자들은 관계당국에게 실질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북측은 간담회에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을 배정했고, 또 의례적인 발언에 그쳤다.
2000년 6·15선언 이후 남북한 학자들간에는 상당히 활발한 교류가 진행됐다. 대체로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서로 이뤄온 성과들을 상호간에 교류해 온 것이다. 반세기 이상 단절돼온 상황에서 초기 단계로 이러한 교류가 지니는 의미는 상당한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높은 의의에도 불구하고 일회성이 짙고 주최측의 업적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제 통일에 대비한다는 점에서는 이런 교류단계를 넘어 학술협력의 정례화와 실질화가 추진돼야 하고 나아가 남북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창의적인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럴 필요성에 대해선 남북 모두 공감을 표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이는 추진되기 어렵다. 한 차원 높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을 통해 정부 차원의 추진과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특별수행원들에게 주어진 학술간담회의 주된 목표는 개별적인 사안들을 합의하는 문제보다는 정상회담의 공동선언에 학술협력에 대한 논의가 반영되도록 하는 데 있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이후 남북관계에서 좌표 역할을 했듯이 앞으로 남북간의 교류 협력관계는 이번 선언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간의 평화공동번영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장기적인 기획과 준비가 필요하고 학문연구의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기존의 민족적인 토대 위에 통일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는 과제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러한 학술교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선언에 반영한 점에서 더욱 높은 가치와 큰 의미를 지녔다.

안병욱 / 가톨릭대·국사학과

필자는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학술단체협의회 대표로 이번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언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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